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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 메이의 결단

중앙일보 2017.01.18 02:52 종합 1면 지면보기
“유럽 넘어 세계와 거래하겠다” EU 단일시장·관세동맹 동시 탈퇴
[로이터=뉴스1]

[로이터=뉴스1]

“6개월 전 영국인은 더 밝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투표했다. 지금은 위대한 국가 변화의 순간이다.”

“더 강하고 공정한 나라 건설”
한국·미국·인도와 FTA 추진
메르켈과 협상이 최대 관건
파운드화 폭락 후폭풍 우려

17일(현지시간)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의 연단에 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표정은 비장했다. 연단에는 ‘글로벌 영국(A Global Britain)’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랭커스터 하우스는 영국의 국익을 지키는 외교부가 관리한다. 영국의 운명이 걸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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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는 “우리는 (브렉시트를) 더욱 강한 영국, 진정한 글로벌 영국을 만드는 기회로 삼겠다”며 “부분적인 EU 회원 자격이나, 반은 머물고 반은 떠나는(half-in, half-out)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동시에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한 것이다.

메이는 “우리는 EU와 새롭고 공평한 파트너십을 원한다”며 “계속 동맹이자 친구가 될 것이고, 가능한 한 자유로운 교역을 원한다”고 말했다. 관세동맹 탈퇴 이후 EU와 별도 협정을 맺어 자동차 등 분야별 무관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영국은 위대하고 국제적인 무역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유럽의 국경을 넘어 오랜 친구와 새 동맹 모두와 관계를 맺으러 세계로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EU와 최대한 좋은 조건의 무역 협상을 이끌어내면서 영국 독자적으로 한국·미국·브라질·인도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럽을 넘어 세계와 거래하겠다는 메이의 글로벌 영국 선언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이은 제2의 ‘철의 여인(Iron Lady)’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메이는 이날 EU와의 협상에서 지킬 4가지 원칙으로 ▶더 강한 영국 ▶더 공정한 영국 ▶진정한 글로벌 영국 ▶확실성과 명료함을 꼽았다. 이에 기반한 12가지 목표로는 ▶국경·이민 통제 ▶EU로부터 사법권 확보 ▶FTA 체결 등이 포함됐다.

메이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 기업들의 영국 이탈을 막기 위해 EU와 경쟁하는 방안까지 구상 중이다. 메이는 “영국을 벌하려는 유럽 지도자가 있다면 불행한 자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은 “영국에 기반을 둔 사업체에 법인세를 대폭 감면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생산기지 적은 한국, 브렉시트 충격 제한적
메이 총리가 17일 브렉시트를 선언하고 있다. 연단에 ‘글로벌 영국’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뉴스1]

메이 총리가 17일 브렉시트를 선언하고 있다. 연단에 ‘글로벌 영국’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뉴스1]

영국 국교회 목사의 외동딸로 옥스퍼드대를 나온 메이가 ‘제2의 대처’가 되려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협상이 관건이다. 메르켈은 “단물 빨아먹기(cherry picking)는 안 된다”며 영국에만 이로운 브렉시트 협상을 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메르켈로선 올해 예정된 네덜란드·프랑스·독일 선거 결과에 따라 EU 추가 이탈도 예상되는 만큼 브렉시트 협상에서 유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입장이다.

메이의 영국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영국 대법원이 이달 중 브렉시트 협상 착수에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협상 개시는 메이가 설정한 3월 말보다 늦어질 수 있다. 영국 내에서도 EU와 관계를 잘 맺으면서 한국 등 비(非)EU 국가들과 FTA를 맺는 ‘꿩 먹고 알 먹고’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운드화 폭락과 물가 상승에 따른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예상되면서 메이가 견뎌야 할 후폭풍이 엄청날 수 있다. 메이는 이날 “최종 합의안은 의회 동의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밝혀 그 결과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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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역업계는 영국이 EU 단일시장에서 이탈해도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영국에 생산기지를 둔 기업이 많지 않아 EU와의 관세 장벽으로 인한 불이익이 크게 우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본사 등 판매법인을 영국에 둔 국내 기업은 관세 문제 등 혼선을 피하려면 독일 등 EU 국가로 유럽 본사를 옮기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조언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서울=임미진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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