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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리스크 대비…현대차 “미국에 31억 달러 투자”

중앙일보 2017.01.18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가운데)이 2014년 8월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을 방문해 현지에서 생산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가운데)이 2014년 8월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을 방문해 현지에서 생산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에서 일자리를 늘리라는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압력이 현대차그룹에도 영향을 줬다. 현대차그룹 정진행 사장은 17일 오전 외신기자들과 만나 올해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미국에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지난 5년간 미국에 투자해온 금액(21억 달러)보다 50% 늘어난 액수다.

“멕시코 생산 35% 관세” 공세
포드·도요타 이미 백기 들어
멕시코 공장 둔 삼성·LG도
관세 위협 가능성에 고심
철강은 직접 피해 없을 듯

정 사장은 “친환경·자율주행 등 미래 신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기존 생산시설에서의 신차종 생산 및 환경 개선을 위해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향후 미국의 수요 추이 등을 감안해 신공장 건설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주에, 기아차는 조지아주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의 투자계획은 트럼프의 압력이 본격화되기 전에 미리 성의를 보인 것”이라며 “다만 미국 자동차시장의 수요를 고려할 때 신공장 건설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는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무관세 제품에 3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1일 대선 승리 후 첫 기자회견에선 “(기업이) 미국 국경 안에 있는 한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멕시코 공장에서 에어컨이나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서 팔려면 강력한 국경을 거쳐야 할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압박에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건 미국 자동차 ‘빅3’였다. 포드는 지난 3일 16억 달러(약 1조9000억원)를 들여 멕시코에 소형차 생산공장을 세우려고 했던 계획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대신 전기차·자율주행차 생산을 위해 미시간주 공장에 7억 달러(약 82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멕시코에 7개 공장을 가동 중인 피아트크라이슬러는 “미시간주·오하이오주 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1700억원)를 투자하겠다. 이 같은 투자로 일자리 20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공개 지목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투자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한 제너럴모터스(GM)도 미국 내 생산시설에 10억 달러 투자 계획을 검토 중이다.

외국 기업도 속수무책이었다. 트럼프는 지난 5일 “도요타가 멕시코 바하에 미국 수출용 코롤라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한다는데 절대 안 된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내야 할 것”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압박했다.

결국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9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앞으로 5년간 미국에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주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키로 한 계획을 수정해 미국 투자를 더 늘리기로 한 것이다.

또 트럼프는 15일 독일 일간지 빌트와 인터뷰에서 “BMW가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여기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면 35%의 국경세를 물리겠다. BMW는 미국 땅에 자동차 공장을 지어야 한다. 그게 회사에 더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한국 업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대·기아차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668만7000대)의 10%가 미국 수출량(66만8000대)인 데다 기아차가 1조원을 투자해 지난해 9월 멕시코 공장을 준공했기 때문이다. 연간 40만 대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이 공장은 생산량의 60%를 북미로 수출할 계획이다. 현대차로선 트럼프의 압력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31억 달러가 현대차그룹 전체로 볼 때 대규모 투자는 아니다. 다만 신규 공장 건설보다 기존 공장의 R&D 투자 확대, 환경 개선 투자 등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업계도 트럼프의 관세 위협 가능성에 대비해 대안을 모색 중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수출하는 TV·냉장고 물량 대부분을 멕시코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트럼프가 보복 관세를 물린다면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LG전자도 멕시코에서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서 “미국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북미 세탁기 생산 기지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미국 생산에 대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김기환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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