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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의 NEAR 와치] 금년에 우리가 건너야 할 4개의 험한 다리

중앙일보 2017.01.18 00:30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격랑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한 해가 무겁게 시작되고 있다. 깊은 사념 속에서 문득 19년 전 오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1998년 1월 18일 한국 정부의 외채협상팀은 뉴욕 월가에서 세계 채권은행단 대표 13명의 냉소적인 매의 눈빛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날도 협상은 답보 상태에 있는데 채권은행들은 시시각각 한국의 부도 위험을 계산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국가 리더십 바로 세워 국난 극복
정치과잉시대 정경분리로 돌파


본국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해 태국 위기 발발(97년 7월 2일) 때부터 강력한 위기대응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이 매우 후회스러웠고, 김대중 당선인은 선거에 겨우 이긴 후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연일 국제사회에 러브콜을 던지고 있었다. 곧 인도네시아의 국가부도 선언이 예상되는 가운데 신흥국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한국은 매일 G7 국가 재무부와의 심야 전화협상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이 아침에 19년 전 오늘을 회상하는 까닭은 당시 상황이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우리의 가상상황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국정 상황은 기층이 매우 불안정한 날씨에 폭우가 내리는 질퍽한 늪지대를 고장 난 나침반을 들고 통과하는 것과 같다. 지금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년 만에 경제위기와 대통령선거가 만나 함께 뒤엉키면서 위기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 이 와중에 냉전 종식 후 가장 엄중한 외교안보 환경이 조성되며 우리를 사방에서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촛불에 의지해 집권하려는 정치세력은 촛불이 꺼질까 두렵고 생각하는 갈대들은 촛불의 의미가 퇴색되고 변질될까 두렵다. 그러나 촛불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이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그동안의 실패와 반성을 모아 정치·사회 시스템의 개혁 단계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올 한 해를 아우르는 우리 모두의 대표 어젠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올해에 우리가 이러한 위험지역을 통과해 국정을 일신하려면 크게 보아 4개의 위험하고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첫 번째 다리는 경제위기 극복의 다리다. 지금은 명의가 환부에 정확하게 침을 꽂듯 매우 수준 높은 전문적 상황진단 능력과 현명한 정책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경제정책 신호체계가 혼란에 빠지고 위기와 대선이 동반될 때 정치 리더들은 위기보다는 선거에 목숨을 걸고 진영 간 싸움에 몰두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정제되지 않고 검증되지 아니한 정책을 실험해 보며 표를 구한다. 지금 그 무모함과 정책모험심을 심히 우려할 때다.

따라서 지금부터 위기관리 체계가 정치과잉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한 정경분리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 원칙하에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상경제대책기구에 위기관리의 전권을 부여하고 급박한 상황 전개에 적기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두 번째 다리는 다음 대통령을 실패 없이 잘 뽑아 국난을 극복하고 국가 리더십을 튼튼히 세우는 다리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최대 이슈는 분권과 협치의 리더십, 경제·외교안보의 위기관리 능력 그리고 저성장, 경제불평등, 실업문제 등 구조적 문제의 해결 능력에 대한 평가라 할 것이다. 특히 지금 우리는 국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기 극복의 리더십 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분노한 국민을 선동하여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리더보다는 예리하고 균형 잡힌 상황판단력, 국론통합 능력을 갖춘 현명한 리더를 찾아내 국난 극복의 지휘를 맡겨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정책선거라기보다 바람과 패거리 크기의 싸움이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또다시 대통령을 잘 뽑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면 본인의 안목, 균형감각, 문제해결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 낼 새로운 검증 시스템을 개발하고 정책선거를 중심으로 선거문화를 일신해야 한다. 특히 잘 기획되고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일곱 번 이상의 TV토론을 장시간에 걸쳐 실시하여 감춰진 모든 요소를 철저히 들춰내 국민의 선택 기준을 바르게 제시해야 한다.

세 번째 다리는 국가 지배구조를 재건축하고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루는 다리다. 오랫동안 1인 지배 의사결정 구조와 패거리 무책임 정치가 고착화되면서 국가 리더십이 혼돈에 빠지고 문제해결 능력은 크게 저하돼 왔다. 이제는 분권과 책임정치 그리고 대통령-국회-국민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이 철저히 지켜지는 방향으로 국가 지배구조를 재건축해야 한다. 그동안의 국정 혼란과 정치 난맥상의 중심에는 진영 논리에 의한 극단적 이념대결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 양극단의 생각과 이념을 가운데로 수렴하여 다당제와 연립정부 정신하에 국민통합과 소통·타협의 협치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네 번째 다리는 국민 상처의 치유와 국정 정상화의 다리다. 이제부터 우리는 사회적 신뢰와 정의를 바로 세워 국민의 놀라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면서 국정과 일상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야 할 때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특검, 탄핵심판 그리고 앞으로의 대통령선거 등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국정이 새로운 질서하에 안정을 찾아나가야 한다. 실로 정치인들의 자제와 화합 노력이 절대로 필요한 때다.

이렇게 어렵고 험난한 4개의 다리를 성공적으로 건너고 나면 우리는 낡은 허물을 벗게 될 것이고 한국이라는 나무에는 성숙의 나이테 하나가 늘 것이다. 그리고 후일 다음 세대가 그 열매를 따게 될 것이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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