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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월호] “감사원 표적감사로 위원장직 사퇴 … 박 대통령 신임 떠났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7.01.18 00:01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지 2년6개월 만이다. 그는 자신의 사퇴 이유로 감사원의 무모한 감사를 들었다. 그 감사가 부당한 표적감사였다면, 그 배경과 배후 인물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김 전 위원장은 “평창에 드리운 최순실의 농단 흔적을 완전히 드러내야 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대한민국의 위대성을 세계가 다시 볼 것”이라 말했다.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대한민국의 위대성을 세계가 다시 볼 것”이라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은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평창올림픽을 더더욱 성공시켜야 할 당위가 있다. 지금은 올림픽 열기가 식었지만, 역설적으로 평창의 성공으로 국민의 자존심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힘을 보태겠다.”

단독 인터뷰 │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위원장으로서 조직 지휘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 지속…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 성공은 국민적 과제

동계올림픽의 전도사, 아니 화신이라 불려 마땅한 김진선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월간중앙이 지난 12월 초부터 1월 중순까지 그를 3차례 만나 8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 오랫동안 주저했지만 그는 조직위원장 사퇴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2014년 5월부터 시작된 조직위에 대한 감사원의 집요한 감사가 사표를 낸 이유라고 밝혔다.

“위원장으로서 조직을 지휘할 수 없을 정도로 무모한 감사가 계속됐다”고 그는 말했다. 오랜 기간 사퇴의 이유를 숨겼던 이유에 대해서도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당시에는 구설에 휘말리기 싫었고, 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박 대통령의 궁지에 기대어 스스로를 옹호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대답했다.

감사원이 과연 당시 올림픽조직위를 표적감사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특검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 전 위원장의 사임을 강요했다는 진술이 류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월간중앙 인터뷰에 응한 문동후 당시 조직위 사무총장도 “김기춘 실장이 감사원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다”면서 “김 위원장은 부당한 감사가 없었다면 절대 위원장직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전 실장이 감사원 감사를 지시한 확실한 배경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조직위에 인사청탁했고, 문체부와 조직위가 이를 거부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그럴 경우 김종 전 차관의 인사청탁 배후에 누가 있었느냐는 것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김 전 위원장이 청와대 비서실장 물망에 오르내린 것이 김기춘 실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 아니냐는 추론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2013년 말과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나의 비서실장 기용설이 언론에 집중 보도돼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조직적인 음해가 이뤄지는 것 같았고, 감사원 감사로 조직위를 나오게 돼 오비이락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를 마친 뒤 어디론가 전화하고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를 마친 뒤 어디론가 전화하고 있다.

나는 처음 그 아이디어를 박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기획안이 담긴 서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당초 그 기획안은 광화문 오방낭 희망나무 행사와 달랐다. 숭례문에 오방색 대형 천을 배너처럼 드리우는 아이디어였다.”



올림픽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했다. 작년 실패한 총선 도전의 상처도 이제는 잊은 듯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언급하면서 “평창올림픽을 노리고 접근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철저히 조사해서 밝히고, 그 어떤 음습한 최순실의 그림자도 모두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랜 정치적 인연, 특히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2013년 준비상황을 독대 보고할 때 박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스토리가 있지 않느냐”고 했던 말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하면 많은 사람이 김진선 조직위원장을 떠올린다. 유치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도 대회 마무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개회사를 해야 할 대통령도 일생일대의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소회가 착잡할 텐데?
“박 대통령과 나는 올림픽을 매개로 깊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다. 허탈하고 우울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올림픽 성공이 무너진 국민의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4년 7월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사퇴할 때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다. 김 전 위원장이야말로 조직위를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사람 아니었나?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한 번도 사퇴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올림픽 성공에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대통령의 마음도 변할 수 있는 것
월간중앙 인터뷰를 통해 적어도 ‘자발적인 사퇴’는 아니었다는 점을 밝혔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최악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나의 사퇴 이유를 밝히는 것이 여러 가지 억측이나 논란을 불러일으키진 않을까? 인간적인 도리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망설여진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밝혀진다. 동계올림픽은 필생의 사업이었을 텐데 자의에 의해 물러났다는 말은 믿기지 않는다. 취재에 응한 체육계 인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 전 위원장의 사퇴를 실현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퇴 몇 달 전부터 진행된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원의 무차별적 감사를 견디지 못했다. 조직위원장으로서 조직의 지휘권을 도저히 행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올림픽조직위에 부당한 인사청탁을 해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올림픽조직위에 부당한 인사청탁을 해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을 정도로 오랫동안 실력과 충성심을 인정받았는데, 물러날 때 대통령의 뜻을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대통령의 마음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강도 높은 감사원 감사가 50일간이나 지속되는 것을 보며, 대통령의 신임을 더 이상 받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사퇴 직후 언론에서는 김 위원장이 자체 수입대신 은행 부채로 조직위원회를 운영한 것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것을 사퇴 배경으로 봤다. 그런 보도 내용이 맞나?

“조직위원회는 스폰서 등 자체 수입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당시는 조직위 사업 초기 단계로 그 같은 자체 수입이 발생하기 전이었다. 당연히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운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에서 지적받을 내용이 전혀 아니다.”

최근 류진룡 전 문체부장관이 특검에 나가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 전 위원장의 사표를 받으라고 종용했다는 증언을 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감사원 감사를 지시한 것이 맞지 않나?

“감사원에 감사를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그토록 무리한 감사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나? 2013년 말과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에 보도되었던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과 김진선 후임설이 기폭제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정부 인사가 있을 때마다 총리나 비서실장설이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2013년 말과 세월호 참사 직후에 특히 그런 보도가 많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그런 오퍼를 받은 적도 없었고, 내가 그런 운동을 한 적도 없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 내가 크게 화를 내며 항의한 적도 있다. 이런 보도가 계속되니까 나를 음해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보도가 난 직후부터 집중 감사가 이뤄지고, 결국 내가 사퇴하게 되니 오비이락이란 생각도 들었다.”
 
제1부위원장은 좋은 사람 추천해달라고 정부에 위임
체육계 내에는 김 전 위원장이 박 대통령을 자주 독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이 질시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세월호 참사 후 박 대통령을 두 번 독대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직후에 박 대통령을 독대한 적은 없다. 2013년 7월 중순 유치 만 2년이 되는 시점에서 종합적인 준비상황을 집무실에서 배석자 없이 보고했다. 이 내용은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보고했고, 정홍원 총리에게도 보고했다. 그해 11월 토마스 바흐 신임 IOC위원장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대통령 면담 시 배석한 적이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끝나고 한국 선수 메달리스트 격려 오찬 행사 때 청와대에 간 적이 있다. 그건 공개행사였다. 대통령이 평창 쪽에는 온 적 없으니, 내가 박 대통령과 독대를 자주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2011년 6월 한나라당 2018평창올림픽 유치특위에서 만난 박근혜 당시 의원과 김진선 특위 위원장.

2011년 6월 한나라당 2018평창올림픽 유치특위에서 만난 박근혜 당시 의원과 김진선 특위 위원장. [중앙포토]

류진룡 전 장관은 특검에서 김종 문체부 차관이 추천한 조직위부위원장을 자격 미달로 거절하자 김기춘 비서실장의 압력이 들어왔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결국 이 부위원장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 문제가 감사원 감사를 촉발시킨 것 아닌가?
“조직, 행정, 기획을 담당하는 제1부위원장은 좋은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정부에 위임했다. 류 장관이 김종 차관이 추천한 사람을 거절한 것은 내가 알고 있다. 제2부위원장은 경기 운영을 관장하는 자리인데,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문동후씨가 그 분야에선 우리나라 최고라 겸임하도록 했다. 제3부 위원장은 경기장 시설 등을 관장했는데, 강원도에서 당시 김모 정무부지사를 추천해서 내가 흔쾌히 동의했다. 아주 유능한 사람이어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제1 부위원장은 류진룡 장관에게 추천을 맡겼지만 김종 차관 추천 인사가 좌절되면서 감사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그 외 자격이 안 되는 마케팅 국장을 김종 차관이 추천했지만 문동후 사무총장이 거절한 일, 소치올림픽 문화행사와 관련하여 김종 차관 측과 갈등을 벌인 일 등이 거론된다.

“마케팅 국장 이야기는 얼핏 들은 일이 있고, 문화행사에 관한 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실무적인 일까지 일일이 내가 신경 쓰진 않았다. 그런 모든 일이 다 감안되었겠지.”

당시 조직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김 위원장 등 조직위 수뇌부의 사퇴가 중요한 이유는 확연히 무리한 감사 진행의 배후에 누가 있었느냐는 것 때문이다. 혹시 최순실 국정 농단이 김 위원장 사퇴에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작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JTBC의 태블릿 공개로 점화되면서 태블릿 안에 있던 취임식 오방낭 행사가 화제가 됐다.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으로서 당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처음 그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나는 처음 그 아이디어를 박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기획안이 담긴 서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당초 그 기획안은 광화문 오방낭 희망나무 행사와 달랐다. 숭례문에 오방색 대형 천을 배너처럼 드리우는 아이디어였다. 외국인들을 초청하여 한복을 입히고 우리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채택되지 않았다.”

당시 취임식 행사를 기획했던 윤호진 총감독의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최순실 씨의 측근인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가 숭례문 기획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고 한다. 김씨의 존재와 그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나?
“나는 김영석 씨의 존재를 대통령 취임식 당일 누군가에게 소개받고 처음 알았다. 숭례문 기획은 김영석 씨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김씨는 취임준비위 내에서 어떤 공식 직함을 갖고 있었나?

“그는 공식 직함 없이 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참석하는 회의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알지 못한다.”
 
숭례문 행사 중지 박 당선인과 독대해 설득
숭례문 기획이 어떻게 광화문 희망나무 기획으로 바뀌었나?
“내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배석자 없이 만나 설득했다. 취임식이라는 게 입장부터 본행사와 청와대 도착까지 기승전결, 시간 흐름에 따라 개념과 리듬과 메시지에 걸맞은 행사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숭례문 오방천 행사는 그런 콘셉트와 부조화를 이뤘다. 동선도 잘 맞지 않았고 대통령 취임을 상징하는 의미나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았으며 연관성이 강하지 않았다. 또 숭례문은 화재가 나서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 준공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그런 점을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켰다. 국민에게 복과 희망을 주는 희망나무 복주머니 행사를 광화문에서 여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했다. 당선인께서 그 대안에 흡족해 했다.”
2014년 7월 21일 사퇴 의사를 밝힌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 조직위원회 서울사무소에서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7월 21일 사퇴 의사를 밝힌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 조직위원회
서울사무소에서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최순실 씨의 측근인 김영석 씨가 숭례문 오방천 행사를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혹시 최순실 씨가 취임 준비의 배후가 있었던 것을 증거하는 것은 아닐까?
“가당치 않은 말이다. 최순실이 배후에서 소소한 것에 관여했을 수는 있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잘 모른다. 적어도 취임준비 중 최순실의 그림자와 조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든 행사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가 주도했다.”

 

1년 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대한민국 위대성을 세계가 다시 볼 것이다. 그것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상징적인 이벤트다. 국민
모두가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즐기는 것으로 우리가 위대해지는 것이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진행으로 평창동계올림픽도 큰 상처를 입었다. 최순실이 올림픽 사업 일부에도 마수를 뻗친 것 아니냐는 국민적 의혹이 비등하다. 실제로 일부 이권사업을 기획한 흔적이 발견됐다.
“만일 최순실 일파가 어떤 형태로든 올림픽과 관련하여 이권을 탐하거나 개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올림픽을 어떻게 유치했나? 국가 위신이 걸린 이벤트를 감히 넘보고, 손대고 농단하려 했다면 용서할 수 없다. 철저히 조사해 밝히고, 그 어떤 음습한 그림자도 모두 걷어내야 한다. 개막까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히 최순실 잔재를 쓸어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오랜 정치적 관계를 유지했고, 그의 신임과 신뢰도 두터웠다. 박 대통령은 언제 어떻게 처음 만났나?
“박 대통령과 나는 정계입문을 같은 시기에 했다. 박 대통령은 1998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했고, 나는 그해 6·4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됐다. 당시 최각규 강원지사가 출마를 포기해 부지사를 했던 내가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됐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한호선 농협중앙회장, 무소속으로 나왔던 이상룡 전 강원도지사 등을 내가 이길 것으로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 박근혜 의원이 내게 응원 동영상을 보내주는 등 선거운동을 도왔던 것이 정치적 인연의 시작이다.”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바라보고 있는 스켈레톤 기대주 윤성빈이 영화 <아이언맨>의 가면을 본뜬 헬멧을 쓰고 달리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바라보고 있는 스켈레톤 기대주 윤성빈이 영화 <아이언맨>의 가면을
본뜬 헬멧을 쓰고 달리고 있다. [중앙포토]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서 특별한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나?
“강원도지사 시절인 1999년 평창에서 강원도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했고, 그 여세를 몰아 나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구상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 유종근 지사의 전북 무주와 힘겨운 국내 예선부터 치러야 했다. 그때 박근혜 의원실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당시 박 의원은 ‘모든 조건을 고려할 때 동계올림픽은 당연히 강원도에서 치러야 되는 것 아니냐’며 힘을 실어줬다. 이후 박 대통령은 일관되게 평창의 올림픽 유치를 도왔다. 2011년에 되어 그 꿈이 실현되었으니 참으로 기나긴 여정이었다.
 
안봉근은 알아도 최순실은 모른다
"사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구상된 것이다. 사격연맹회장,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피스톨 박’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박 대통령 역시 아버지가 추진했던 올림픽 유치의 그 역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10년엔 한나라당 올림픽 유치 특위의 고문을 맡아 강원도 현장에도 자주 찾았다. 당시 3년째 아무런 당직도 맡지 않고 오직 대선만 준비하고 있었는데 유치특위 고문직은 두말하지 않고 맡아주었다. 아주 깊은 애착을 갖고 올림픽 유치를 도왔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꼭 30년 만에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개막 연설을 해야 할 대통령이 저런 상황이 되었으니 나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다.”

대통령이 된 후 올림픽 지원에는 어떤 의욕을 보였나?
“2013년 7월 중순 배석자 없이 박 대통령을 만나 유치 만 2년의 올림픽 준비상황을 종합 보고했다. 당시 9조원에 달하는 예산관계도 상세히 보고했던 기억이 난다. ‘올림픽 하는 데 그 정도 돈은 써야죠’이러면서 ‘올림픽 유치에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반드시 성공시킵시다’ 이렇게 내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오전에 보고했는데 오후에 바로 당시 유민봉 정책기획 수석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을 유 수석이 전부 듣고 조치를 취해주더라. 대통령의 올림픽 성공 개최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
 
평창 알펜시아의 스키 점프대. 스키 점프대 위 비행접시 모양의 공간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평창 알펜시아의 스키 점프대. 스키 점프대 위 비행접시 모양의 공간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중앙포토]

언론에 최순실 씨가 2004년 평창에 샀던 땅을 김 전 위원장이 소개했는데 땅값이 오르지 않아 최씨가 분노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난 솔직히 최순실 씨를 모른다. 그의 존재를 안 것은 2014년 12월 소위 정윤회 파문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다. 박근혜 의원 시절에도 의원회관 사무실에 간 적이 있지만 그때도 정윤회 씨를 잘 몰랐다. 안봉근 비서는 그때 보았던 기억이 나지만…. 정윤회 씨 고향이 강원도 정선이라서 나와 친하다는 소문이 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니 최순실이 땅 사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강원도 개발시대 중요한 계획을 내가 많이 알았지만 나는 땅 한 평 산 적이 없는 사람이다. 최순실 땅은 평창군 용평면 어디라고 하는데, 땅값이 오를 곳도 아닌 것 같다. 땅 산 사람이 내게 올림픽 유치 못했다고 따졌다는데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작년 4월 총선에서 강원도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 군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에게 석패했다. 새누리당 공천이 거의 확정적이었다가 마지막에 뒤집힌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단계에서 여론조사상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단수추천 후보로 돼 있었다. 단수추천 지역은 경선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후보 등록 직전 하룻저녁에 갑자기 바뀌어버렸다.”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날 때와 비슷한 배경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올림픽 개최지, 폐광지역 그런 곳이니까 내가 되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염동열 의원의 재산등록 문제가 선거과정에서 논란이 됐는데.
“선거 당시에 논란이 되었지만 나는 네거티브 공세는 하지 않기로 해서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다. 더민주 후보가 문제제기를 했고, 토론회 때 염 의원이 소명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나는 그 소명에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13억원 정도가 누락되어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했는데 무혐의가 되었다. 선관위가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해놓은 상태인 것으로 들었다. 재산 등록은 실수나 착오가 인정되지 않는 사안이다. 지난해 10월 13일 사건을 접수한 서울고법이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보도를 최근 본 적이 있다.”

새 정부 들어서도 이희범 체제 유지가 바람직 
평창올림픽 개막이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올림픽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대회를 준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하고, 이왕 치르는 것이니 잘 치러야 한다. 대충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돈을 많이 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올림픽의 유무형 가치를 국민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창올림픽 개최 후 2년 간격으로 도쿄 하계올림픽,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잇달아 열린다. 일본은 1964년 올림픽 이후 국가 재생의 상징으로, 중국도 대국굴기의 모멘텀으로 동계올림픽을 활용하려 한다. 동북아 3국이 올림픽을 놓고 경쟁하는 모양새인데, 우리가 그 가운데 밀릴 수는 없다.”
2011년 7월 평창 유치위원회의 최종 프레젠테이션 장면.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 조양호 유치위원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특임대사, 김연아 선수, 문대성 IOC 선수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토비 도슨의 순서로 발표가 진행됐다.[중앙포토]

2011년 7월 평창 유치위원회의 최종 프레젠테이션 장면.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 조양호 유치위원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특임대사, 김연아 선수, 문대성 IOC 선수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토비 도슨의 순서로 발표가 진행됐다.[중앙포토]

과다한 재정투입 논란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의 예산 구조를 잘 몰라서 그렇다. 올림픽 예산은 약 13조원이다. 여기에는 제2영동고속도로, 원주~강릉 복선전철 등과 같은 SOC사업 예산이 모두 들어있다. 국가교통망건설계획에 다 포함돼 있던 것들이다. 원래 국가가 하기로 했던 것인데 평창올림픽에 맞추다 보니 올림픽 예산에 포함된 것뿐이다. 기간교통망과 자체 수입으로 하는 조직위 예산, 민간재원 등을 제외하면 실제 공공투자비용은 2조원이 채 안 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알뜰하게 올림픽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조기 대선과 함께 상반기 새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의 조직위, 조직위원장 체제는 과연 어떻게 될까? 올림픽 준비의 연속성에 불안감이 드리워지고 있는데.
“올림픽조직위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공무원 조직과는 많이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리더를 바꾸고 그 리더가 조직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끌고 갈 수는 없다. 새 정부가 들어 서더라도 현재의 조직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희범 조직위원장 역시 상당한 능력을 보여줬고, 큰 흠결이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해 그에게 대회 준비와 운영을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개막일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올림픽 열기가 가라앉았고, 준비할 일은 많이 남았다. 비상체제의 가동이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 민간기관, 민간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실행, 지원, 점검, 확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위원회, 실무위원회를 꾸려 주간 단위 회의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경제부 총리 또는 국무조정실장 주재의 고위 전략회의도 필요하다. 전략회의가 월간 또는 수시 가동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즉각적으로 제시해줘야 할 것 같다.”

후원에 대한 우려도 크다. 최순실 게이트로 기업이 몸을 사리고 있지 않은가? 일단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까?
“올림픽 스폰서는 그야말로 마케팅이고 비즈니스다. 후원기업은 올림픽이란 콘셉트를 독점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기업 홍보에 나서고, 그 대가로 현금과 현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인류 축제에 기업들이 정당하게 참여하면서 이를 비즈니스로 활용하는 것으로, 미르·K재단에 강제로 후원금을 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의 국내 후원 목표인 1조4300억 원을 훌쩍 넘긴 3조 원 이상을 확보했다고 한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평창올림픽이 롤모델로 삼아온 1994 릴레함메르(노르웨이) 올림픽은 88%라는 경이로운 입장권 판매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대성공했다. 적자를 1억3000만 달러(약 1500억 원)로 막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경제 올림픽이 평창에서도 가능할까?
“평창만의 특별한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물량, 크기, 외관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콘셉트가 중요하다. 질과 의미, 내실과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길이다. 각 경기장 별로 사후 활용 계 획도 이미 수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 ‘화이트 엘리펀트’ 등 올림픽 부작용을 너무도 잘 알고 대처해왔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올림픽에 기업운영처럼 100% 이윤 논리만 적용할 수는 없다.”

평창올림픽 성공은 결국 국민의 관심에 달렸다.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최순실이 올림픽을 다 말아먹으려 했다는 국민적 의혹이 붐업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올림픽은 실패한다. 동계올림픽의 유무형 가치는 막대한 것이다. 1년 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대한민국의 위대성을 세계가 다시 볼 것이다. 이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상징적인 이벤트다. 국민 모두가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즐기는 게 우리가 위대해지는 길이다. 안 할 이유가 없다.”

 
“김진선 위원장은 김기춘의 전방위 압박에 무너진 것”
인터뷰| 문동후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 사무총장

문동후(67)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 사무총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1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소청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스포츠와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인연을 맺어 경기국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그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초대 사무총장에 추대된 때는 2011년 10월, 김진선 조직위원장과 같은 시기에 조직위에 안착했다. 2014년 7월 김 위원장과 함께 사무총장직을 사퇴할 때 그의 사임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상은 달랐다. 그 자신도, 김 위원장도 부당한 압력에 시달리다 조직위를 떠났다는 사실이 두 사람에 대한 월간중앙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다음은 문 전 총장과의 문답.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은 자신의 사퇴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문 전 총장 역시 당시 건강문제를 사퇴 사유로 들었다. 과연 그런가?
“올림픽 조직위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를 버티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표적감사로 보는 이유는?
“장장 50일 간이나 감사가 이뤄졌지만 특별히 밝혀진 문제점이 없었다. 조직위와 당시 문체부 김종 차관과의 갈등을 원인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국제회의 기간만큼은 감사를 중단해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회의 기간이 끝난 바로 다음날 다시 감사가 시작되더라.”

처음에는 문 전 사무총장에 대한 감사로 시작되었다는데.

“그게 결국은 김진선 조직위원장을 향한 칼끝이었다고 나는 본다. 처음부터 김 위원장을 표적으로 삼을 순 없었겠지. 결국 전방위로 김 위원장을 압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당시 감사를 지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게 들었다. 감사원을 움직여 그런 강도 높은 감사를 지시할 수 있는 곳은 청와대밖에 없다.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 정도는 돼야 가능할 것이다. 김종 문체부 차관 정도의 힘으론 절대 할 수 없다.”

왜 그런 무리한 감사를 지시했을까? 김진선 조직위원장이 김기춘 실장 후임으로 자주 거론됐던 것이 배경이란 시각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 직후 당시 언론에 그런 추측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인사설이 원인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조직위와 김종 전 차관 측 사이에 여러 가지 갈등 요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인사문제, 문화행사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겐 당시 조직위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김종 차관이 무리한 인사를 요구한 적이 있나?
“그렇다. 경력이 한참 모자라는 젊은 사람을 마케팅 국장으로 임명하라는데 내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사람 인사를 누가 시킨 건지 그 배경은 알 수 없다. 김종 차관 자신인지, 아니면 최순실인지 그것은 모른다.”

김진선 위원장의 경우 표적감사 외에 다른 사퇴 요인이 혹시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자의에 의해 사퇴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결국 김기춘 비서실장의 전방위 압력을 받고 물러난 것이다. 김 실장이 감사원장이나 감사원 사무총장에게 오더를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 지독한 감사가 계속되면서 나도 감을 잡았다. 아! 나가라는 거구나….”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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