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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단 하나의 목숨이라도···"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중앙일보 2017.01.18 00:01
 
시골 소녀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와 도쿄 소년 타키(카미키 류노스케)의 몸이 뒤바뀐다. 그 모험을 발랄하게 그리던 이야기는, 미츠하의 마을에 들이닥치는 재난을 펼쳐 보이며 한층 크고 감동적인 분위기로 흐른다. 10대 소년·소녀 특유의 여린 감수성에서부터 섬세한 그림체, 짜릿한 모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현대 일본인을 위로하는 결말.

‘너의 이름은.’(원제 君の名は。, 1월 4일 개봉)에는 일본 독립 애니메이션계 대표 인물로 꼽혀 온 신카이 마코토(43) 감독 고유의 색깔과 변화가 아름답게 녹아 있다. 이 작품이 일본 극장가에서 관객 1600만여 명을 동원한 저력은 무엇일까. 최근 한국 개봉을 맞아 서울을 찾은 신카이 감독을 만나니 그 궁금증이 풀렸다. 어떤 질문에도 차분한 말투로 사려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감독의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사진=라희찬(STUDIO 706)

사진=라희찬(STUDIO 706)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츠하와 타키의 몸이 바뀌는 설정에서 시작하는데.
 “남녀의 몸이 바뀌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성별이 뒤바뀐 인물이 사회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기준을 벗어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비추는 데 중점을 둔 것이 대부분이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미츠하와 타키는 성별이 뒤바뀌었을 때 더 매력적인 인물이 된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뒤섞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당신은 소위 말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떤 비중으로 섞인 사람인가.
 “난 굉장히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분이었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데는 그에 대한 반발심도 있다(웃음).”
 
두 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기억이 자꾸 흐릿해지자, 그것을 막기 위해 서로의 이름과 존재를 기억하려 갖은 애를 쓴다. 그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오노노 코마치의 와카(和歌·일본 고유의 시) 중 ‘그분을 생각하며 잠들어 꿈에 본 것일까. 꿈인 줄 알았다면 깨지 않았을 것을’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걸 읽고 이 작품에 ‘꿈’에 관한 설정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꿈꿀 때나 잠에서 막 깼을 때는 꿈속의 일이 아주 생생한데, 나중에 구체적으로 기억하려 하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지 않나. 그처럼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에 대한 기억을 점차 잃어 간다. 그런 점에서 ‘너의 이름은.’은 우리가 잊어 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사회 전체가 슬퍼했던 재난·재해 역시 우리는 때때로 그 기억을 금방 잊어버리니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초속 5센티미터’(2007) 등에서도 외따로 존재하는 두 인물이 운명의 작용 끝에 스치듯 인연을 맺는 이야기를 해 왔다.
“사실 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운명이라기보다 우연과 우연이 겹친 결과가 아닐까.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이 사람을 만난 것이 소중한 인연이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바로 그런 순간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건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결말에서 미츠하와 타키가 만나는 이유를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웃음).”
이렇게 운명적인 작품을 만든 감독이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다니, 사람들이 실망할 것 같은데(웃음).
“다른 인터뷰에서는 ‘운명의 상대가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웃음).”
단편 ‘별의 목소리’(2002)부터 줄곧 10대 주인공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면.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좋은 의미이자 나쁜 의미로 감정이 무뎌지고 있다. 기쁜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뛸 듯 기쁘지 않고, 반대의 경우에도 상처를 덜 받는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 때만큼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돌아보려 한다.

그때 내게는 많은 것들이 눈부시게 느껴졌고 신선했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고. 그 시절에 좋아했던 여자애는 아주 신비한 존재였다. 그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가끔 그 시절에 쓴 일기를 찾아보기도 한다. 내 작품들은 모두 그때의 나를 향해 있다.”
전작들에서는 운명적 인연 속에서도 끝내 이뤄지지 못하는 인물의 고독과 외로움에 집중했다. ‘너의 이름은.’의 결말은 다르다.
 “일본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신카이 감독이 설마 해피엔드를 만든 건가?’라고 반응한 관객이 많았다(웃음). 일본 사회와 나 자신이 변한 결과인 것 같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일본인 대부분은 ‘도쿄는 이대로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고, 내 삶 또한 아무 일 없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시기에 나는 그와 반대로,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고 엇갈리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금의 일본인들은 ‘내가 사는 이 동네가 내일 당장 없어질 수도 있고, 이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 필요한 건 ‘포기하지 말고 단 하나의 목숨이라도 되돌리고 붙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숱한 참사와 사건 사고를 겪은 한국인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너의 이름은.’ 시나리오를 썼을 때가 2014년이다. 그때 일본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식을 연일 접했다. 그중 가장 놀랐던 건, 배가 가라앉는 순간에도 그 안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안내 방송한 사실이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때 느낀 것들도 이 작품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너의 이름은.’이 세운 ‘1600만 관객’이라는 흥행 기록이 당신에게 남긴 것이 있다면.
 “자신감을 얻었다. 과장해 말하자면, 내가 이 사회 그리고 이 세계와 일체되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내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구나’ 하는.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와 영화계에도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지금껏 일본 극장가에서 이 정도의 흥행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같은 특별한 존재, 월트 디즈니 컴퍼니처럼 특별한 브랜드의 작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너의 이름은.’ 흥행을 보면서, 일본의 많은 애니메이터·영화인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얻은 듯하다. 그 점이 정말 기쁘다. 하루빨리 이 기록을 넘어서는 또 다른 작품을 보고 싶다.”
애니메이터로서 당신만의 자산이 있다면.
“집에서 열차로 4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다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빠진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통학 시간만큼은 책을 덮고 40분 내내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그 풍경은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다. 그날그날의 빛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졌다. 나만의 것이라 부를 만한 게 있다면, 그때의 기억과 감성이 아닐까.”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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