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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패션계 주무르는 신 권력 인플루언서

중앙일보 2017.01.18 00:01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 팔로어 83만 아이린을 주목하는 이유
 
패션·뷰티업계에서 대표적인 인플루언서로 꼽히는 모델 아이린.

패션·뷰티업계에서 대표적인 인플루언서로 꼽히는 모델 아이린.


패션계에 요 몇년새 새로운 타이틀이 생겼다. 인플루언서(influencer), 직역하면 영향력 있는 자다. 브랜드 CEO나 세계적 디자이너라면 모를까, 그외에 대체 누가 인플루언서일까 싶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수십 만, 수백 만 팔로어 수를 자랑하는 이들이 패션 산업을 좌지우지 한다. 포스팅 하나로 브랜드를 띄우는 건 일도 아니다. 수입 역시 만만찮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50만 이상 팔로어를 확보하면 건당 최소 145만원(1000파운드)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모델 출신의 아이린 김(30)이 대표적 인플루언서로 꼽힌다. 모델 데뷔 전부터 시작한 인스타그램(@ireneisgood) 팔로어 수가 83만이 넘어가면서 톱스타 못잖은 대접을 받는다. 국내외 브랜드의 화보 촬영부터 패션쇼 참석,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의 모델 겸 컨트리뷰터로도 활약 중이다. 지난해 타임지는 ‘세상을 바꿀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으로, 포브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중 한 명으로 뽑기도 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영향력이란 단순한 숫자일까. 아니라면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이린과 마주 앉았다.

 
 지난해 3월 케이블 패션 채널 온스타일의 ‘매력티비’에 출연한 빅토리아 베컴과 한 컷.

지난해 3월 케이블 패션 채널 온스타일의 ‘매력티비’에 출연한 빅토리아 베컴과 한 컷.


모델 에이전시인 소속사 ‘에스팀’에 인터뷰를 요청하자 “연말이라면 잠깐 짬을 낼 수 있다”는 답이 왔다. 2~3월엔 세계 4대 패션위크 기간 동안 일정이 빽빽하게 채워진다는 설명이다. 패션쇼 참석만이 아니라 현지에서 따로 촬영 일정이 잡히기 때문이다. 주로 브랜드의 디지털 콘텐트와 화보다. 이를 위해 1월부터 미리 ‘촬영 기획’을 시작해야 하기에 1월도 일정 잡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인터뷰 당일도 오전 6시에야 집에 들어갔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발맹 디자이너인 올리비에 루스테인과 포즈를 취했다.

지난해 10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발맹 디자이너인 올리비에 루스테인과 포즈를 취했다.

 
인플루언서라면 현장에서 옷 입고 포즈만 취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콘텐트를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며) 이게 내 또다른 인스타그램 계정 ‘피아 스페이스(@theFIAspace)’다, 일종의 창작 플랫폼으로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동영상 콘텐트를 직접 만들어 올린다. (하나를 클릭하며) 이건 샤넬 동영상이다. (다른 것을 클릭하며) 내 얼굴을 모자이크 한 9개 썸네일을 하나하나 클릭하면 각각 서로 다른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콘텐트다. 얼마전 마크 제이콥스 미국 본사에서 옷만 보내주면서 ‘창작성을 인정하니 알아서 해보라’고 의뢰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피아스페이스’ 계정에 올린 창작 콘텐트. 모자이크식으로 사진을 분할하고 각각에 서로 다른 브랜드의 동영상을 배치했다.

인스타그램 ‘피아스페이스’ 계정에 올린 창작 콘텐트. 모자이크식으로 사진을 분할하고 각각에 서로 다른 브랜드의 동영상을 배치했다.


기존의 파워 블로거와 다른가.
“창작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나는 디지털 콘텐트팀을 따로 두고 있다. 사진가·작가 등과 함께 6명이서 ‘하이스튜디오’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프로젝트성으로 내 콘텐트를 만든다. 인스타그램 콘텐트는 짧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을만큼 강렬해야 하기에 팀을 꾸렸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에서 아이린은 한국 패션 모델 대표로 ‘소셜미디어 속 모델의 영향력’을 주제로 강연했다. 단체 사진은 아이린의 왼쪽부터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수지멘키스, 중국 모델 리우웬, 보그 차이나 편집장 안젤리카청, 글로벌 톱모델 사샤루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에서 아이린은 한국 패션 모델 대표로 ‘소셜미디어 속 모델의 영향력’을 주제로 강연했다. 단체 사진은 아이린의 왼쪽부터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수지멘키스, 중국 모델 리우웬, 보그 차이나 편집장 안젤리카청, 글로벌 톱모델 사샤루스.

 
인플루언서라는 게 본래 이런 일인가.
“그 타이틀이 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고, 거기에 이름이 있어야 하니 받아들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냥 맨날 사진 찍어 올리는 것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원래 이런 창작자를 꿈꾸었나.
“아니, 어릴 때 꿈은 모델이었다. 미국 시애틀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 때 한국에 왔다. 열 다섯 살 국제학교를 다닐 무렵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캐스팅 되기도 했다. 제법 큰 에이전시였는데 날 보자마자 성형수술을 하자는 거다.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더니 ‘살짝 업그레이드를 하자’고 했다. 엄마도 엄마지만 나 역시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서 모델에게, 그것도 어린 아이에게 얼굴 고치자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그냥 학교만 다녔다.”

※이후 기회는 더 있었다. 중학교 때 패션잡지 ‘세씨’의 모델 콘테스트에서 상을 타며 한두 번 화보를 찍었다. 하지만 부모는 마뜩해하지 않았다. 아이린의 모델 일을 ‘겉멋 든 딴따라’로 여겼다. 마음을 접었다. 뉴욕 패션스쿨 ‘FIT’에 진학(텍스타일 전공)하자마자 이름난 에이전시인 ‘포드 모델스’에 캐스팅 됐을 때도 가족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비싼 돈으로 유학까지 갔는데 모델을 하냐’며 ‘일단 학업을 끝내라’고만 했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샤넬문화전’에 보그 코리아의 객원 에디터로 참석했던 모습.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샤넬문화전’에 보그 코리아의 객원 에디터로 참석했던 모습.

 
그럼 학생 때는 공부만 한 건가.
“패션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했다. 스타일리스트의 어시스턴트도 하고 스타트업인 패션 온라인 잡지에서 인턴으로도 일했다. 그때 소셜 미디어의 비주얼 콘텐트를 만드는 일을 했다. 창업 초기 200명이었던 팔로어가 떠날 땐 10만 명까지 늘어났다. 그 일을 계기로 처음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사진·영상을 올리면서 디지털 세상에 대해 많이 배웠다.”

지난해 7월 캐나다 토론토의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 개점식 행사에 참가한 모습.

지난해 7월 캐나다 토론토의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 개점식 행사에 참가한 모습.

 
그럼 모델은 어떻게 됐나.
“5년 전, 그러니까 스물 다섯에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친한 언니가 구글에 ‘코리안 모델 에이전시’로 키워드 검색을 해서 목록 맨 첫 줄에 있던 에스팀을 알아냈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도 회사에서 포트 폴리오를 보내달라더라. 사실 그 나이에 모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큰 기대없이 미팅을 했다. 그런데 끝나고 30분 뒤에 전화가 오더라. 느낌이 나쁘지 않다며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때마침 서울패션위크 기간이라 바로 무대에 섰다. 스티브 J & 요니 P, 자뎅 드 슈에뜨 쇼에 섰는데 그땐 그게 주요 브랜드인지도 몰랐다.”

실제 해보니 어땠나.
“막상 현장에서 보니 나는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모든 게 평범했다. 광대가 포인트인 한혜진 언니처럼 눈길이 가는 얼굴도 아니고, 송경아·혜박 선배들처럼 하이엔드 패션의 포스가 흐르는 것도 아니더라. 그렇다고 키(178cm)라도 큰가. 스스로 특징을 찾고 내 스타일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다른 모델보다 남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은 이를 위한 창이 됐다.”
 
지난해 12월 상하이에서 열린 막스마라 패션쇼 참가 당시 다른 나라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동영상 을 촬영했다.

지난해 12월 상하이에서 열린 막스마라 패션쇼 참가 당시 다른 나라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동영상을 촬영했다.




※때맞춰 런웨이에 서는 일 말고도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시 해외에서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이 막 급증하면서 이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Mnet USA ‘K STYLE )이 생긴 것. 영어에 능통한 아이린이 진행자로 발탁됐다. 그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된 무지개색 머리도 그때 시작했다. 말그대로 ‘나만의 색깔’을 보여주자는 목적이었는데 효과가 있었다. 북적대는 해외 패션쇼장에서 알록달록 머리가 튀다보니 자주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그를 알아보고, 기억하고, 디지털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팔로어 수가 30만이 됐을 때 샤넬에서 연락이 왔다. 파리 컬렉션에 게스트로 참석하고, 다른 나라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촬영하자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 샤넬 쇼에 연예인 아닌 사람을 초대한 건 아이린이 처음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화보 컷 이외에도 ‘먹방’ 같은 일상적인 모습을 자주 올린다.

인스타그램에는 화보 컷 이외에도 ‘먹방’ 같은 일상적인 모습을 자주 올린다.

 
팔로어가 늘어날수록 숫자에 더 민감해지지 않나.
“일부러 안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계산하면 개성이 다 사라질 거 같으니까. 시작 자체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공간, 마음에 드는 스타일링을 보여주자는 거였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포스팅이라는 게 사람 심리를 꿰뚫는 작업이라는 건 알게 됐다. 일단 사진의 퀄러티가 좋아야 하고 뭔가 딱 봤을 때 강렬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아요’를 누르고 다른 포스팅을 연달아 보게 된다. 무엇보다 ‘팔로어와 공감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걸 많이 올린다. 엄마와 같이 있는 모습이나 머리를 말리는 사진 같은 거다. 요즘에야 호사로운 행사도 다니고 좋은 곳도 많이 가보지만 그것은 지극히 인생의 한 부분이다. 인플루언서를 시작할 때 내 생활은 이렇게 화려하지도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내 일상을 다 가리면 누가 나와 공감할 수 있을까. 다들 거짓말인 걸 눈치챌 거다. 사람들은 은근 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더 좋아한다(웃음).”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은 언제 가장 느끼나.
“내가 입었던 옷이 잘 팔리는 그런 때가 아니다. 팬이라며 편지를 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어린 친구들을 볼 때다. ‘언니 머리 탈색하기 전부터 팔로잉 했는데 지금 이렇게 대단해진 걸 보니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글을 읽으면 정말 인플루언서가 됐구나 싶고 책임감도 느껴진다. 이런 의미에서 ‘공인’이라고까지 여겨진다. 더 좋은 일, 더 영감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3월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이린.

지난해 3월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이린.

 
언제든 새 경쟁자가 생길 수 있는데.
“더 많아졌으면 한다. 해외에 나가보면 패션계에서 알아주는 한국인은 연예인이 대부분이다. 다른 나라는 나같은 인플루언서가 서로 뭉쳐 일하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런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다. ‘아미 송(Aimee Song)’이라는 1세대 코리안 블로거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존 패션계 기득권층은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서로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이제는 보그같은 패션 잡지에서도 나를 콘텐트로 활용하려 하고, 나 역시 여전히 매체의 영향력이 필요하다. 가령 내가 객원 에디터가 되면서 한국 매체나 브랜드를 해외에 소개할 수 있으면 서로 좋은 거 아닌가. 컨트리뷰터가 된 에스티 로더의 경우도 이제는 나를 다르게 평가한다. 발탁될 때까지 4번이나 뉴욕에 불려 갔고, CEO와 일대일 면담까지 할 정도로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일단 되고 난 뒤엔 크리에이터로서의 나를 인정한다. 제품 개발 미팅도 함께 하고 있다.”

※인터뷰 중간 ‘인플루언서의 인플루언서는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두말없이 ‘할머니’를 꼽았다. 아이 넷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늘 완벽한 화장과 옷차림을 유지하던 모습이 어릴 적부터 닮고 싶었단다.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자기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신기루처럼 스타가 뜨고 지는 디지털 세계에서 그는 얼마나 오래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적어도 아이린에게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은 그때를 위해 남겨둬도 늦지 않을 듯 싶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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