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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초여름, 盧 대통령은 '함께' 있었습니다

중앙일보 2017.01.12 18:04
힘든 초여름이었습니다. 2004년 6월 21일 월요일 새벽 4시. 이라크에서 일하던 한국인 김선일씨(당시 33세)가 무장단체에 납치됐다는 긴급뉴스가 알 자지라TV 발로 터져 나왔습니다. 무장단체는 “24시간 내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김씨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정부의 노력에도, 국민들의 무사 송환 기원에도 김씨는 무참히 살해됐습니다. 김선일씨의 시신 국내 송환 과정을 담당한 전직 외교관은 "윗옷 주머니에 러브레터가 들어 있었는데, 사랑하는 현지 여성의 집 주변에서 납치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 일이 기억납니다.

당시 외교통상부 출입 기자들은 사건 발생 이후 기자실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23일 새벽 1시 45분께 ‘김씨 피살’ 외신 속보를 처음 접한 후배 기자의 비명이 기억에 또렷합니다. ‘세월호 7시간’관련, 박근혜 대통령측이 헌재에 “김선일 사건 때 노무현 대통령도 관저에서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허황된 물타기’라며 팩트 반박에 나섰습니다. 촘촘히 기록된 노 대통령의 근무 일지도 공개했습니다.

맞습니다. 12년 전 김선일 사건 때 노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있었습니다. 관저에 머문 시간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기자실 폐쇄 등을 놓고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던 노 대통령과 청와대였습니다만, 청와대·외교부 출입 기자들은 대통령이 대책을 세우는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병을 해도 아랍권이나 이라크에 적대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재건지원에 전력한다는 입장”이라는, 사실상 이라크 무장단체에 보내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오전 9시 수석 보좌관 회의 뒤 나왔습니다. 관저에서 전화로 첫 보고를 받은 이후 이어진 조찬 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 등은 물론 '대면(對面)'으로 이뤄졌습니다. 22일 저녁 9시30분, 예고없이 외교부 상황실에 들러 “잠은 좀 잤냐”고 근무자들을 격려한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은 뭐했냐”라는 의혹이 제기될 리 만무합니다.

‘세월호 7시간’ 문제의 핵심은 ‘관저 정치’도 ‘성형 시술’도 아닙니다. 일상 시간에 일어난 비상 사태에 '대면 보고'도 못하는, 그 상태로 수년간 국정이 운영돼 왔다는 '비정상적 통치'에 있습니다.“김정은이 쳐들어 와도 국가안보실장이 팩스로 보고하고, 문고리들에게 전달하셨냐 확인하고 그럴 것 아니냐. 김정은이 실기(失期)한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김선일 사건을 돌이키면서 든 생각이 또 있습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야당 한나라당이 '초당적'으로 대응한 일입니다. 물론 이라크 파병 찬성 베이스이긴 했지만 야당은 정부를 때리지 않았고, 사태 해결에도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몇몇 여당 의원들이 이라크 파병 철회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무장 단체에 맞서는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진 않았습니다.

대통령 탄핵 국면을 노린, 중국과 일본의 외교 공세가 거칩니다. 야당 의원들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조공국 대하듯 무례한 외교를 구사하는 중국에 가서 '사대 외교' 논란을 빚었고, 청와대 김관진 외교안보실장은 워싱턴에서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사드를 배치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야당은 피아(彼我)구분을 못하는 것 같고, 김관진 실장은 갈등 해결 보단 갈등 증폭 외교를 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 같으면, 대통령 권한 대행이 여야 지도부를 부르고, 정치권은 생각이 좀 달라도 외부 압력에 공동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을까요. 외교에서 조차 국익은 없고 정파 이익만 가득한 풍비박산 대한민국입니다.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kim. 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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