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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부적격 판정 나흘 뒤 조건부 승인…낙원동 철거현장 매몰 사고 못 막았다

중앙일보 2017.01.12 01:46 종합 12면 지면보기
지난 7일 오전 11시30분쯤 ‘쿵’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1층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6m 아래로 떨어졌다. 그중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 낙원동 톰지호텔 철거현장 붕괴 사고를 수사 중인 종로경찰서는 철거작업을 벌인 업체의 과실이 있었는지 등을 보고 있다. 경찰은 현장 감식을 진행했고 종로구청 직원, 시공·하청업체 직원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전관리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11일 수사 담당 경찰관은 “업체 관계자들이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일부 인정했다”고 말했다.
 
‘신고제’의 한계
이 사고로 철거 공사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가 아닌 업체의 ‘신고’만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다시 부각됐다. 건축법상 시공업체는 지자체에 착공 7일 이내로 해체 방법과 안전조치 계획 등이 담긴 해체공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톰지호텔의 철거 공사를 맡은 시공업체 신성탑건설은 지난해 10월 13일 종로구청에 계획서를 냈다. 구청은 다음 날 바로 서류를 수리했다. 구청은 업체가 낸 계획서에 대해 보완 조치를 요구하거나 반려할 권한이 없었다. 지난 8일 사고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일정 규모 이상인 건물의 철거를 건축법상 현행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관련 법 개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반이 지난 10일 낙원동 붕괴사고 현장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반이 지난 10일 낙원동 붕괴사고 현장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부적격 판정 4일만에 뒤바뀐 판정
건물이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철거업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적용 대상은 높이 31m 이상(약 10층 높이의 건물)인 건축물인데 지상 11층인 톰지호텔도 이에 해당한다.

산업안전공단 “지지대 잘 세워라”
이행했나 확인 의무 규정은 없어
경찰 “업체도 안전관리 미흡 인정”
하청·재하청 구조, 안전교육도 부실
“안전 미비 땐 거액 과태료 매겨야”


신성탑건설은 지난해 10월 13일 이 공단에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했지만 공단은 ‘붕괴 위험성에 대한 안전성 검토 미실시’ 등을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신성탑건설이 바로 다음 날 자료를 보강해 오자 이 공단은 부적격 판정을 내린 지 4일 만인 17일 ‘공사할 때 지지대를 똑바로 세우라’는 조건이 붙은 ‘조건부 적격’ 승인을 내렸다. 공단 측은 “보통 공단에서 부적격 결정을 내리면 시공업체는 발주처와의 계약 기간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서라도 문서를 보완한다. 4일 만에 부적격에서 조건부 적격이 된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건부 적격으로 승인이 난 이후 지자체나 공단이 조건 이행을 확인하도록 돼 있는 규정은 없다.

사고 현장에 있던 굴착기 기사 문모(42)씨는 경찰 조사에서 “밑을 받치는 쇠파이프(지지대)가 약해서 무너진 것 같다”고 진술했다. 지지대는 건축용어로 ‘잭서포트’라고 불리는데 공사 중 바닥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중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당시 1층에는 20t짜리 굴착기와 철근 등이 쌓여 있었다. 경찰은 공사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현장에 잭서포트를 비롯한 안전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진술을 얻었다.
 
원청·하청·재하청 관행
원청업체의 하청, 하청업체의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건설업계 관행은 이번에도 확인됐다. 애초 철거작업은 신성탑건설이 맡았으나 신성탑건설은 또 다른 철거업체인 ‘다윤C&C’와 2억8000만원 상당의 도급 계약을 맺어 철거를 진행했다. 다윤C&C는 인력업체인 ‘황금인력’을 통해 인부를 고용했다.

사망한 인부 김모(55)씨와 조모(49)씨는 황금인력 소속이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하청이 이어지다 보면 적은 예산에 발주처가 요구하는 공사기간까지 맞춰야 해 일용직 근로자들을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시키지 않고 현장에 투입하게 된다. 철거 현장에서 안전 관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큰 금액의 과태료나 벌점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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