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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도 걸기 전에, 발목 잡힌 전기 화물차

중앙일보 2017.01.12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국회 문턱 못 넘는 전기차 특별법
2조원대 전기 화물차 시장이 열릴 수 있을까. 이 새로운 시장을 중국 업체들에게 선점당할 것인가. 국회가 그 키를 쥐고 있다. 하지만 1월 임시국회가 9일부터 열렸지만 대부분의 상임위원회는 개점 휴업 상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한데다 2월에도 임시국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여야 모두 급할 게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 중 하나인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안’도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21일 열린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등의 반대로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헌승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1.5t 이하의 차량, 직영제, 20인 이상 사업자 등의 조건에 한해 화물차 증차를 허용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다른 하나는 전기차에 한해 화물차 증차를 허용하자는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의 법안(일명 전기차 특별법)이다.

이 가운데 특히 전기차 특별법이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 정책이란 점도 있지만 국내에서 막 시동을 걸려는 전기 화물차 시장의 미래 주도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택배회사들이 전기 화물차를 도입하면 2020년 무렵부터 국내에 2조원대에 이르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택배회사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을 사는 추가 부담 없이 택배차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택배 업체가 전기 화물차를 늘리면 국내 시장이 커질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CJ대한통운은 1만4000여 대, 쿠팡은 3000여 대의 택배차를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관련 법이 없고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현대·기아차 등이 전기 화물차 신차를 만들지 않고 있다. 몇몇 중소기업이 0.5t 또는 1t급의 기존 화물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이유로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도 전기 화물차 개발·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기존 화물차를 전기차로 개조할 때 1400만원을 준다. 이주현 환경부 교통환경과 사무관은 “올해 화물차주의 부담이 없는 수준에서 개조 보조금 시범 사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t급 경상용 전기자동차 기술개발 사업’을 마련해 전기 화물차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김기열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항공과 사무관은 “대동기업·르노삼성·포스텍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2019년까지 배터리와 전기차용 파워트레인 시스템 등 부품을 국산화하고 1회 충전으로 250㎞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상용차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회 충전으로 200㎞ 달리는 BYD의 T3 모델. [사진 BYD]

1회 충전으로 200㎞ 달리는 BYD의 T3 모델. [사진 BYD]

법안이 계속 표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 전기차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 기업이 국내 시장을 선점하는 빌미를 줄 수 있다. 가뜩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으로의 화장품·콘텐트 수출길이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전기 화물차 시장마저 내줄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자국 자동차 브랜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보조금 지원, 세금 감면,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전체 자동차 시장의 60%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지원 덕에 중국의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11만4000대로 단일 국가로는 미국(18만200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블룸버그). 게다가 승용차·버스·물류트럭 등으로 전기차 라인업도 다양해졌다. 중국의 지난해 1~7월 전기 물류트럭 누적 판매량은 7097대로 2015년 같은 기간보다 88% 늘었다.

이런 가운데 중국 1위이자 세계 1위인 BYD(比亞迪·비야디)는 지난해 10월 한국 법인인 ‘비와이디코리아 유한회사’의 설립 등기를 마쳤다. BYD코리아는 코스닥 상장사인 이지웰페어에 제주에서 BYD 차량을 수입·유통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중국 조이롱자동차는 광주시·CJ대한통운과 손을 잡고 2020년 무렵부터 국내에서 전기 화물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들뿐 아니라 벤츠·닛산·포드 등도 전기 화물차를 만들고 있다. UPS·페덱스·야마토는 일부 택배 라인에서 전기 화물차를 운행하고 있다.

국내 택배 업체의 전기 화물차 도입은 걸음마 단계다. CJ대한통운은 제주에 0.5t짜리 개조 전기 화물차 2대를 시범 운용 중이다. 쿠팡은 대구에서 1t급 전기차 택배 트럭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제주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만 봐도 중국 전기차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들은 별로 관심도 없다”고 기술 격차를 우려했다. 쿠팡 관계자는 “중국보다 기술력에서 앞서는 유럽 업체의 전기 화물차 주력은 밴 형태로 낯선데다 폭이 넓어 국내 골목길 주행에 적합하지 않아 당장 국내 시장을 노리지 않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더불어민주당·화물연대 등은 기존 디젤차든 전기차든 화물차 증차에 반대 입장이다. “지금도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화물차를 더 늘리면 택배 단가가 더 떨어져 영세한 화물차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당과 화물연대·용달협회도 친환경 전기 화물차 개발은 반긴다. 지난해 6월 국토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발생한 미세먼지의 29%(전국 11%)가 경유차 탓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경유차 862만대 중 326만대가 화물·특수차량이며, 여기서 경유차 배출 미세먼지의 70%가 나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전기 화물차 증차에도 반대 입장이다. 결국 과당 경쟁이 벌어지긴 마찬가지 아니냐는 논리에서다.

이에 대해 이주열 과장은 “ 택배차가 부족한데도 택배 평균 단가는 2012년 2506원에서 2016년 2308원으로 떨어졌다”고 반박했다. 이우현 의원실 관계자는 “적어도 2~3년 안에는 전기 화물차가 급증할 우려가 없 다”며 “1월은 물론 2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 통과를 낙관할 수 없는데 3월 이후에는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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