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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내비게이션] 직업 안정성에 경쟁률 20대 1 … 인공지능 의사와 ‘밥그릇’ 다툴 수도

중앙일보 2017.01.11 00:01 Week& 4면 지면보기
의과대학
‘학과 내비게이션’ 시리즈는 청소년들이 관심 있는 대학과 학과를 소개합니다. 대입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의 비중이 늘면서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에 대한 탐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은 여전히 대학 간판이나 점수에 맞춰 학과를 고릅니다. ‘열려라 공부’에서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어떤 진로가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7회는 의과대학입니다.
가톨릭대 의대 3학년 학생들이 실습용 마네킨을 놓고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증상에 대한 처치법을 익히며 의사로서 역량을 키운다. [사진 가톨릭대 의과대학]

가톨릭대 의대 3학년 학생들이 실습용 마네킨을 놓고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증상에 대한 처치법을 익히며 의사로서 역량을 키운다. [사진 가톨릭대 의과대학]

“나는 종교·국적·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 1968년 세계의학협회 총회에서 채택한 ‘제네바 선언’의 일부다. 제네바 선언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재해석해 완성됐다. 대한민국 의사라면 의과대학(의대)을 졸업할 때 누구나 선언을 한다. 의사로서 가져야 할 윤리의식과 책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의사는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다. 고교 이과 최상위권 학생은 대부분 의대 진학을 희망한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안정성만 보고 막연히 꿈꾸는 경우가 많다. 의대에 진학하면 무슨 공부를 하는지, 어떤 진로가 있는지 알아봤다.

정신의학과·재활의학과·마취과 부상
예과 2년+본과 4년 … 생명윤리·협력 중시
공부량 많아 하루 3~4시간 잠자기 일쑤


의사 전공 안에서도 ‘정재영’‘마방진’ 인기
고교 졸업생이 진학할 수 있는 의대는 현재 전국 38개 대학에 개설돼 있다. 대학 졸업자를 뽑아 의사로 양성하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은 강원대·건국대·동국대·제주대·차의과대 등 5곳이다. 의전원은 다양한 학부 전공자를 의사로 키운다는 취지로 2005년 도입됐다. 하지만 의전원에 이공계 인재만 쏠리고, 과도한 교육비가 논란이 되자 2010년 대학 자율로 바뀌었다. 의대와 의전원 중 무엇을 운영할지를 대학이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상당수 대학이 의전원 대신 의대를 선택하면서 의대는 고교 이과 최상위권이 가장 선망하는 학과가 됐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2014)에 따르면 전국의 의대에서 선발한 인원은 1749명이었다. 지원자가 3만5177명으로 입학경쟁률이 20대 1이나 됐다.

의대 경쟁률이 높은 데엔 의사가 안정적 직업이라는 점이 한몫한다. 하지만 박주현 울산대 의대(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안정성만 바라보고 의대 진학을 꿈꿔선 곤란하다고 조언한다. 박 교수는 “취업이 잘 되고 소득도 높다는 생각에 진학하면 의대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길고 고되기 때문에 봉사와 희생정신 없으면 학업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까진 의대의 인기가 높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해 머지않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전문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달 IBM이 개발한 의료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왓슨을 도입했다. 왓슨은 의학저널과 전문문헌 290종, 의학교과서 200종, 전문자료 1200만쪽을 학습한 인공지능 의사다.
반면에 인공지능이 의사의 업무를 일부 도울 수는 있어도 의사 역할 자체를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환자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기계가 대신 해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주천기 가톨릭대 의대학장(안과)은 “환자를 대면해 신체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낮게 해주는 의사의 역할은 미래 사회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의사 직업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인구 감소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인구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의사가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박은 ‘아직도 한국에서 인구 대비 의사 숫자는 선진국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 건강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는 한국에선 2.2명이다. OECD 28개 회원국 중 멕시코와 함께 꼴찌 수준이었다. 회원국 평균 3.3.명보다 1명이 적다.

의사 안에서도 전문 영역에 따라 미래 전망이 다를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내외산소정’(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정신건강의학과)이, 10년 전부턴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이 인기가 높았다.

최근엔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과 ‘마방진’(마취과·방사선과·진단검사의학과)이 부상하고 있다. 환자를 직접 대하는 시간이 적거나 의료분쟁에 빠질 위험이 적은 분야다. 일 못지 않게 자기 생활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의사들도 삶의 질이 높은 분야를 선호한다.

인성 교육 강화 … AI 시대 경쟁력 갖는 의사 양성
의대는 다른 학과와 달리 6년제로 운영된다. 예과 2년, 그리고 이후의 본과 4년을 합해서다. 보통은 예과 1,2학년엔 교양과목과 일반물리·일반생물 같은 기초 과학을 배운다. 전문적 의학 지식을 익히기에 앞서 기본 소양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의대에선 대개 예과 때 인성교육을 강조한다.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직업인 만큼 다른 직업보다도 윤리의식이 중요해서다. 김동석 연세대 의과대학(신경외과학) 교육부학장은 “대학입시에 열중하느라 자신밖에 몰랐던 학생들에게 사회성·협동심 등 의사가 갖춰야 할 자세를 예과 과정에서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 학생들이 혈압을 재고 해석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연세대 의과대학]

연세대 의대 학생들이 혈압을 재고 해석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연세대 의과대학]

대학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인교육을 한다. 가령 가톨릭대는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 인간과 사회 같은 인문교육에 300시간을 배정한다. 학생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게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대학 예과 1학년 김재훈씨는 “1학년 2학기 때 생명윤리를 다룬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 간의 협력도 매우 강조한다. 연세대 의대는 2014년 학점제를 폐지했다. 학생 간의 과도한 경쟁을 줄이기 위해서다. 전체 교육과정을 절대평가로 전환해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성적을 내고 있다. 김 교육부학장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의예과에 오는 만큼 학생에게 경쟁보다는 협력을 요구한다. 실제 의사가 되면 경쟁보다 협력 할 일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1학년 때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경험하게 한다. 이 역시 협동심과 사회성을 기르게 하려는 취지다. 이런 인성교육은 본과에서도 이어져 의료커뮤니케이션·의료법윤리 같은 수업을 듣게 된다. 예컨대 의료커뮤니케이션 수업에선 ‘응급환자의 사망 소식 전달하기’ ‘의사와 방사선사와의 갈등’ 등을 주제로 정한 뒤 학생들이 역할극을 하며 여러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익힌다.

울산대는 지난해부터 ‘의학과 예술 수업’을 마련해 합창을 배우게 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의사·간호사·영양사 등 많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이런 만큼 협업과 소통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절충하는 법을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이 대학은 1학년 때부터 매주 금요일엔 병원의 각 부서를 견학해 병원 내 여러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죽음을 앞둔 환자나 가족들과 교류하며 의사로서 가져야 할 소명의식과 책임감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한다.

본과 3, 4학년 때 병원 각 부서 돌며 임상실습
본격적으로 의학 공부를 하는 건 본과에서다. 본과 1,2학년 때는 해부학·생리학·병리학 같은 기초의학과 정신과학·외과학·호흡기학 등의 임상의학을 배운다. 실험용 시체(카데바)를 해부하며 신체의 구조, 장기의 모양·위치 등도 탐구한다. 이어 3, 4학년이 되면 강의실이 아니라 병원으로 출근해 각 부서를 돌며 실습을 한다.

그동안은 본과 1,2학년 교육에서 기초와 임상을 분리했는데, 이제는 기초와 임상이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추세다. 예전엔 생리학·해부학·병리학 같은 과목을 따로따로 배웠다. 최근엔 순환계·소화계·근육골격계 등 우리 몸의 기관별로 배우며 이런 과목을 동시에 익힌다. 가령 순환계 수업에선 해부를 하며 심장의 구조·모양·위치를 살피고(해부학), 심장의 수축·이완 작용을 배운다(생리학). 또 심장마비·심근경색·심장암과 같은 심장 관련 질병에 대해 배운다(병리학). 이후 임상의학에선 각 분야별로 기본적인 검사법과 주요 질환의 증상과 원인, 진단과 치료에 대한 지식을 익히고 환자에게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본과에 올라가면 공부할 양이 급격히 늘어난다. 연세대 본과 1학년 김민지씨는 “토요일마다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학과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며 “월·화요일엔 수업 이후 자정까지 공부하고, 다른 요일엔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잘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의대는 다른 학과와 달리 유급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한 과목이라도 70점 아래로 떨어지면 재시험을 치른다. 이후에도 성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당 학년을 다시 다니게 한다. 가톡릭대 의대 예과 1학년 김재훈씨는 “예과 때는 학과에서 한두 명, 본과 때는 4~5명 정도 유급한다고 들었다”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한 과목도 대충 알고 넘어가지 말라는 취지 같다”고 말했다.

본과 3학년이 되면 병원으로 임상실습을 나간다. 병원에서 각 부서를 도는데 3학년 때는 사람의 생명과 좀더 연관이 깊은 외과·내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정신건강의학과를 견학한다. 이어 4학년에선 재활의학과·마취과·비뇨기과·피부과·안과 등 나머지 부서를 경험한다. 한 부서당 실습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8주 간 이뤄진다.

학생이 직접 환자를 진료할 수는 없지만,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해당 부서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에 참여한다. 예컨대 외과 실습을 할 때는 오전 7시에 주치의를 따라 입원환자 회진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수술에 참여하거나 참관한다. 울산의대 본과 3학년 김지애씨는 “외과에서도 유방외과·갑상선외과 등 다양한 부서를 경험한다”며 “수술실에선 줄을 잡고 있는 등 사소한 역할을 하지만 수술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한다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졸업 후 진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거쳐 전문의 시험
대학원 바로 진학해 기초의학 연구하기도
의과대학을 졸업한다고 자동으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국가고시’라는 이름의 시험에 합격해야 의사면허가 나온다. 의대생 중 90% 이상이 이 시험을 본다. 의사면허를 따고서도 대부분은 병원에 남아 실습 과정을 거치며 경험과 실력을 쌓는다. 이 과정은 인턴(수련의) 1년, 그리고 이후의 레지던트(전공의) 4년으로 이뤄진다.

인턴 단계에선 전공 과목을 정하지 않고 병원 내 여러 과를 광범위하게 경험한다. 자기가 어느 전공에 적성이 잘 맞는지를 탐색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울산대 의대를 졸업해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레지던트 2년차로 근무하는 강현지씨는 “인턴 때 피부과에서 환자와 소통하고 진료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껴 피부과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소화기내과·산부인과·성형외과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의가 되려면 4년 간의 레지던트 과정를 거쳐야 한다. 이 때에는 자기가 희망한 전공 분야에서 수련을 한다. 레지던트를 마치고선 ‘전문의’ 자격시험을 본다. 이 시험에 합격해야 실제 전문의가 된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의사는 ‘일반의’로 불린다. 전문의는 일반의보다 병원 취업이나 개업에 유리하다.

전문의를 취득한 이후에도 대학병원에 계속 남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의사를 ‘전임의’라 한다. 대부분은 의과대학 교수를 목표로 하는 의사들이다. 이렇게 보면 의대에 입학해 전문의가 되기까지 최소 11년이 걸린다. 의대 6년(예과 2년+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합한 기간이다. 그래서 의대생들은 “의대 졸업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들 한다.

의대를 나온 뒤 인턴·레지던트를 거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해 기초의학을 연구하기도 한다. 의학은 크게 ▶기초의학(해부학·생리학 등) ▶임상의학(외과·내과 등) ▶사회의학(법의학·의료법윤리학 등) 3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임상의학이 직접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분야라면, 기초의학은 새로운 치료법이나 진료법을 연구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이정호 카이스트 의과대학원 교수는 2003년에 연세대 의대 학부 과정을 마친 후 인턴을 하는 대신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했다. 이 교수는 “직접 환자를 보는 것보다는 수많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2015년 세브란스 병원 신경외과 김동석 교수(연세대 의과대학 교육부학장)팀과 함께 약물로는 잘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간질 발작)의 원인을 찾아냈다. 이 질병의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의사 중에선 변호사 자격증도 갖춰 의료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도 있다. 지난해 가톨릭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졸업하고 법무법인 ‘고우’에서 일하는 김대호 변호사가 그런 예다. 그는 사법고시에 붙어 변호사로 일하다 의학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의전원에 진학했다. 김 변호사는 “의전원을 다닌 덕에 변호사로서 의료 분야에 전문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의전원에서 배운 의학 지식 못지않게 사람과 소통능력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했다.

의대 졸업생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의대에서도 학생들의 진로 계발에 적극적이다. 몇몇 대학은 본과 3~4학년 때 두세 달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경험하게 하는 단기 인턴십을 마련한다. 김동석 연세대 교수는 “외국 대학이나 의료 기관에 교환학생으로 가거나 연구소·국회·신문사·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기관에서 실습을 한다. 이 기간의 경험을 진로와 연결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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