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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유레카, 유럽] “놀랄 만큼 한 일이 없어”…메이비로 불리는 영국 메이 총리

중앙일보 2017.01.09 01:19 종합 18면 지면보기
‘테리사 메이비.’

언론들, 취임 6개월 가혹한 성적표
노동자 이사회 참여 등 약속 무산
일부선 “브렉시트 입장 불분명” 주장
통제 위주 폐쇄적 리더십 도마에
“단명한 고든 브라운 뒤따를 수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의 제목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이름 메이(May)를 메이비(Maybe)로 바꿨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지난해 7월 집권한 메이를 두고 “한때 ‘메이 혁명’이란 표현까지 나왔으나 지난 6개월 간 놀라울 정도로 한 일이 없다”며 “영국민들은 총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총리 자신도 모를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았다.

메이의 메시지가 달라진 건 아니다. 일관되게 ‘보수당을 노동자를 위한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기조다. 8일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고에서도 ‘공유 사회(Shared Society)’를 내세웠다. 텔레그래프는 “불평등을 치유하기 위한 구호에 초점을 맞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큰 사회(Big Society)’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자조를 강조한) ‘사회란 없다’란 개념 둘 다를 거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말을 아끼는 것도 여전하다. 3월 말까지 브렉시트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겠다고 것 외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의미한다”를 반복한다.

그 사이 행동은 드물었다. 노동자를 기업 이사회에 참여시키겠다고 한 약속은 흐지부지됐고 공립 중등학교(그래머 스쿨) 도입 계획도 대폭 축소됐다. 영국 정부 내 브렉시트 준비 과정을 두고도 “전략도 입장도 불분명하다”는 내부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메이를 메이비라고 표현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메이의 지지도는 고공 행진 중이다. 특히 우리로 치면 서울 외곽순환도로인 M25 밖에서 안정적인 상태다. 캐머런과 대비되는 절제하는 스타일에 대한 지지다. 노동당이 부진한 혜택도 보고 있다. 그러나 메이의 권력 운용 방식을 직·간접적으로 체감하는 의회에서부터 불만이 싹트고 있다. 폐쇄적이면서도 통제·응징하려는 리더십 때문이다.

우선 메이와의 편한 대화가 어렵다. 캐머런 전 총리의 사람들은 총리 공관 소파에서 앉아서 객쩍은 농담도 섞어가며 정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소파 정부’다. 메이는 소파 대신 테이블을 뒀다. 회의 대상도 통제했다. 강력한 ‘게이트 키퍼’(비서실장)를 뒀는데 피오나 힐과 닉 티모시다. 영국 언론이 ‘닉-피 필터’로 부르는 이들이다. 메이는 이들을 통해 말 그대로 만사를 결정한다. 병목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캐머런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낸 닉 클레그 의원은 “총리는 판단하는 자리이지 정보를 빨아들이라고 있는 게 아니다”고 질타했다. 브렉시트 결정에서 브렉시트 장관들이 소외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 내 이견이 공개되는 상황도 용납하지 않는다. 컨설팅회사인 딜로이트와 영국의 EU대사를 지낸 이반 로저스 경우가 대표적이다. 딜로이트의 전문가가 정부에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한 게 언론에 알려지자 메이가 격노했다. 딜로이트는 “혼선을 초래해 유감”이란 입장을 발표하며 정부 일에서도 손을 뗐다. 로저스 전 대사가 “EU와의 협상이 타결되는데 10년은 걸릴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브렉시터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고 결국 연초에 중도 사퇴했다. 로저스가 동료들에게 메이 정부를 비판한 e메일을 보낸 후엔 아예 잘렸다. 관료 출신 인사는 “메시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메신저를 죽이는 건 현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도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앙겔라 메르켈도 첫 해엔 불안한 출발을 했다”며 “메이는 그러나 메르켈과 달리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의 경로를 밟을 수도 있다”고 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 때 탁월한 재무장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브라운 전 총리도 세세한 데까지 통제하려다 반발을 샀고 기존의 당내 분열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단명했다. 메이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반대파를 수용하며 다른 견해를 추구하고 역할을 나눠주고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메이를 지지하는 텔레그래프도 “보리스 존슨 같은 경쟁자를 활용하라”며 “정치가 지금보다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정애 런던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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