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데스크 view &] 정치권 기업 때리기, 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중앙일보 2017.01.09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김준현 산업데스크

김준현
산업데스크

“걱정이다”란 말을 달고 사는 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이 요즘 부쩍 늘었다. “밑지고 판다” 같은 장사꾼의 엄살이 아니라 표정이나 몸짓에서 절박함이 묻어날 때가 많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삼성물산 합병, 한진해운 사태 등
매끄럽지 못한 처리로 이미지 타격
대기업들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
국민들 설득할 수 있는 조치 필요


경기침체 등 사업 환경이 안 좋기도 하지만 정작 재계가 걱정하는 건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여야 구분 없이 소위 ‘경제민주화’ 관련 법을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소수 주주의 재산권 보호 강화를 통한 오너의 전횡 견제,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인세 인상, 대기업 계열사 간 출자제한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예정보다 일찍 치뤄질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재벌 때리기’를 통한 선명성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경제민주화가 표를 얻는데 유리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대기업 규제=선(善)’이란 인식은 한층 확산된 듯하다. 때려도 후환이 없을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아무리 기업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축일지라도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는 손을 봐야 한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지금은 경제 사정이 너무 나쁘다. 외환위기 상황 이상으로 좋지 않다는 말도 무색할 정도다. 수출·내수 부진에 이어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타이머도 째각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0~12월 3개월에만 9조2000억원의 순익을 거뒀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건 삼성전자의 얘기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삼성전자 같은 기업 한국에 둘도 없다. 그런 삼성전자조차 회사 안팎에서 “10년 후 삼성전자가 존재할까”라고 회의가 고개를 든다. 그만큼 경제 환경이 획획 바뀌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까지 눈을 흘겨 뜨고 있으니 재계로선 어디 한 곳 기댈 데가 없다. 하지만 재계가 화를 부른 측면도 있다. 특검이 수사 중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그렇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소송까지 벌이며 반발하고 있는 것은 합병 전 삼성물산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게 관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아야만 제일모직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등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합병 반대에 나서고, 삼성 입장에선 국민연금의 지원이 절실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합병비율이 원인이다. 합병은 성공했고 법적으론 문제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논란을 불러왔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게 더 매끄럽게 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한진해운의 처리 과정에서도 매끄럽지 못한 점이 많다. 채권단이 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한진해운은 민간인 한진그룹이 대주주였다. 당연이 대주주가 회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감당해야 할 한진해운 빚에는 턱도 없는 돈만 내놨고, 심지어 대주주 지위까지 유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재벌의 과도한 욕심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기업은 억울해 한다. 강도 행각이 벌어졌는데 돈을 뺏긴 이를 욕할 수 있냐고. 맞는 말이다. 삼성의 경우 2015년에만 1900억원가량을 협찬이나 후원으로 내놨다. 문제가 된 미르·K스포츠 재단을 비롯해 창조경제혁신센터, 평창 동계올림픽 등에 돈을 냈다. 이웃돕기 등 각종 성금까지 합치면 삼성이 낸 돈은 이보다 훨씬 많다.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대기업이 삼성과 비슷한 처지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에 대한 국민은 비난은 과도할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삼성·롯데 등은 인사조차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 국회 청문회에 이어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까닭이다. 인사를 못하니 경영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투자·채용도 앞이 감감하다. 경제는 이 모양인데 미국·일본은 부지런히 뛰고 있다.

이럴 때 재계는 “미국·일본이 저러는데 우리는 뭔가, 국회·정부가 A를 해주면 우리는 B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재계를 보며 국민은 힘내라고 응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면 억울해 하지만 말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김준현 산업데스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