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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반기문, 반문만으론 될 일 아니다

중앙일보 2017.01.05 19: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노무현 청와대에서 유인태 정무수석은 대통령 주재 회의 때도 코까지 골며 졸아 ‘엽기수석’으로 불렸다. ‘기자들과 소주 마시며 로비하지 말라’는 대통령 지시를 어기고 기자들과 곧잘 어울렸는데 “로비만 안 하면 되지 않느냐”며 소주를 마셨다.

복합골절 대한민국 처방전 내놓는 게 우선
빨라진 대선시계…1월 넘기면 기회 없어


하지만 수석회의에서 꾸벅이는 사람이 정무수석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찬용 인사수석도 숙취와 피로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앞뒤로 끄덕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찬용의 엽기’가 가려진 건 반기문 당시 외교보좌관의 공이라는 게 유인태의 변(辯)이다.

대통령 바로 앞자리 정무수석과 달리 인사수석은 말석이다. 게다가 바로 옆자리, 커다란 덩치의 반기문이 인사수석을 그림자로 만들어 줬다고 한다. 정찬용이 고개를 꾸벅일 때마다 반기문이 앞으로 뒤로 똑같은 동작을 만들어 대통령 시야를 가렸다는 얘기다.

반기문을 직접 접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대개 이런 유(類)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남의 험담 하는 걸 들었다는 사람은 없다. 정성 들여 쓴 그의 손 편지를 받지 못한 선후배도 드물다. 적이 없는, 처세(處世)의 달인으로 통한다. 웬만하면 속을 내보이지 말라는 조직 문화까지 보태져 외교부에선 “반(潘)의 반(半)만 하라”는 게 금언이다.

문제는 46년 외교관의 길에서 줄곧 통했던 이런 처세의 성공담이 비전과 가치, 리더십이 주요 상품인 정치세계에서 얼마나 먹혀 들겠느냐는 거다. 다음 주 귀국하는 반기문이 내디딜 정치판은 그의 팬클럽 이름인 반딧불이가 살아 가는 청정지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복합골절로 신음 중이다. 반기문 바람이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반영인데, 기대에 부응하려면 그는 새 그림으로 새 집을 지어야 한다. ‘리셋 코리아’ 말이다.

그런데도 그의 처방전은 여전히 공급자 위주에, 국민 마음을 뎁히지 못한다. 측근 참모들로 북적이고,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어 ‘입은 먼저 귀국했다’는 말을 듣는 반기문 캠프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핵심 참모는 ‘뜬구름 잡는 데’ 능숙한 외교관들인데, 나오는 메시지까지 꽤나 공학적이다.

개헌으로 반(反)문재인 세력을 묶고 충청과 영남을 잡겠다는 게 핵심 아이디어인 모양이다. ‘독자 신당 창당은 어렵다’거나 임기단축형 개헌, 중대선거구제를 빼든 건 안철수를 포함한 제3지대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다. 첫 메시지인 대통합도 출생 배경이 같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말이 좋아 ‘아이젠하워 방식’이다. 창당도 아니고, 어느 당에 입당도 않겠다면 만들어진 대선판에서 이름값으로 버텨 보겠다는 뜻과 뭐가 다른 건지 모를 일이다.

한국 정치는 불신을 넘어 반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정치 경험이 없을수록 대중의 지지가 높은 기형적 구조다. 이회창·고건 전 총리, 안철수 의원은 그런 바람을 타고 등장한 새 피다. 공자가 환생해도 수술이 어렵다는 우리 정치를 확 뜯어고칠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각자 영남과 호남을 기반으로 대망론도 만들었다. 하지만 자기만 아는 대안 정치, 새 정치여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로 이어가진 못했다. 결국 ‘누구는 안 된다’는 비토에만 의존하다 자신도 고생하고 정치도 고생시켰다.

정치공학 차원의 개헌론이 반기문을 떠올리는 에너지가 될지는 의문이다. 무지갯빛 같은 충청 대망론도 언론들의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신기루에 머물 수 있다. 반기문은 왜 반기문이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것도 1월을 넘기면 기회가 오기 어렵다. 서너 달짜리 만화 같은 대선전이 막 펼쳐질 참이다.

미국에서 10만 부 팔렸다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200만 부 넘게 팔린 나라다. 공정함과 정의에 목마른 국민에게 ‘선정(善政)의 결핍’이란 귀신 씨나락 까먹는, 하나마나한 반반어법이 파고들 공간은 작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그의 귀국 가방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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