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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입안자들 현장 몰라, 학생 빚쟁이 막을 상상력 필요

중앙선데이 2017.01.01 01:12 512호 12면 지면보기


천주희(31·사진)씨는 열아홉 살이던 2005년, 독립자금 1000만원을 들고 서울에 왔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가 딸의 대학 학비를 염두에 두고 부은 적금이었다. 돈은 1년 만에 바닥났다. 천씨는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버텨야 했다.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청년, 왜

11년여가 지나 천씨는 민간연구원에서 일한다. 2015년 연세대 대학원 문화학과에서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라는 석사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지난해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는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한국출판대상을 받았고 한 신문사의 2016년 올해의 저자 10명에도 선정됐다.



 



천씨는 “10년간 채무자 학생으로서 빚은 나의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천씨는 1학년을 마친 뒤 휴학하고 돈을 모았지만 모자랐다. 대학원까지 총 여덟 번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2015년 여름 졸업할 때 2200만원의 빚이 남았다.



책은 그런 천씨가 채무자 학생 25명을 인터뷰해 낸 청년들의 부채 보고서다. 천씨는 “‘나만 이렇게 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느 날 연체통지서를 받았는데 같은 집 우체통에 또 다른 연체통지서가 있는 것을 보고 개인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느냐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1960년대에는 소 팔고 땅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우골탑이라는 말도 나왔다. 장남을 위해 누나들이 공장에 다니면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지금은 등록금이 올라 소를 판다고 한들 대학에 가기 어렵다.



빚으로 대학에 가는 구조는 2000년 전후 생겼다. 천씨는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목표로 추진된 95년 5·31 교육개혁은 신자유주의적이었다. 학생 수가 늘고 등록금이 확 올랐다”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직후 학생들은 등록금이 없어 대거 휴학했다. 대학은 재정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학자금 대출을 상품화했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15년 학자금 대출은 2조1254억원, 상환하지 않은 누적 대출액은 12조3027억원이다. 2011년(5조8808억원)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사람은 179만1363명, 학자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 신용불량자는 1만9783명이다.



천씨는 이들을 ‘부채세대’라고 명명했다. “학자금 대출로 일자리를 얻기 전부터 부채로 시작하는 청년, 이후에도 취업난 등으로 빚을 갚지 못해 삶 전체가 부채에 짓눌리는 최초의 세대”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나온 ‘88만원 세대’ ‘N포 세대’ ‘청년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 등은 모두 부채세대에 포함된다고 봤다.



천씨는 “생애 주기마다 부채는 취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채무자로 포섭한다. 이른바 빚 권하는 사회”라고 했다. 천씨는 대학부터 대학원까지 학비만 약 5000만원이 들었다. 주거비와 생활비를 포함하면 대학 졸업에 1억1330만원, 대학원까지는 2억원이 든다고 추산했다. 한 달 식비 30만원 수준의 검소한 생활을 기준으로 할 때다.



빚 권하는 사회의 첫 번째 단계가 대학의 높은 등록금이란 게 천씨의 생각이다. 그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칠레에 이어 고등교육기관의 민간 부담이 둘째로 높은 나라다. 대학밖에 길이 없으니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강요한다. 높은 등록금을 부채로 지탱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천씨는 “정부 학자금 대출의 싼 이자에 감사하지 말고 비싼 등록금을 방치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은 부채에 찌들어 피폐하다. 천씨는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차비가 없어 수업에 못 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학자금 대출 장기 연체자로 가압류, 소송, 강제집행 등 법적 조치를 받은 사람은 6552명으로 채무액은 453억9600만원에 이른다. 군대에 가서도 추심을 받아야 한다.



천씨는 “안전망이 없어 대부업체를 찾아가는 젊은이가 많다. 청소년기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는 부채에 대한 공포가 크다. 부채 스트레스에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장학금을 놓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비참한 가난 소개서 같은 형식의 장학금신청서는 폭력적”이라고 했다.



과거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임금을 더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취직이 잘 안 된다. 천씨는 “대학을 나와도 별 볼일 없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학력주의가 기능하고 있다고 믿는다. 생계가 위태로우니 대학이라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불안감 때문이다. 학력주의의 알맹이는 없는데 오히려 껍데기는 더 견고해졌다”고 말했다.



책에 등장하는 학생 채무자는 천씨를 포함해 26명이다. 그중 상환을 마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천씨는 그나마 졸업할 때 2200만원이던 빚을 절반으로 줄였다. 천씨는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연체와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었다.그래도 나는 학자금 외에 다른 빚이 없지만 다른 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다른 빚이 시작되어 부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천씨는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로 주목받는 연구자가 됐다.석사 학위자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첫 단행본으로 출판상을 받았으니 배우로 치면 첫 영화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셈”이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천씨 자체가 연구자로서는 성공신화다. 그러나 10년간 겪은 부채의 악몽 때문에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이런 연구자도 어렵다면 천씨 말대로 구조적인 문제다. 천씨는 “사회는 노력하라고 한다.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된다. 그래서 ‘노오력’을 해 본다. 그래도 안 된다. 노력의 보상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 무상교육과 청년 기본급여 등이 천씨의 대안이다.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천씨는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을 잘 모르고 얘기한다. 더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너무 많이 위축됐고 생각도 얼어붙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래서 안 돼, 안 돼’라고 한다. 그러나 대학구조 개편과 맞물려 추진하면 적은 돈으로도 무상교육을 실행할 수 있다. 미래 세대가 빚쟁이로 몰리지 않게 할 상상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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