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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용지보다 좁은 ‘닭 감방’ 다닥다닥…AI 순식간에 전염

중앙일보 2017.01.05 02:02 종합 8면 지면보기
공장식으로 밀집 사육된 닭(위쪽)과 달리 친환경적으로 기른 닭은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강했다.[포항=프리랜서 공정식]

공장식으로 밀집 사육된 닭(위쪽)과 달리 친환경적으로 기른 닭은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강했다.[포항=프리랜서 공정식]

4일 세종시 전동면의 산란계(알을 낳는 닭) 농장은 폐허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돼 닭과 병아리 70만 마리를 살처분했지만 농장주와 종업원은 AI를 옮길까 봐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이 농장처럼 AI 감염으로 닭·오리를 살처분한 농가는 3일 기준 총 308곳이다. 농가 대부분은 공장 같은 사육장에서 닭을 밀집사육했다.

밀집사육 vs 친환경 양계장 다른점
비좁은 공간서 지내 면역력 떨어져
달걀 많이 낳게 밤에도 전등 켜놔
“스트레스 받아 닭 스스로 몸 쪼기도”
동물복지 농장 닭은 운동량 많아
1마리당 사육면적, 밀집사육의 3배
“1만2000마리 키워 연 매출 8억”

하지만 밀집형이 아닌 ‘친환경 사육’ 방식을 도입한 축산농가의 닭·오리는 이번 AI의 공세에도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있다. 2012년부터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도입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농가가 대표적이다. 이들 농가 중 AI에 감염된 경우는 지난해 12월 충북 음성의 농가 1곳뿐이다.
AI 피해를 입지 않은 충남의 한 농가에서 닭들이 방사장을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AI 피해를 입지 않은 충남의 한 농가에서 닭들이 방사장을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동물복지 인증제도는 공장식 밀집형 사육에서 벗어나 가축의 본성을 고려해 기르기 위해 정부가 도입했다. 일정 기준을 통과한 농가에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농가가 상품에 마크를 붙여 판매할 수 있다. 2012년 산란계 농장을 시작으로 2013년 돼지, 올해 오리까지 확대됐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보통 일반 양계장의 닭 한 마리당 사육면적은 A4 용지(0.06㎡)보다 작은 0.04㎡(20X20㎝) 정도다. 1㎡당 25마리를 사육하는 셈이다. 동물복지 농장(친환경 농장)의 마리당 사육면적은 0.11㎡ 수준이다. 1㎡당 9마리 정도 지낸다. 이혜원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 부소장은 “비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닭은 스트레스로 자신이나 주변 닭을 쪼아 피를 내는 ‘카니발리즘’이란 이상현상을 보인다”며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돼 면역력이 약해지고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장에서 사육한 닭은 다르다. 이상근 쉴만한농원 대표는 “넓은 공간에서 키우니 닭들이 습성대로 돌아다녀 운동량이 많다”고 말했다. 일반 양계장에선 알을 많이 낳도록 하기 위해 밤에도 전등을 켠다. 이 대표는 “밤에는 6시간 정도 불을 끈다”고 말했다. 닭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닭은 건강한 알을 낳는다. 닭이 앉아 쉴 수 있는 홰도 설치돼 있다. 전북 정읍에서 육계를 키우는 박희강 세연농장 대표는 “홰의 높이도 닭의 성장 속도에 따라 25~35㎝로 조절하고, 닭의 쪼는 습관을 위해 볏집으로 만든 블록도 넣어주고 상추 등 채소도 먹잇감으로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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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연간 200~250개 정도 알을 낳는다. 다만 일반 닭은 하루에 100~110g 정도의 모이를 먹는데 친환경 사육 닭은 130~140g을 먹는다. 달걀 가격이 한 판(30개)당 1만3000~1만4000원으로 밀집사육으로 생산한 달걀(한 판당 5000원)보다 비싼 이유다. 그럼에도 매출과 수익성이 나쁘지 않다. 이상근 대표는 “1만2000마리 정도의 닭을 길러 연간 8억원 정도 매출과 4억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입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동물복지농장의 수는 많지 않다. 일단 국내 닭 사육 농가가 영세해 친환경 사육을 위한 초기 대규모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현재 친환경 산란계 농가는 89곳에 불과하다. 이혜원 부소장은 “농가가 친환경 사육에 투자하도록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인센티브나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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