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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죄를 아뢰옵니다…” 신라 지방관리 나무막대 보고서

중앙일보 2017.01.05 01:10 종합 22면 지면보기
6세기 중반, 561년 무렵이었다. 백제와 대치 중인 신라는 물적·인적 자원을 경남 함안군 일대에 집결시켰다. 쌀·보리·피 등 다른 지역에서 걷은 물품은 물론 방어시설을 지을 인력도 여러 곳에서 동원했다. 당시 진내멸이라는 지방의 촌주가 중앙(경주)에서 파견된 고위 관리에게 잘못된 법 집행을 아뢰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타리라는 사람이 60일 동안 일하고 돌아갔어야 했는데, 단지 30일만 채우고 떠나간 것에 대해 사죄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신라 법흥왕이 반포한 율령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는 함안 성산산성 사면목간. [사진 문화재청]

신라 법흥왕이 반포한 율령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는 함안 성산산성 사면목간. [사진 문화재청]

종이가 없던 시절, 촌주는 보고서를 길이 34.4㎝, 두께 1.0~1.8㎝의 소나무에 적었다. 이른바 목간(木簡)이다. 나무를 길게 잘라 네 면을 다듬고, 그곳에 총 56글자를 기록했다. 중앙에서 내려온 상급 관리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시 신라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지방에 강하게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요즘으로 치면 법치주의, 신라의 율령체계가 확고히 자리잡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종이 없던 시절 소나무 다듬어 기록
6세기‘목간’ 23점 공개…‘4면목간’도
당시 행정·율령체계 유물로 첫 확인

6세기 신라의 지방지배 및 조세 체계를 엿볼 수 있는 목간이 처음 확인됐다. 문화재청 가야문화재연구소는 561년 축성된 함안 성산산성에서 2014~2016년 새로 발굴한 목간 23점을 4일 공개했다. 그 중 네 면 모두에 글자가 기재된 사면목간이 주목된다. 나머지는 1면, 혹은 2면 목간이다. 내용 또한 어디에 사는 누군가가 어떤 물건을 보낸다는 꼬리표(하찰목간) 같은 게 대부분인 것에 비해, 이번 사면목간은 보낸 이와 받는 이, 보고 사실을 두루 갖춘 행정문서 형식을 취했다. ‘□법 30대’ ‘60일 대법’ 등 신라의 율령이 구체적으로 기록됐고, 경주 중앙정부의 관등명인 ‘대사(大舍)’도 확인됐다.

목간은 고대사회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총 1289점이 발굴됐다. 성산산성은 국내 최대 목간 출토지다. 1991년 첫 발굴 이후 308점이 나왔다. 가야문화재연구소 김용민 연구관은 “6세기 신라의 행정체제를 보여주는 목간이 나온 건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신라 율령체계의 전개·발달과정을 보여주는 성산산성 최고의 목간”이라고 평가했다. 이성시 일본 와세대 교수는 “일본에선 이런 형식의 목간이 7세기에 많이 제작됐다.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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