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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바로 관료주의”

중앙일보 2017.01.05 01:09 종합 22면 지면보기
신년 인터뷰 ③·끝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웅 교수는 “정부의 각종 위원회는 옥상옥이다. 스포츠를 정부가 관장하려는 태릉선수촌도 시대착오”라고 했다. “회귀본능이 있어 관료는 고칠 듯 흉내만 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광웅 교수는 “정부의 각종 위원회는 옥상옥이다. 스포츠를 정부가 관장하려는 태릉선수촌도 시대착오”라고 했다. “회귀본능이 있어 관료는 고칠 듯 흉내만 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을 분노케한 최고권력자 말고도 국민을 실망시킨 이들은 또 있다. 바로 관료 집단이다. 우병우·안종범·김종 등 최일선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저었던 하수인들이야 그렇다 치자. 인허가·대관·승인 등 국정농단의 길목마다 공무원의 협조는 필수였다. 편법과 꼼수를 합법으로 가장시키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었다는 얘기다. 왜 관료는 이를 묵인했을까. 선의를 믿어서? 영혼이 없어서? 아니면 한자리 챙기려고?

관료가 국민에 봉사한다는 건 착각
공무원사회 구조상 기회주의 존재
일 안 하고 욕 안 먹어야 진급 유리
안보·외교·치안 분야는 정부가 맡고
교육·관광·문화는 민간으로 넘기는
‘공유정부’로 가야 관료제 폐해 막아

어릴때 수재 소리 듣고, 그 어렵다는 고시 패스해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로 목에 힘 주고 살았던 이들 아닌가. 그런데 관료는 왜 이토록 무기력할까. 납작 엎드린 채 눈치만 살펴 결국 새 정권에서도 특유의 생존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관료 집단의 개혁이란 요원한 것일까. 이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서울대 행정대학원장과 초대중앙인사위원장을 역임했던 김광웅(76)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정통한 행정학자인 김 교수는 “관료가 국민에게 봉사하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리라 믿는 것이야말로 착각”이라고 일갈했다. “관료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부 기능을 대폭 민간에 넘기는 ‘공유정부’(sharing government)를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무원의 중립성이라고 하지만, 작금의 국정농단 국면에서 관료의 실제 행태는 기회주의적으로 보인다.
“일부의 문제를 갖고 전체를 매도하는 건 위험하지만 공무원 사회가 구조적으로 기회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데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정부에 들어가면 어리석은 자로 둔갑한다고 하지 않던가. 관료는 그저 규격화된 규정을 따르고 미리 정해놓은 목표에 달성하는 것에만 매달린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도 그걸 제어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드는 위험보단, 일 안 하고 욕 안 먹는 게 진급에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문제는 관료주의(bureaucracy)인가.
“세월호 때를 생각해보자. 서슬 퍼렇게 관피아를 척결하겠다고 외쳤다. 막상 해경을 없앴지만 간판만 내렸을 뿐 실제 역할은 달라진 게 없고, 외려 ‘국민안전처’라는 신생 부서만 만들어졌다. 메르스 사태 때도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방안이 나왔다. 문제가 터지면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제2, 제3의 부서가 생기고, 급을 높이고, 승진을 하면서 더 비대해지는 게 관료주의다.”
그래도 공정성·합리성·효율성을 담보하는 체계는 아직 관료제만한 게 없지 않은가.
“일견 맞지만 교과서 같은 얘기다. 세상이 망해도 마지막까지 존재하는 건 관료집단이라고 한다. 좋은 의미에선 남아서 뒷처리를 해야 할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무원은 기분 좋은 보고만 하는 귀재’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바로 관료주의다. 무엇보다 정부가 공공성을 지키고 있다는 건 착시다. 관료 집단은 상당부분 이익집단화돼 있다. 이리저리 얽혀 있기에 규제를 못 없애는 것이다. 복지부동, 부처 이기주의, 자리 장사 등 관료주의 폐해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어떻게 칼을 대야 하나.
“권력과 기능을 분산하면 된다. 관료독점에서 민간참여로 전환해, 정부기능을 일정부분 민간에 이양하는 ‘공유정부’가 대안이다. 우버(uber)택시와 에어비앤비(airbnb) 등 이미 공유경제(sharing economy)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지 않나. 대량생산·대량소비는 효용성을 다했고, 이제 21세기 현대는 다품종 소량생산과 개성 중시사회다. 가치관도 독점·소유에서 점유·사용으로 급격히 변화중이다. 무엇보다 시민이 똑똑해졌다. 맡기면 척척 해낸다. 정보습득과 유통에서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촛불정국이 그걸 명백히 입증하지 않았나.”
정부의 어떤 기능을 민간에 넘겨야 하나.
“‘정부 3.0’과 같이 단지 공공정보를 공개하는 수준이 아니다. 국가 운영에서 국민과 분업을 하자는 취지다. 공공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안보·외교·치안 등은 정부가 맡되 교육·관광·문화 등은 과감히 민간에 이양하자는 거다. 우선 시범적으로 특정 프로젝트를 사회단체·기업·학교 등에 맡기면 된다. 분권과 참여의 시대 아닌가. 최근 정치권에서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거버넌스(governance), 즉 협치가 새로운 국가운영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공유정부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수용한, 진정한 의미의 협치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대표적으로 이번 정부의 ‘문화창조융합센터’가 예다. 그걸 꼭 정부가 해야 했을까.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나 이건창호와 같은 메세나 기업이 맡는 게 훨씬 전문적이지 않을까. 겉으론 예술지원 업무를 하는 척 하지만 관료는 그 일을 또 민간인에게 하청 준다. 현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치기 외부 전문가가 들어와 장난을 쳐도 속수무책 당하는 거다. 그럴바엔 아예 다 떼어주는 게 백번 낫다.”
‘공유정부’의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지난해 연구개발(R&D) 지원사업 예산이 11조원이었다. 정부는 그걸 쪼개고 나누기 바쁘다. 대부분 정부 보조금 사업이 비슷하다. 성과를 내는 것보다 비판 받지 않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R&D 사업을 삼성전자가 주도한다면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하지 않겠는가. KT가 대학을 건립하면 서울대보다 낫지 않겠나. 코트라 독립(산업자원부), 대학정책실 폐지(교육부) 등 부처별로 움켜쥐고 있는 권한을 하나씩만 내려놓아도 즉효를 볼 것이다.”
특혜 시비는 없을까. ‘작은 정부’와 무슨 차이인가.
“정부가 하던 일을 기업에만 넘겨선 안된다. 시민단체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다.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작은 정부는 방대한 정부기능을 축소한다는 의미지만, 궁극적으론 관(官)이 민(民)을 통치한다는 수직적 사고다. 반면 공유정부는 수평적 개념이다. 정부 역할 중 민간과 겹치는 교집합 영역이 대상이다. 지금도 민영화된 금융기관이지만 장막 뒤에서 사실상 인사권을 휘두르는 건 정부, 특히 청와대 아닌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건 박근혜 정부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면 특혜 시비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개헌도 논의가 분분한데 ‘공유정부’가 실현성이 있을까.
“개헌보다 훨씬 중요하다. 복잡한 일이 터지면 법이 해결해 주리라는, ‘법 만능주의’야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미셸 푸코도 지적하지 않았나. ‘교도소가 죄인을 만들고, 병원이 환자를 양산한다’고. 법과 제도란 그런 것이다. 해결은 커녕 자칫 일상을 구속할지 모른다. 그러니 설계도에 불과한 법에 너무 기대지 말고 , 정부 역할에 방점을 둬야 한다. 차기 대선 공약으로 ‘공유정부’가 등장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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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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