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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시티 신화, 속편은 잔혹동화?

중앙일보 2017.01.05 00:44 종합 26면 지면보기
레스터시티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이 웨스트햄과의 경기 도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지난 시즌 우승팀 레스터시티는 올시즌 15위로 처져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레스터 로이터=뉴스1]

레스터시티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이 웨스트햄과의 경기 도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지난 시즌 우승팀 레스터시티는 올시즌 15위로 처져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레스터 로이터=뉴스1]

1년 전인 2016년 1월 4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순위표 위쪽에 낯선 팀 하나가 눈에 띄었다. 2위 레스터시티. 창단 132년 역사에서 순위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것이다. 레스터시티는 승점 40(11승7무2패)으로 1위 아스널(승점 42)을 바짝 뒤쫓고 있었다. 1월 24일 레스터시티는 스토크시티를 3-0으로 잡고 선두로 나섰다. 그리고는 우승까지 질주했다. 그들의 성과에 ‘마법 같은’ ‘동화 같은’ 류의 수식어가 붙었다.

깜짝 우승 다음 시즌 15위로 추락
2부 리그 강등권과 승점 6점 차
선수층 얇고 주축 선수 부상 탓
상황 반전 쉽지않아 깊은 시름

2017년 1월 4일, 그 레스터시티를 프리미어리그 순위표 위쪽에서 찾을 수 없다. 중간에도 없다. 승점 21(5승6무9패), 20개 팀 중 15위다. 다음 시즌 2부 리그(챔피언십) 강등권인 18위 선덜랜드(승점 15)와 승점 6차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20라운드 현재 레스터시티 성적은 디펜딩챔피언 역대 최하 성적”이라고 전했다. 동화에서 현실로 돌아온 레스터시티의 2016~17시즌, 현실은 엄혹하다.
지난해 5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뒤 라니에리 감독(왼쪽)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면서 기쁨을 나누는 슈마이켈. [레스터 AP=뉴시스]

지난해 5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뒤 라니에리 감독(왼쪽)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면서 기쁨을 나누는 슈마이켈. [레스터 AP=뉴시스]

2016~17시즌 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6) 레스터시티 감독은 “지난 시즌의 영광은 잊었다. 승점 40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는 게 올 시즌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엄살처럼 들렸다. 멤버를 봐도 공수 조율을 담당한 은골로 캉테(26)가 첼시로 옮긴 걸 빼면 우승 전력 그대로다. 일부에선 상위권으로 평가했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무엇보다 주축 공격수들의 부진이 치명적이다. 지난 시즌 24골로 공격을 이끈 최전방 공격수 제이미 바디(30)가 올 시즌 5골 뿐이다. 지난달 18일 스토크시티전에선 상대선수에게 태클을 시도하다 퇴장당했고 3경기 출장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지난 시즌 17골로 바디와 함께 공격을 이끈 리야드 마레즈(26)도 올 시즌엔 3골에 그치고 있다.

수비는 지난 시즌만 못하다. 레스터시티는 20라운드까지 24골을 넣고 31골을 먹었다. 지난 시즌 같은 기간의 37득점-25실점과 비교하면 헐거워진 수비가 두드러진다. 박문성 SBS 축구 해설위원은 “레스터시티는 지난 시즌 먼저 수비를 탄탄한 다음 카운트어택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스타일로 재미를 봤다. 그런데 올 시즌엔 별다른 전력의 변화도 없다. 바디·마레즈 등 주축선수들도 동기부여가 안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프리미어리그 부진의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엷은 선수층 문제도 있다. 레스터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이번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 나갔다. 구단 역사상 유럽축구연맹(UEFA) 클럽대항전 출전은 처음이다. 조별리그에서 1위(4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하는 등 나름 선전 중이다. 그런 와중에 프리미어리그까지 힘을 쏟는 건 역부족으로 보인다. 홈경기는 나은 편이다. 원정경기는 3무7패다. 라니에리 감독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진정한 레스터시티를 보고 싶다”고 할 정도다.

라니에리 감독은 지난달 30일 “우리는 여우(레스터시티의 팀 상징)다. 여우는 두려움이 없다”며 부진을 털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레스터시티 주전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31)도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순위표에서 더 오를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4일엔 은골로 캉테가 떠난 빈 자리를 메워줄 선수로 나이지리아 출신 미드필더 윌프레드 은디디(21)를 영입했다.

이런 변화들이 레스터시티의 상황 반전으로 이어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주전 미드필더 마레즈와 이슬람 슬리마니(29) 등 알제리 대표선수까지 14일 가봉에서 개막하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을 위해 빠진다. 디펜딩 챔피언이 다음 시즌 하위리그로 강등된 사례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체제 출범 후 한 번도 없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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