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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착시현상 낳는 대세론의 허망함

중앙일보 2017.01.05 00:35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정하 정치부 기자

김정하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가 지난 2일부터 연속 보도한 ‘스마트 유권자 시대’ 기획시리즈는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급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유권자들이 가장 원하는 대통령상은 ‘깨끗한 대통령’이 33.2%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030세대의 투표의사가 5060세대보다 높아 큰 변수가 될 것이란 점도 드러났고, 진보 대통령에 대한 욕구가 급증한 흐름도 확인됐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과 비교하면 여론지형이 상전벽해가 됐다. 정치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공급자(정치인)가 아니라 수요자(유권자)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의 논리는 공급자 중심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 사례가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대세론’이다. 대세론은 패션의 유행처럼 선거에서도 대세를 추종하는 군중심리가 작동할 것으로 기대하고 해당 후보 측이 유포하는 논리다. 대세론이 확산될수록 해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응답을 기피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 때문에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여론조사와 민심이 완전히 거꾸로 갈 수도 있다. 여론조사 사상 최악의 참사를 빚었던 지난해 4월 총선이 그랬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세론은 허망하게 무너진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2002년 1월 1일 발표된 중앙일보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이인제 민주당 고문과 양자대결에서 53.0% 대 40.4%로 우세를 나타냈다. 이 총재와 노무현 민주당 고문의 양자대결은 57.9%대 37.4%로 더 벌어졌다. 하지만 그해 3월 시작된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에서 ‘노풍(盧風)’이 불어닥치자 2년 가까이 이어지던 이회창 대세론은 신기루처럼 붕괴했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박찬종 바람’이 거셌다. 그해 1월 1일 월드리서치 조사에서 박찬종 신한국당 고문은 27.4%로 1위였고,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20.4%, 이회창 신한국당 고문 19.0%의 순서였다. 그러나 박 고문은 대선은 커녕 신한국당 경선에서 완주조차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압도적인 지지율로 4년 가까이 대세론을 이어 갔지만 2011년 9월 ‘안철수 현상’이 발생하자 대세론은 한 방에 깨져버렸다.

지난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제2당으로 몰락할 것이란 사실을 여의도에서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것처럼 올해 대선도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민심은 유동적이다. 언론도 정치인의 입만 쫓아다닐 게 아니라 유권자들의 변화하는 욕구를 주목해야 한다. ‘스마트…’ 시리즈는 그 같은 패러다임 변화를 위한 첫 발걸음이다. 집권을 꿈꾸는 대선주자들도 유권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에 귀 기울이길 권한다.

김정하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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