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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병원성 AI 천태만상

중앙일보 2017.01.05 00:35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

지난해 12월 26일 포천의 한 가정집에서는 고양이 두 마리가 H5N6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려 죽었다. 집고양이와 그 집에서 먹이를 주고 있던 길고양이 한 마리다. 그들은 인근에 있는 개천 등지에서 야생조류 사체를 먹고 다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바이러스 종류는 다르지만 12월 H7N2에 의하여 동물보호소의 고양이 100마리 이상이 감염되고 그중 일부를 치료하던 수의사 한 명이 감염되었다고 한다. 수의사와 고양이의 증상은 가벼운 감기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수원에서는 난데없는 까마귀떼 수천 마리가 민가의 전봇대에 한 달 이상 머물고 있어 주민들이 AI 전염을 우려하고 있다.

6차례 유입에도 피해 커져가
매뉴얼 불구 시행착오 반복
초기 강력대응 시기 놓친 탓
전문가 포진해 신속 결정을


AI 바이러스는 조류 유래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람이나 포유류에 감염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조류끼리는 조류의 종류별로 저항성이 다양하며 물새류에 주로 감염된다. 포유류의 경우에는 AI에 감염되어 죽거나 병든 조류를 먹을 경우 워낙 고농도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때문에 종간 장벽을 넘어 AI에 걸릴 수 있다. 2003~2004년 태국에서 H5N1 고병원성 AI에 걸려 죽은 가금류를 먹이로 줌으로써 동물원의 호랑이와 표범이 떼죽음한 사건이 이를 증명해 주는 사례다.
또한 AI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서 포유류 감염 여부에 매우 차이가 있고, 그 정도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문가 입장에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바이러스와 숙주의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번의 경험을 가지고 섣불리 다른 종류의 AI 발생에 대응하려 했다가는 방역에서 실기하거나 부실을 초래하기 딱 좋은 질병이다. 초동방역 단계에서부터 원칙에 입각한 강력한 방역정책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AI 신고 건수가 12월 25일을 기점으로 확연히 줄어들고 있어 이대로만 가면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아직도 검사 중인 농장과 살처분 예정 농장 등을 합치면 살처분 건수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을 것으로 판단되며, 3000만 넘는 숫자까지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신고와 발생 건수가 줄어드는 추세로 보아 발생 초기부터 12월 24일까지 무섭게 확산되던 국면에서 전환점에 접어드는 것 같다. 따라서 지금부터 향후 1~2주간의 방역 강도가 근절 성공 여부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발생 초기부터 방역 허점과 늘어나는 살처분 숫자에 대한 무수한 외부 전문가의 지적과 언론의 질타가 있었고, 이제는 그러한 허점들이 현장에서 많이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방역상 허점들은 이미 방역 매뉴얼(SOP)에도 규정돼 있고, 국내 유입 시마다 매뉴얼대로 안 돼 지적되어 왔던 것들이다. 특히 방역현장에서의 인력과 전문성 부족, 살처분 현장에서의 인력 통제와 소독, 발생농장 사후관리, 분변 차량이나 계란 수집차량, 농장 간 차량의 이동 통제, 겨울철 소독제의 효능 등은 매번 드러나는 문제였으나 국가 재난에 준하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정책상 또는 현장에서의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다.

왜, 2003년 이후 6차례나 각기 다른 종류의 AI 바이러스(H5N1 4종, H5N8, H5N6)가 철새에 의해 국내에 유입되었지만 방역 경험이 쌓일수록 조기 박멸은커녕 근절 기간이 더 늘어나면서 피해가 더 커지는 기이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을까. 이번에도 초기 대응시점부터 문제점이 대폭 보완된 지금처럼 강력하게 방역정책을 시행했다면 피해가 훨씬 감소하지 않았을까. 동남아시아, 중국 등 AI 연중 발생국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AI 유입을 피해 갈 수는 없지만 AI 바이러스를 검출하거나 최초 신고농장을 접했을 때 지금처럼 강력한 방역정책을 발동한다면 피해는 축소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최초 인지단계에서 해당 농장이나 야생조류의 AI 바이러스가, 방역당국의 운이 매우 좋지 않는 한 국내 최초가 아니라 이미 국내에 상당 부분 확산된 이후에 신고되거나 인지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초 인지농장을 국내 최초 발생사례로 보고 방역을 시행한다면 이미 포위망을 멀찌감치 벗어나 있는 AI는 무방비상태에서 전파될 수밖에 없는 위험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동시다발적으로 퍼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따라서 초기 단계의 강력함이 필요하지만 실제 초기 단계의 대응은 느슨한 경우가 많다.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매뉴얼을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일 것이다.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책적 결정을 쉽게 내려서는 안 되는 일이 질병 방역의 교훈이다. 섣부른 판단이 초기 단계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방역정책 부처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이지만, 관련 부서의 장에 비전문가를 포진시킬 경우 초기 대응단계에서 전혀 의사 결정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발생상황과 원인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력도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는 AI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방역정책이나 방역 시행기관의 인적 구성도 최상의 라인업으로 무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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