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인의 작가전] 붕괴 #7. 잠입 (2)

중앙일보 2017.01.05 00:01
“저놈 원숭이 아녀? 왜 저렇게 흉측하게 변했대...”
 

이무생의 말대로 천장에 매달린 원숭이는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한때 온몸을 덮었을 까만 털이 몽땅 사라진 시뻘건 몸통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눈 주위의 털도 다 빠져버려서 빛을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는 당장에라도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야, 털 뽑은 닭 같은데요?”
 
최민우의 농담 때문인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은 조금 누그러졌다. 최민우의 말대로 천장에 매달린 원숭이는 껍질이 한 꺼풀 벗겨진 닭처럼 느껴졌다. 다른 점이라면 시뻘건 몸통을 가로지르는 푸른색 핏줄과 꿈틀대는 근육이 있다는 정도인 것 같았다. 오희섭이 들고 있던 창에 매달린 플래시를 켜서 원숭이에게 바짝 갖다 댔다. 불빛을 뒤집어쓴 원숭이는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렸지만, 원숭이 특유의 고음 대신 강아지가 내는 것 같은 으르렁거림만이 들려왔다. 그네를 타는 것처럼 흔들거리던 원숭이가 철제 사다리 같은 구조물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위기감이 가시고, 악취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사람들은 한시름 놓으며 한마디씩 했다.
 
“똥통에 빠졌었나 봐.”
 
“껍질이 홀라당 벗겨진 게 꼭 인체 해부도 같네.”
 
“뉘 집 자식인지 참 못생겼다. 애미가 젖 주기 싫겠어.”
 
“누나, 내가 저놈 잡으면 폰 번호 따 줄래?”

 
멋을 부린답시고 안전모를 삐딱하게 쓴 최민우가 한 손에 든 창을 지팡이처럼 바닥에 콩콩 찍어대며 원숭이가 올라가 있는 천장 쪽으로 걸어갔다.
 
“헬로 멍키, 초콜릿 좋아해?”
 
철제 구조물 위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원숭이는 소름 끼치는 울부짖음을 뱉어내며 훌쩍 뛰어내렸다. 바지 주머니에 든 초콜릿을 꺼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최민우는 사람들의 비명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원숭이의 손톱에 얼굴을 긁히고 말았다. 얼굴을 감싼 채 바닥을 뒹구는 최민우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텅 빈 어둠을 휘저어버렸다. 놀란 사람들은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원숭이를 향해 창을 겨누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쉭쉭거리던 원숭이는 다시 벽을 짚고 천정의 구조물 위로 올라갔다. 그 사이 달려나간 이대백이 최민우를 질질 끌고 물러났다. 나 역시 사람들 틈에 서서 원숭이에게 창을 겨누고 있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도 만나보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움츠러든 시야는 마구 요동치는 빛줄기들과 뒤엉켜버렸다. 죽이라는 단말마의 비명을 끝낸 것은 귀청을 울리는 폭음이었다. 나는 작은 불꽃이 원숭이가 올라가 있는 철제 구조물에서 번쩍거린 다음에야 그것이 이무생이 나눠준 사제 권총의 발사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맞지도 않잖아.”
 
투덜거린 김승리가 권총을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창으로 원숭이가 숨어있는 철제 사다리를 쳐댔다. 그녀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씩 김승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원숭이에게 창으로 맞섰다. 철제 구조물을 방패 삼아 창날을 피하던 원숭이는 좀 더 위쪽에 있는 배수 파이프 쪽으로 옮겨갔다. 누군가 창을 던졌지만, 배수 파이프에 맞은 창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다들 비키셔. 이 화염방사기로 지져불탱께.”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가스 토치를 개조한 화염방사기를 머리 위로 치켜든 박금봉이 호기롭게 외쳤지만 정작 토치에서 발사된 것은 약간의 푸른 불꽃뿐이었다. 머리를 긁적인 박금봉이 다시 토치를 치켜들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불꽃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따, 이놈아! 이리 내 놔봐!”
 
보다 못한 박금옥이 화염방사기를 뺏어 들고는 다시 원숭이를 겨냥했다. 쉬익하며 가스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사제 권총만큼은 아니었지만 가스가 터질 때만큼이나 요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버섯구름처럼 퍼진 화염은 사람들 머리 위로 고스란히 떨어졌다. 열기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목덜미와 손등을 털어대면서 비명을 질렀다. 화염을 피해 배수 파이프 뒤로 몸을 숨겼던 원숭이는 화염이 사라지자마자 훌쩍 뛰어내려서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방 바깥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사라진 원숭이를 뒤쫓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몸에 불이 붙었는지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그슬린 냄새가 방 안을 떠돌았다.
 
“이런 젠장 할, 그러니까 누가 함부로 그걸 만지래요. 이 눈썹 좀 봐요. 눈썹 좀!”
 
불이 꺼진 화염방사기를 뺏어 든 박금봉의 분노에 윤삼식까지 가세했다.
 
“아이, 아줌씨! 이 가죽 잠바가 얼마짜린 줄 알아! 구멍이 세 군데나 났잖아.”
 
“다들 조용히 해요. 꼼짝도 못 하고 우물쭈물했던 게 누군데 이제 와서 큰소리에요. 큰소리는!”

 
어쩔 줄 몰라 하던 박금봉에게 다가간 김승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윤삼식이 눈을 부라렸다.
 
“이 썅년이 터진 입이라고 멋대로 나불거리네. 콱 배를 쑤셔버린 다음에 창자로 곱창 만들어 버린다.”
 
“곱창을 만들든 순대를 만들든 상관없으니까 담에 그 털 빠진 원숭이 나타나면 그땐 사시미들고 앞으로 나서 봐요.”
 
창을 바짝 치켜든 김승리의 서슬 퍼런 말에 머뭇거리던 윤삼식은 김달호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어쩔 줄 몰라 하던 박금옥은 이대백이 부축하고 있던 최민우에게 다가가 조용히 치료를 해주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어진 사람들은 하나둘씩 쪼그려 앉거나 벽에 기댔다. 나 역시 벽에 창을 기대놓고 등을 기댔다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공기 중에 떠도는 두려움이라는 입자가 입과 코를 타고 들어오는지 숨을 쉴 때마다 뱃속의 두려움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화염에 닿았는지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쓰라렸다. 손등으로 비벼보았지만, 그때마다 더 쓰라려 왔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툭툭치고는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넘겨받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아내자 겨우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손수건을 넘겨준 게 김달호라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게 놀랐다. 나의 놀라움을 느꼈는지 피식 웃은 김달호가 말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이렇게 먹고 살 팔자라서 그렇긴 하지만 말입니다.”
 
난 적당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 거렸다. 그런 나를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김달호가 천천히 몸을 펴면서 얘기했다.
 
“우습지 않습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던 것들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진짜 인간성이 보인다는 게 말입니다. 선생님 눈에는 잘 안 보이시겠지만 제 눈에는 다 보입니다. 다들 겁이 나서 바지에 오줌을 적실 준비만 하고 있어요. 저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그런 줄 알면서 여긴 왜 들어온 겁니까?”
 

“사람들은 우릴 무서워하고 병균처럼 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워들 하더군요. 남자답게, 의리와 충성을 지키는 협객 같다면서 말이죠. 다 영화가 만들어낸 거짓말입니다. 우린 누구보다 비열하고, 뒤통수를 잘 치는 존재들이죠. 어제까지 형님으로 모셨다가도 돈줄이 끊긴 사실을 알면 안면 몰수하고 돌아서는 게 우리들 세계의 법칙이자 의리입니다.”
 
“사색하는 깡패라 사시미 들고 다닐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군요.”
 
“저와 제 동생은 비둘기파 조직원들입니다. 재작년쯤에 저희들이 신문을 한번 화려하게 장식한 적이 있었죠.”
 
“비둘기파라...”

 
기억은 오래 더듬지 않아도 되었다. 내 특기가 한참 지난 신문 읽기니까, 부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사시미와 쇠 파이프로 문상을 하러 오던 경쟁 조직의 조직원들을 잔인하게 공격해서 무려 여섯 명의 중상자를 냈던 바로 그 조직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당했던 법성파가 반 년 전에 사우나에서 우리 형님을 습격했었습니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가 당했는데, 그때 저와 저 친구가 함께 있었죠. 형님은 우리들을 사우나 증기탕 안에 밀어 넣고 문을 막은 채 칼을 맞았습니다. 그때 그 뿌연 증기 너머 유리창에 피 묻은 형님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더군요.”
 
“그럼 여기 들어온 게 그 형님?”

 
내 물음에 김달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바닥에서는 드물게 인정 많고 동생들 잘 챙겨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자기는 짜장면 먹을 돈이 없어도 동생들 배 곪지 말라고 지갑을 털어내셨죠. 다들 한 고아원 출신입니다. 그 고아원 이름이 비둘기 보육원이라서 다들 우리를 보고 비둘기파라고 불렀던 거죠.”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담배를 꺼낸 김달호가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자 부리나케 달려온 윤삼식이 담배 밑에 라이터 불을 댔다. 김달호는 나에게도 담배를 권했지만 난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고시 공부를 할 때 하루에 두 갑씩 피우던 골초였던 나는 담뱃값과 아들의 병 때문에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어지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피범벅이 되셔서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형수님께서 어디서 들으셨는지 이 병원에서 식물인간이나 심지어는 의학적으로 사망한 사람도 소생시킬 수 있게 하는 임상실험에 맡겨보자고 하셨습니다. 우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어차피 형님이 쓰러지고 난 이후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져서 지금은 저 녀석과 저만 남아있으니까요.”
 
있는 힘껏 담배를 빨아들인 김달호가 어둠 속으로 흩어진 담배 연기를 눈으로 좇았다.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살면 철이 일찍 들거든요. 어릴 때 항상 고아원 뒤 놀이터 한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씨발 어떤 년놈들이 날 여기 버리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커서 그 씨발 년놈들이 무릎 꿇고 널 버린 걸 용서해달라고 말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고아라는 짐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곳은 뻔하거든요.”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김달호를 지켜보았다. 한때 법관을 꿈꾸던 나로서는 가장 혐오하는 사람들이 바로 법을 무시하고 주먹과 협박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김달호 같은 인간이었다. 그런 종류의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다니 정말 세상일은 재미있었다.
 
“전 두렵습니다. 저 아래 심판의 순간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렇게 두려우면서 왜 돌아가지 않는 겁니까?”
 
“돌아가도 마찬가지니까요. 사실 우리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닙니다. 재작년 장례식장에서 우리한테 당했던 법성파 얘들한테 쫓기는 중이었거든요. 하긴 한 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아킬레스건을 잘라놨으니 우리야 뭐 사지가 절단당해도 할 말이 없죠.”

 
바닥에 담배를 비벼서 꺼 버린 김달호가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우두둑거리는 소리에 가라앉아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시선을 모은 김달호는 깡패 특유의 건들거리는 말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으면 답 나온답니까? 어서들 움직입시다.”
 
“못된 멍키가 내 얼굴에 낸 상처 좀 보세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큰일 난다고요. 선탠하느라 들어간 돈이 얼만지나 아세요?”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인 최민우의 말에 윤삼식이 눈을 부라렸다.
 
“사내새끼 얼굴에 흠집 좀 났다고 뒈지냐? 한 번만 더 형님 말씀에 토를 달면 바닥에 확 얼굴을 갈아버릴껴.”
 
“그나저나 병원장이랑 사제님은 어디로 간거죠?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요.”

 
아내를 토닥거리던 김원섭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벽을 따라 흘러가던 헤드램프의 빛들은 세 군데의 문으로 나누어졌지만 두 사람의 행방은 보이지 않았다.
 
“겁이 나니까 우리들만 버리고 도망간 게 틀림없어요. 진작부터 믿는 게 아니었는데, 이제 어떡하죠?“

 
겁에 질린 오희섭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때 맞은편 문 너머에서 차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기 있습니다. 다들 이쪽으로 오시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음 방으로 건너갔다. 차재경과 사제는 방 한가운데 서서 왼쪽 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묵주를, 다른 한 손에는 목이 긴 작은 유리병을 든 사제가 양손을 앞으로 뻗은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귀신이라도 들린겨?”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이형주가 바로 대꾸했다.
 
“귀신이 들린 게 아니라 성 미카엘에게 바치는 기도문을 라틴어로 외우는 거예요. 귀신을 쫓는 구마의식이라고요. 제발 모르면 좀 나서지 좀 마세요.”
 
“모르고 무식혀서 미안허다.”
 

부자지간의 말다툼이 벌어지는 사이 기도문 암송을 끝낸 사제가 쥐고 있던 나무 십자가를 벽에다 붙이고는 그 위에 유리병에 든 물을 뿌렸다. 어리둥절해하며 눈살을 찌푸리던 사람들은 벽에서 푸른 연기가 확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십자가를 뗀 벽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검게 탄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낸 사제가 차재경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여긴 끝났습니다.”
 
“지금 하신 거 구마의식 맞죠? 여기에 악귀에 씐 혼령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형주의 물음에 사제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보셨잖습니까. 우린 지금 지옥으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더 이상 싫어! 나 그냥 올라갈래. 우리 교회에 가요. 가서 우리 애한테 지은 죄를 고백해요.”

 
김원섭에게 매달려있던 이유리가 일으킨 발작은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여보, 제발 정신 차려. 나가더라도 우리 애는 데리고 나가야지. 그러기로 했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여보, 그 앤 더 이상 우리 아이가 아니야. 그 앤 사탄이야. 우리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사탄의 새끼란 말이야. 그 애가 우릴 저 아래 사탄의 지옥으로 떨어뜨리고 말 거야.”

 
그악스럽게 남편의 손길을 뿌리친 이유리가 횡설수설 떠들어댔다. 아내에게 떠밀린 김원섭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이유리의 뺨을 때렸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이유리의 소름 돋던 목소리가 잘렸다. 김원섭은 힘없이 옆으로 쓰러진 아내를 내려다보며 코 끝으로 쳐진 안경을 끌어올렸다.
 
“지겹다. 이제 그만하자. 내가 성병에 걸린 것 때문에 네 자궁에 문제가 생겼던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근데 차라리 이혼을 하자고 했거나 나가 뒈지라고 했으면 내 맘이 좀 편하겠어. 이건 정말 아이가 왜 안 생기는지 뻔히 알면서 난리를 치면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맘은 어떻겠니? 내가 정말 잘못했어. 무릎 꿇고 빌 테니까 우리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 응?”
 
김원섭은 흐느껴 우는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로 젖어버린 얼굴을 든 이유리는 남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네놈도 사탄이야. 세상 모두가 다 사탄이 되어 버린 거야. 아버지 하느님, 이 죄 많은 영혼을 구해주소서.”
 
“제발 그만하자니까!”

 
남편의 애원을 뿌리친 이유리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김원섭 역시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뒤를 따랐다. 이유리가 내뱉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절규와 김원섭이 애타게 아내를 부르던 목소리는 서로 뒤엉켰다가 차츰 멀어져갔다. 어둠이 선사한 완벽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따름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약 상자를 닫은 박금옥이 말했다.
 
“뭣들 해요. 저러다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정말 큰일 나겠어요.”
 
“누이는 좀 가만히 있어요.”
 
“너나 입 다물어. 나 혼자라도 갈 테니까 그리들 알아요.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털컹거리는 약 상자를 옆구리에 낀 박금옥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두 사람이 사라진 문을 넘어가버렸다. 주저하던 사람들은 한두 명씩 박금옥의 뒤를 따랐다. 의리라든지, 도움을 주고자 하는 착한 마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디든 움직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하여금 어둠을 딛게 만든 것이었다. 문 너머는 김원섭이 말한 각 구획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큰 방인 것 같았다. 헐리우드 영화 세트장같이 깔끔한 사각형 어둠 안에는 앵글로 만든 선반들이 절반 가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까 사라져버린 원숭이가 어디서 다시 덤벼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창의 플래시를 켜고 앵글 사이사이를 샅샅이 뒤져나갔다. 그 사이 다른 몇 명이 큰 방과 연결된 다른 방들을 뒤져봤지만 어디에도 두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내는 소리마저 사라져버린 어둠 속에서는 원숭이가 남기고 간 악취만이 남아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준 것은 차재경이었다.
 
“일단 이쪽 구획은 수색을 마쳤으니까 폐쇄하고 다음 구획으로 넘어갑시다.”
 
사람들은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앙 복도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온 차재경이 문을 닫고 접은 창을 문짝에 비스듬하게 기대놓았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