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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이재명·유승민, 서민 보수의 탄생

중앙일보 2017.01.01 20:10 종합 34면 지면보기
전영기 논설위원

전영기
논설위원

이재명(53)과 유승민(59)은 올해 대선의 다크호스다. 두 사람이 오늘 저녁 JTBC 신년 토론회에 초청됐다. 이들은 이르면 4월 말 치러질 대선에서 반전(反轉) 드라마를 꿈꾼다. 접전이 벌어지겠지만 묘한 동질감도 있다. 각각 문재인(64)과 반기문(73)이 실족하면 자기에게 기회가 오리라는 포부다. JTBC 스튜디오는 유승민의 대선 데뷔 무대, 이재명에겐 지지율 반등의 기회가 될 것이다.

“빵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 파는 경제” 필요


이재명과 유승민의 시선은 ‘서민 보수’를 향한다. 서민 보수는 촛불민심이 탄생시킨 2017년의 시대정신이다. 이재명은 일찌감치 “내가 진짜 보수다. 새누리당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자칭 보수론은 정치시장에 혼선을 일으켰다. 문재인보다 더 왼쪽인 것 같은데 뭐가 보수지? 이재명의 답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기득권 지배세력이 자신을 보수라고 포장해 진짜 보수가 화가 나 있다. 새누리당은 보수를 가장한 부정부패 집단이다.” 이재명 보수론의 키워드는 법치다. 그는 복지 전략의 근거를 헌법에서 끌어낸다. 34조 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이재명은 이를 “국가는 재정을 최대한 아껴 복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유승민은 서민 보수를 작명했다. 개혁보수신당 선언문엔 유승민 특유의 용어와 어법이 녹아 있다. “헌법과 가치를 목숨처럼 여기겠다. 정의로운 대한민국,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할 보수정당을 세우겠다”고 한 뒤 서민적 보수를 내밀었다. 서민은 지금까지 야당이 독점한 언어다. 유승민은 2014년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시장의 실패로 삶이 무너져 내린 서민들의 자체 고용활동(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이다. 전경련은 그때 유승민 법안이 반시장적·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폐기를 주장했다. 그런 전경련이 지금 시장을 왜곡한 정경유착의 주인공으로 먼저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역설이지만 시대는 이렇게 변했다.

저성장·저고용 자본주의 시대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는 ‘사회적 경제’는 반시장적이라기보다 시장의 보완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보수는 지키기 위해 변한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위험할 정도로 체제가 변한 경우다. 그 정도로 변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의 반란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 파열됐을지 모른다. 여든 야든, 좌든 우든 적당히 변하는 척하는 세력은 기득권으로 몰려 외면받는 세상이 됐다. 시민들은 반기득권 망치를 들어 기득권 정치를 깨버렸다. 여기에 부응하는 정치만 살아남는다.

브렉시트로 집권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내가 이끄는 보수당은 완전히, 전적으로 노동자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이사진에 노동자·소비자를 참여시키고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기업 임원의 보수를 제한하겠다고 했다. 메이의 선언은 경쟁자인 노동당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보수당이 오랜 세월 영국을 지키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건 역사 전환의 고비 때마다 선제적으로 충분하고 과감하게 자기 색깔을 바꿨기 때문이다.

한국의 4월 대선이 이재명·유승민의 TV토론을 계기로 서민 보수 어젠다로 확 이동하면 좋겠다. 이재명이 가짜 보수를 조롱한 곳에서 유승민이 서민 경제론을 펼치면 불이 붙을 수 있다. 그래야 촛불의 국민 에너지가 정치개혁을 넘어 사회경제 혁신으로 나아가지 않겠나. 서민 보수의 핵심 테마는 “대한민국은 안전하게 지켜져야 하며 그 목적은 서민의 풍성한 삶을 위해서”가 될 것이다. “기업·정부 일변도에서 가계·고용 중심으로”처럼 한국 경제의 기조를 새로 세우는 토론들이 뒤따라야 한다. 촛불은 한국 사회를 기득권 천국으로 만들었던 친박당을 주변부로 몰아냈다. 이제 가치 정치, 정책 선거로 가는 길은 대선주자들이 열어야 한다. 패거리 지어서 힘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패권정치는 이제 끝이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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