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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선거캠프정치’를 넘어서려면

중앙일보 2017.01.01 19:50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격랑의 크기는 만만치 않으며, 새해에도 변함없이 대한민국호(號)는 한동안 이 풍파를 헤치고 나가야 할 것이다. 당장 2017년에 해결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굵직한 과제들만 꼽아봐도 다음과 같다. 우선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이 헌법재판소와 특별검사, 그리고 국회의 국정조사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그 결과들은 또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어떤 경우이건 2017년에 우리는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거 과정에서 어떤 형식으로건 개헌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캠프가 정당의 공공성과
이념·비전을 대체한 지 오래
한국의 정당 실패와
선거캠프정치는 동전의 양면
올 대선은 훨씬 더 인물 중심
과연 캠프정치 넘을 수 있을까


새 대통령은 아마 우리 역사상 가장 긴급한 정치 일정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만약 당장 내일이라도 탄핵인용이 결정되면 두 달 이내에 정당 공천, 선거운동, 투·개표와 취임까지 모두 끝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은 매우 급박할 것이며, 선거 유세와 캠페인에서 얼마나 많은 정책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당선자는 인수위원회 활동 등의 준비 기간 없이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임기를 시작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정치는 나아질 것인가? 이전 한국 정치가 누증했던 병폐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근본적이고 명징한 성찰 없이는 우리 정치가 전진하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개헌을 통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믿음이 외려 더 큰 문제일지 모른다.

우리 정치의 결정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선거캠프정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선거캠프는 국정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정치적 이념을 후보자 개인과 그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선거 현장의 실무적 디테일로 대체시킨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모든 후보자들은 비공식적 ‘선거캠프’를 운영해 왔고 이러한 조직은 선거 전체의 기획·관리에서부터 구체적인 현장 실무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 왔다. 
‘캠프원’들이 인수위원회와 여러 정무직으로 임명되는 과정을 굳이 논공행상이라 부르지 않아도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이 관료들을 통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이 정책과 능력과 내용이 아니라 ‘캠프원’의 충성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으며, 임명된 공직은 ‘쟁취’한 전리품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의 선거캠프를 결정적으로 정의하는 특징은 그 인적 구성이 지극히 비공식적이고 사선적(私線的)이라는 점이다. 그토록 흔히 들리는 ‘후보자의 ○○분야 가정교사’ 같은 말이야말로 선거캠프에서 맡은 역할을 알려주는 힌트이며, 때로는 그 상세한 내용이 선거 이후까지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에서 핵심적인 사실은 이상과 같은 선거캠프의 충원 과정이 기존 정당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경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가정교사’들은 정당의 당원이 아니며 ‘가정’이란 말만큼이나 이들이 후보자와 맺는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인 신뢰와 충성심에 기반해 있다. 청문회와 뉴스 등에서 목격했던 많은 고위 공직자가 ‘윗선’의 말 한마디에 의심도 주저도 없이 비리·비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공적 책임감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애초에 충원되고 그 자리에까지 이른 과정이 매우 사적인 것이었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응답으로 획득한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셋째, 선거캠프가 국정 운영 주체가 되면서 한국에서 정치적 책임성은 단절됐다. 박근혜 후보의 핵심 선거 전략이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이전의 모든 대통령이 임기 말 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늘의 선거캠프가 어제의 선거캠프를 부정하는 것이 손쉬운 선거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여당은 이전의 집권을 계승도 반성도 하지 않으며 야당은 집권 때의 책임감을 편리하게도 잊고 있다.

선거캠프들이 정당의 공공성과 이념과 장기적 비전을 대체한 지는 사실 오래되었으며, 한국에서 정당 실패와 선거캠프정치는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다가오는 선거는 어느 선거보다도 더 제한된 짧은 시간에 많은 후보가 인물 중심의 선거를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며, 아마 보다 많은 선거캠프의 역할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선거캠프들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인가, 당선 후 국정 운영에 얼마나 그 역량을 적절하고 공정하게 배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정당이 얼마나 잘 통제할 것인가. 우리가 선거캠프정치를 넘을 수 있을지의 관건이 여기에 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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