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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미래 아우르며 ‘시간의 바퀴’ 멈추게 할 그들의 걸음 계속되길

중앙선데이 2017.01.01 00:32 512호 18면 지면보기


어느 새해 첫날 가족과 함께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연결고리가 만들어내는 미래를 훈훈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였다. 영화관을 나오며 내심 기분이 좋았는데, 새해를 맞아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가슴 설레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새해의 묘미는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2017년 새해를 맞아 ‘한국 창작 음악의 미래’라는 다소 거창한 화두를 던져본다. 한국의 창작 음악은 미래에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음악을 미래에 만나고자 하는가? 그런데 ‘어바웃 타임’이 잘 보여주듯이,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견고한 인과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에,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점검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한국음악을 이 연결고리 속에서 한번 들여다보자.



 

[현재와 미래 사이의 예술가]

“예술가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지만)극히 소수는 미래의 환영을 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각 시대에는 극소수의 예술가만이 이러한 재능을 가졌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이런 역할을 떠맡아야 하고 더욱 진지하게 예술 행위에 임해야 한다.” 독일의 작곡가 슈톡하우젠(K. Stockhausen, 1928~2007)의 주장이다. 슈톡하우젠은 20세기 중반 최첨단의 전자음악 영역을 개척했고, 테크놀로지와 전통적 예술이 결합된 종합적 오페라 작품 ‘빛’ 시리즈를 발표하며 모더니즘적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다. 한국의 작곡가 정태봉도 “창작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선지자, 선각자, 구도자, 나아가서는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하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가상을 강조했다. 이런 모토 아래 정태봉은 음악이 담고 있는 사상과 정신성의 측면에 주목했고, 그래서 기법적 새로움이나 첨단 테크놀로지 보다는 예(禮)와 품위 그리고 진리를 향한 구도자적 자세 등의 동양적 사상을 작품에 반영하고자 했다.



이렇게 예술가는 양식적·사상적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며,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 물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은 많은 음악가들에게 고민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예술적 독창성이 시대적 맥락과 맞지 않아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예술 경향도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초반 파격적 시도로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랑스 작곡가 사티(E. Satie, 1866~1925)는 자신의 무덤에 “나는 아주 늙은 시대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라는 묘비명을 새기도록 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현재의 시점과 자신이 추구하는 미래의 지향점 사이의 갈등과 고민은 예술의 주요 원동력이 된다. 이제 지난해 후반기에 열린 두 음악회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창작계를 살펴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생각해보자.



 

[‘미래악회’ 활동으로 ‘과거’ 되돌아 보기]

지난 10월 26일 작곡가 단체 미래악회 창립 4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작곡가 황성호는 “1976년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 미래악회의 창립 음악회 포스터를 보면서 ‘미래’란 단어가 새삼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젊었을 때에도 미래를 모르고 살던 답답했던 그 시절, 작곡계 선배들께서는 과감히 미래를 화두로 작곡계를 일깨우려 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회상하듯이, 미래악회가 만들어진 1970년대 한국은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현대음악 경향을 수용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당시 여섯 명의 작곡가가 뜻을 모아 “미래지향적이고 시대성 있는 창작 활동”을 추구하며 모임을 만들었고 이 모임은 지난 40년간 정기적인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며 한국 현대음악계를 위한 작은 벽돌들을 쌓아왔다.



40주년 기념음악회는 원로회원 백병동·강석희·나인용·이만방과 현역 회원 이돈응·박인호·정태봉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한국 창작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중진들이 참여한 프로그램만 보아도 미래악회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연주된 백병동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트리오’는 서정성을 담고 있는 동시에 논리적 짜임새와 선적인 진행을 추구하는 그의 음악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음 하나하나의 진지한 모색을 시도하면서, 연주자에게 음악적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백병동식의 정교한 어법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강석희는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를 무대에 올렸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건축”이라 말하며 음악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강석희식 실험정신을 섬세한 음향으로 드러낸 작품이었다. 각 악기의 생동감, 가늘고 나약한 현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힘차고 강한 음향, 그 음향들의 변화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박인호의 ‘1 Satz mit 3 Skizzen’, 정태봉의 ‘학무’, 이돈응의 ‘넋두리’, 이만방의 ‘락(樂)’, 나인용의 ‘혼자’ 등이 연주된 이날 음악회는 미래악회가 지향하는 현대성과 순수한 예술정신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미래악회는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한다’는 모토로 체계적 조직이나 운영 원칙 없이 지난 40여년을 버텨왔다. 이 단체의 원동력은 현대적 시대성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모더니즘적 정신이었을 것이며, 이것이 미래악회의 개성을 확고히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2016 실내악 작곡제전’으로 ‘현재’ 점검 ]

 



사단법인 한국작곡가협회가 주최하는 ‘2016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은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국의 여러 작곡 단체들이 한해 동안 초연된 신작 가운데 가장 주목 받은 작품을 선정하여 열리는 이 시리즈는, 젊은 작곡가들의 동향과 최근 한국의 창작 경향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작곡제전 IV(9월 7일)에서 연주된 일곱 작품을 살펴보자. “작은 생명의 탄생”을 위해 썼다는 권기현의 피아노 독주곡 ‘태초의 맥’은 다양한 현대적 피아노 주법과 작은 타악기 썬더드럼(thunderdrum)의 음향이 합쳐져 음악적 긴장과 이완이라는 강렬한 표현성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이솝 우화를 모티브로 한 안혜승의 트리오 ‘바람과 태양’은 현악기의 미분음적 음향이 두드러졌고, 작곡가 유도원은 ‘화가의 팔레트’에서 반 고흐의 자화상 속 고뇌하는 화가 옆에 자리 잡은 팔레트를 실험적인 음향과 점묘주의 기법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원경진의 ‘바람의 시 II’는 이해인 시인의 시를 대금의 음향을 내는 플루트, 타악기적인 음향을 시도한 기타, 그리고 여기에 진지한 두 연주자(권윤한·최원호)의 낭송으로 표현했다. 전현석의 라이브 전자음악 ‘크로노스의 정원’은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의 무자비함과 잔인성을 모티브로 만든 곡으로, 이질적인 음향의 결합이 강한 표현력으로 폭발해 마치 유리가 깨지고 공간이 허물어지는 느낌의 음향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이어 국악기(해금·가야금)와 서양악기(클라리넷)가 결합된 김수혜의 ‘삼중주’, 작곡가 스스로 쓴 시를 모티브로 “호수에 비친 달의 그림자와 달빛에 비치어 생기는 고목나무 그림자”를 풍부한 음향으로 그려낸 안희정의 ‘달그림자’가 연주됐다.



일곱 작품은 작곡가의 개인적 경험, 문학과 미술, 신화 등 다양한 음악외적 표제와 연결된 특징을 보인다. 그렇지만 연주가 시작되면서 표제에 대한 생각을 곧 잊게 되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강한 음악적 표현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음악 하면 기대되는 불협화음이나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음악적 진행이 전면에 나오기 보다는, 그동안 억눌렸던 내면을 드러내고 있었고, 강한 음향과 극단적인 대조 등을 통해 작곡가 고유의 메시지가 표출된 것이다. ‘아! 우리의 젊은 작곡가들이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며, 그들의 뜨거운 목소리를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미래를 향하여]

오랜 시간 진지함과 열정을 꾸준히 쏟아 부은 한국의 중진 작곡가들과 이제 막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려고 강한 표현력을 드러내는 젊은 작곡가들의 두 음악회를 돌아보며 우리는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한국의 현대음악은 대중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제도적 뒷받침도 열악한 상황에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작은 벽돌을 쌓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 창작계의 내재적인 잠재력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를 통해 구축된 ‘현재’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라면, 우리 창작계는 그러한 견고한 연결고리 속에서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예술은 시간의 바퀴를 멈추게 한다”고 한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러한 예술 내적인 본질을 꿰뚫어보는 듯하다. 오늘을 사는 한국의 작곡가들이 우리를 둘러싼 현재와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를 아우르는, 그래서 시간의 바퀴를 멈추게 하는 그런 음악을 만들어주기를 새해 첫날 기원해 본다.



 



 



오희숙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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