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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 선다’ 정답 찾는 지식은 인공지능이 대체 가능, 창의력 키우는 주관적 평가로 교육 패러다임 바꾸자

중앙선데이 2017.01.01 01:26 512호 6면 지면보기


경기도 용인의 한국외대부고 3학년 김재경(19)양은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만점자 세 명 중 한 명이다. 이번 수능은 6년 만에 가장 어려웠다고 해서 ‘불수능의 귀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수험생 55만 명을 곤혹스럽게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수시모집에 당당히 합격한 만점자의 흔적은 교과서와 문제집에 그대로 나타난다. 국어영역 문제집은 6개월 이상 반복해 보고 또 봤다. 그가 치른 수능 국어영역 45개 문항 중 25개는 ‘다음 중 OO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19개는 ‘다음 중 OO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을 묻는다. 출제위원이 제시한 것 중에서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다. 수능은 1994년 탄생부터 지금까지 정답을 찾으라고 수험생에게 요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취재팀은 김양에게 수능과는 다른 대입 시험을 제공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한국어시험이다. 이 시험은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 교육재단(IBO, 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이 주관하는데 유럽은 물론 미국·일본의 대학도 이 시험 성적을 인정한다. 김양이 받아든 문제지는 2015년 5월 치러진 IB 한국어A(문학)다. 장편소설·중단편소설·시·희곡·수필의 15개 문제 중 하나만 골라 2시간 동안 푼다. 7번 문제는 ‘정형시와 자유시 작품을 각각 골라 시인들이 시 형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들의 효과는 무엇인지 비교 분석하시오’다. IB는 수능과 달리 정답을 고르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김양은 두 시험체제를 이렇게 비교했다.



“자기 생각을 써야 한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수능은 수학을 제외하면 명제의 참·거짓을 판정하는 시험이고, 정해진 답이 있지만 IB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답이 달라질 수 있다. IB가 수능보다 어렵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창의성을 더 요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수능은 이처럼 오답 중에서 정답을 찾는 선다형(選多型) 평가다. 선다형 평가는 대입처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성적 순으로 줄을 세워 공정하게 선발하는 데 기여했다. 성적 순에 의해 합격·불합격을 가르면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최소화된다.



[선다형 평가가 망가뜨린 학교]

수능처럼 출제위원이 정한 정답이 있는 시험과 IB처럼 자기의 생각을 요구하는 시험 모두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특히 대입에 목숨을 거는 한국에서 수능 등 선다형 평가는 고교 교육에 큰 파급력을 지닌다.



올해 정년을 앞둔 정명근(63) 충남 복자여고 교사는 선다형 평가가 학교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35년간 지켜봤다. 그는 30년간 영어를 가르쳤고, 이후엔 진학지도를 맡았다.



“충남 지역의 한 고교에서 고3은 480명인데 이 가운데 수능이 필요한 학생은 많아도 30명이 채 안 된다. 나머지는 수능을 볼 필요 없는 수시로 대학에 갈 수 있는데도 모든 학생이 수업시간에 수능 문제집을 푼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문제집을 또 푼다. 학생들은 문제만 풀며 3년간 허송세월한다. 이걸 교육이라고 할 수 있나.”



정 교사는 “학교는 이제 학생의 인생까지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 정도는 아니어도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까지 선다형 평가는 영향을 끼친다. 2012년까지 실시된 초등 6학년 학업성취도 사회과목 평가지의 1번 문항은 다섯 가지 선택지를 학생에게 주고 ‘OO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을 찾도록 요구한다. 중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2016년 실시된 학업성취도 사회과목 평가지의 1번 문항 선택지도 네 가지이며, ‘OO의 원인으로 옳은 것은?’을 묻는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은 “정답 찾기를 중시하는 교육과 시험에 익숙해진 학생은 정답 밖으로 걸어나가는 위험이나 실패를 무릅쓰지 않게 된다”며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랑의 파도를 건너가기 위해선 상식의 틀을 깨는 인재가 나와야 하는데 정답을 찾아내기를 요구하는 시험과 교육이 그런 인재가 나올 여지를 원천봉쇄한다”고 말했다.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부 장관)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12년간 학생이 선다형 평가에 길들여질 경우 머리에 남게 되는 지식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 가능하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이런 지식을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지 우리 사회가 이젠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대체 못할 지식·역량 가르쳐야]

선다형 평가에 종속된 초·중·고교 교육이 학생에게 제공하는 지식은 미래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을까.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이 2016년 1월 주제를 ‘4차 산업혁명의 이해’로 잡고 이에 대한 논의를 전 세계적으로 촉발시키면서 교육과 관련한 비전을 내놓았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파급에서 교육 분야도 자유롭지 않다는 취지였다. 향후 20년 안에 틀에 박힌 육체노동 관련 기술이나 단순한 인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21세기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16가지 핵심적인 기술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기엔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문해와 숫자를 이해하는 수해 능력 같은 기초 기술뿐 아니라 협력·창의성·문제해결력과 같은 역량이나 일관성·호기심·주도성 등 인성이 포함돼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선다형 평가가 제공하는 지식은 16가지 핵심적인 기술 가운데 비판적 사고·창의성·의사소통·협력 같은 역량이나 리더십 등은 제공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학교는 미래에 갖춰야 할 지식이나 역량을 가르치고 있을까. 김도연 포스텍(POSTECH) 총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창의력 교육이 절실하다”며 “평가 방식부터 바꾸자”고 제안했다. 김 총장은 “한국에서 주관적인 평가를 하자는 데 동의할 학부모가 없다는 건 안다. 시험의 공정성 때문이다. 그래서 객관식 평가를 고집해 왔다.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를 용납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주관적인 평가란 대체적으로 구술이나 서술·논술형 평가, 과정평가 등을 의미한다. 이런 평가가 한국에서 버텨 내기 힘든 이유는 여럿 있다. 채점자의 주관에 따라 점수가 정해진다는 불안과 그런 평가를 승복할 수 없다는 불신이다. 금수저·정유라(구속된 최순실의 딸)가 연상되는 것도 주관적 평가는 외부의 입김에 의해 흔들렸다는 과거 사례와도 관련돼 있다.



이에 대해 이혜정 소장은 “IB의 채점 과정을 보면 주관적 평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IB를 주관하는 IBO는 스위스에 있으나 채점본부는 영국 웨일스에 있다. 전 세계 학생(한국의 경우 경기외고 한 곳 포함)들이 매년 두 차례 치른 시험의 답안지는 영국으로 간다. 답안지는 온라인으로 스캔돼 전 세계에 있는 채점자(현직 교사)에게 보내진다. 이때 사전에 채점된 샘플 답안이 무작위로 섞여 들어간다. 채점 결과와 샘플 답안을 비교해 조정하기 위해서다. 모든 채점은 두 차례에 걸쳐 교차채점되며 여기서 점수 차이가 나면 다시 재채점이 이뤄지도록 돼 있다.



국내 고교 중 유일하게 IB를 응시할 수 있는 경기외고 전성은 교장은 “학생이 채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할 경우 재채점을 요구할 수 있는데 재채점 결과는 대부분 받아들인다”며 “IB의 공정성에 논란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관적 평가 용인은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서열을 매기려는 상대평가 비중을 낮추며, 학생이 어느 정도 성취했는지 평가하는 절대평가의 비중을 높이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이주호 교수는 “수능은 학생이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지 여부만 보는 자격고사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교 수업도 지식을 외우게 하거나 정답을 구하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서영석 글로벌정책연구단장은 “외국에선 공학용 계산기를 가지고 수학시험을 보게 하는데 한국에선 그걸 못하게 한다”며 “공식을 암기하고, 풀이과정을 반복하게 하는 교육이 한국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4차 산업혁명



1차(18세기 증기기관 발명 이후 기계에 의한 생산), 2차(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전기와 생산조립 라인의 결합에 의한 대량생산), 3차(20세기 후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촉발된 지식 정보혁명)에 뒤이어 세상의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인간과 사물의 데이터가 수집·축적·활용되는 새로운 산업혁명을 말한다. 세계경제포럼(WEF) 크라우스 슈밥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 “지금까지 이보다 더 큰 기회도, 더 큰 위험도 존재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능정보사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지능정보기술이 산업구조의 변화를 촉발해 경제·사회 전반에서 4차 산업혁명이 발생한 사회.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유연한 사회 구조를 가진다.



 



●자동화(automation)



인공지능과 로봇 도입에 따라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의 47%는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노동력과 자동화 비용을 비교해 자동화가 타당할 경우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인공지능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인간의 학습 능력을 컴퓨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술이나 방법론을 말한다. 빅데이터 등 컴퓨터가 학습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분류와 확률학습, 검색과 최적화 등 다양한 기계학습법이 포함된다.



 



●딥러닝(deep learning)



머신러닝의 한 종류. 딥러닝은 인간의 뇌신경세포를 모방한 학습법으로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의 일종이다. 인간의 뇌는 뉴런(neuron)이라 불리는 뇌신경세포 1000억 개가 시냅스(synapse)를 통해 서로 연결된 형태로 학습을 거듭할수록 시냅스를 통한 연결 강도가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 아이가 반복 학습을 통해 덧셈과 뺄셈의 원리를 이해하는 원리다. 딥러닝 학습법은 이런 신경세포의 작동원리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다. 딥러닝을 통해 설계된 인공지능은 빅데이터가 늘어나고 학습이 반복될수록 더욱 정교해진다. 딥러닝 학습법으로 설계된 알파고의 분석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인간이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낮아진다.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강기헌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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