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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경제를 살릴까] 포퓰리즘 경쟁 우려 vs 환부 도려낼 기회

온라인 중앙일보 2017.01.01 00:01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정부 출범 1384일 만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정부 출범 1384일 만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이문열 작가는 단편소설 [전야(前夜),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에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빗댔다. ‘지금이 새로운 날의 전야인지, 진정한 어둠은 아직 뒤에 남은 한 시대의 마지막 밤인지 통 알 수가 없네요.’ 이때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해다.

성장·분배 둘러싼 논쟁 치열할 듯…국정 리더십 회복이 관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정부 출범 1384일 만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2017년 대선이 앞당겨 치러질 수 있다. 수백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지는 2017년 대선은 한국 경제에 ‘새로운 날의 전야’일까? 아니면 ‘아직 뒤에 남은 한 시대의 마지막 밤’이 될까?
선거 특수 기대하기 어려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국내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12월 초 보고서에서 “현재 진행 중인 스캔들은 한국의 성장 전망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주요 정책의 입안과 실행이 2017년 12월 대통령 선출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조기 대선 가능성을 배제한 보고서이지만 조기 대선을 대입해도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탄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하는 기간 동안 경제정책 시계는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게 무디스의 진단이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더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한국 경제가 내년에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특수’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 상황에서는 경기 활성화의 기관차 엔진도 식는 탓이다. 예년 같으면 대선을 앞둔 여권은 각종 경기 부양책을 동원해 경제지표를 끌어올리는 데 전력을 쏟게 마련이다. 그러나 2017년 대선은 과거와 양상을 달리할 전망이다. 박영률 연세대 교수는 “여당이 정권 재창출을 하자면 경제는 일단 살려놓고 봐야 한다”면서 “최순실 게이트나 탄핵과 같은 악재가 없었다면 지금쯤 새누리당은 인위적인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갖은 아이디어를 다 짜내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탄핵 여파로 분당이 점쳐지는 등 존립 여부조차 불투명한 지경이다. 설령 그런 시도를 하더라도 관료사회가 호응해준다는 보장이 없다. 박 교수는 “대통령 리더십 붕괴, 새누리당의 지리멸렬, 자중지란 등으로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보는 경제관료일수록 여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경제정책 설계에 참여했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선거철이 되면 득표에 이로운 정책이 쏟아지면서 다음 정부로 폭탄을 돌리던 시절도 있었다”면서 “그나마 요즘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대외 개방경제로 이행한 덕에 그런 내부적 수단들이 꼭 효과를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주는 기저효과라고 할까? 전문가들은 2017년 대선이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고 지금보다 나은 경제로 이행하는 출발점이 되리라는 기대감을 피력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국 경제의 콘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일수록 더 그렇다.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제에 관한 철학이 있는지,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들이 거시적 전략에 입각해 경제를 이끌어왔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혀를 찬다.

그래서 조기 대선은 파행적인 국가 운용을 종결하고 정상화로 가는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경제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리라는 게 김 교수의 기대다. “시장에는 이미 2018년 한국 경제 대공황설, 경제 위기설이 파다했다. 대한민국호가 어쩔 수 없는 그런 방향으로 떠밀려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2017년 대선은 크게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허리띠를 졸라맬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발산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경제가 더 악화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 위원은 대선 자체가 경제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새 정부가 국내외 현안에 대응하면서 국정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다면 경제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페인 사태에서 배울 점
대선이 있는 해는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마련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를 일러 “미약한 성장력과 취약한 분배라는 현실에서 무엇을 더 중요시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당, 언론, 경제 관련 부처, 사회단체, 학계 등에서 관련 논의가 증폭될 것이고 표를 얻는 대선을 앞두고서는 포퓰리즘이 우위를 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분배를 중시하는 여론이 대세를 점할 경우 새해 대선이 한국 경제의 질곡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김민호 교수는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사회 분위기에 이끌려 대기업 중심의 성장주의 경제정책을 펴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대선 이후 재정지출에 부담을 주는 포퓰리즘 정책이 양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조기 대선의 맹점은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충분히 검증하고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지도자를 졸속으로 선출하는 데서 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300일 가까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스페인 사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015년 12월과 2016년 6월 등 두 차례의 총선에서 과반 의석 정당을 배출하지 못한 스페인은 연정 구성에도 실패하면서 무정부 상태가 계속됐다. 2016년 10월 29일 가까스로 제 1당인 국민당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국정 표류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는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2015년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은 3.2%로 유로존 평균 2%를 크게 웃돌았다. 2016년에도 3.1%의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리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스페인 경제가 안정 기조를 달린 것은 관광업 호황과 수출 증가 같은 호재도 한 몫했지만 ‘정치적 중재자’의 역할도 주효했다고 신용대 건국대 석좌교수는 강조한다.

신 교수는 최근 국가미래연구원에 기고한 ‘스페인의 300일 정치 공백, 무엇을 남겼나?’에서 “국가 대표권을 가진 국가원수인 국왕이 국정공백 상태에서 주요 정당의 당수와 정부 출범을 협의하는 등 중요한 중재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했다.

국정공백 상황에서도 국가의 중심을 잡아주는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면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게 신 교수의 관점이다. 탄핵에 이은 대선이 경제에 ‘새로운 날의 전야’를 가져다줄지, ‘진정한 어둠의 시작’을 알릴지는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고 하겠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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