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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마지막 골든타임] 세 번째 큰 위기 닥친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7.01.01 00:01
한국경제가 싸늘히 식고 있다. 시중에는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거침없이 나돈다. ‘2018년 10년 주기 위기설’도 팽배하다. 이 와중에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둘러싼 국정 혼란과 정치 불확실성으로 경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 외환·금융위기 데자뷔…국가 리더십 복원 시급

2017년 대내외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세계경제는 좋아질 이유보다 나빠질 요인이 더 커 보인다. 한국경제는 2% 성장도 장담 못 할 만큼 고전이 예상된다. 국내외 경제를 뒤흔들 리스크와 불확실성은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어렵다. 이대로 주저 앉을 것인가. 2017년은 어쩌면 침몰 직전의 한국경제호(號)를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인지 모른다.
외환위기가 닥치던 1997년에 필자는 모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해 초부터 필자는 전국 지점을 돌아다니며 고객·직원들에게 주식을 팔아 현금 보유 비중을 높이라고 적극 권유했다. 그 전 해부터 기업들의 수익성이 급속히 나빠져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주가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데자뷔(deja-vu)’라는 프랑스 단어는 ‘기시감’이라고 번역되는데, 필자는 이를 지난 2008년에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에도 파급돼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했다. 당시 필자는 2000년 대 중반의 임금 급등으로 기업 수익성이 외환위기 직전 수준으로 악화된 것을 발견하고 주가 폭락은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했다.
 
국가 리더십 공백이 최대 리스크
세월호는 골든타임을 놓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무능한 국가 시스템이 비극을 불렀다. 지금 한국경제도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세월호는 골든타임을 놓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무능한 국가 시스템이 비극을 불렀다. 지금 한국경제도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 두 번째 데자뷔를 경험하고 있다. 선두 기업 몇 개를 제외하면 2000여 개 외부감사 법인들의 수익성이 바닥을 기는 것은 물론이고 총 매출 원가에서 임금 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외환위기 직전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온 것을 보기 때문이다.

2017년 한국에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경고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필자처럼 기업 수익성을 주목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코노미스트가 여러 요인을 들어 위기 가능성을 크게 점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금리 인상으로 촉발될 신흥국의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재발, 자원 부국들의 장기 침체 등이 한국의 금융시장 폭락이나 수출 부진을 초래할 요인으로 거론된다.

대내적으로는 기업 수익성 악화 이외에도 내수 부진 장기화, 경계수위를 넘어선 가계부채, 이를 파국으로 몰고 갈 주택가격의 버블 붕괴 가능성이 회자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력과 환율 절상 요구도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가장 큰 위기 요인은 국가 리더십의 공백일 것이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면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2017년 중반에 새 정부가 출범할 가능성이 매우 커보인다.

문제는 그동안의 공백이다. 권한 대행도 있고 행정조직도 마비되지 않겠지만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특히 대외 신인도 면에서 그렇다. 그래서 위기가 닥쳤을 때 외국 투자자들의 과잉 반응으로 자본 유출이 ‘스탬피드(stampede, 초식동물 무리 중 한 마리가 위험을 감지하고 뛰면 나머지 동물들도 무턱대고 그 방향으로 질주하는 것)’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90년대 말 한국 경제가 경험한 일이다.
 
허약해진 한국경제 체질
좀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가 12월 28일 발간한 [2017 경제 大예측] 참조

좀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가 12월 28일 발간한 [2017 경제 大예측] 참조

물론 2017년이나 그 이후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작게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가 겪을 가장 큰 위기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대규모 자본 유출이 일어나고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일 것이다.

이 두 위기 시점에는 단기 외채의 비중이 절반 정도로 커진 상태였는데, 90년대 말에는 이 능력이 안 되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2008년에는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쌓은데다 통화스왑 등으로 대비했기 때문에 잘 극복한 차이는 있다. 그런데 지금은 단기 외채의 비중도 작고 외환보유액도 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러므로 한국 경제가 외국 자금의 이탈 등에서 오는 충격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부적인 위기 요인은 시한폭탄으로 생생히 살아있다. 그리고 이들 요인은 주거니 받거니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 쉽게 제거하기도 힘든 상태다. 예컨대 ‘가계부채 부담→내수부진→기업 수익성 및 고용 여력 악화→가계부채 상환능력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심히 허약해진 한국 경제의 체질이다.

나폴레옹은 “오늘 내가 겪는 불행은 과거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복수”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 경제는 그간 수차례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지난 20여 년간 체질이 나빠지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보수·진보 정권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영삼 정부는 어설픈 세계화로 외환위기를 초래했고, 김대중 정부는 이를 수습한다며 총 통화량을 4배 이상 급증시키고 카드 사용을 장려해, 집값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 억제와 지방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우후죽순 격으로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으나 이렇게 풀린 토지 보상금이 오히려 집값을 더 뛰게 하였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도 계속 급증했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한다며 고환율 정책을 과도하게 밀고 나가 일부 수출 대기업의 수익을 급증시킨 대신, 이들이 주도한 임금 인상이 전 산업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상당수 산업이 조기에 한계 산업화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단통법’과 더불어, 세월호·메르스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 내수를 더욱 위축시켰으며, 한진해운 처리와 조선산업의 구조조정 연기에서 보듯이 신중해야 할 것과 과감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해 산업구조의 고도화도 요원한 일이 됐다. 이들 정권 모두 ‘경제적 규율(economic discipline)’을 지키지 못한 결과가 허약한 한국 경제의 체질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한국 경제에 닥칠 수 있는 위기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탄핵 정국이 최대한 빨리 수습돼 정치 리더십이 복원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이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상당 기간 지속될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에서는 경제 정책의 주안점을 ‘새로운 일’ 보다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안정화’에 둬야 할 것이다. 특히 시장의 가격변수를 손대는 일은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외환시장 개입은 스무딩 수준에서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면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 및 고도화를 추진하고, 동시에 고용 창출과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 노력을 병행하는 등 한국 경제의 체질 강화 노력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산업 구조조정은 문제 산업 내에서 고용 유지를 전제로 기업 간 통합을 촉진하고, 지난 십 수년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신수종 사업의 발굴과 지원 노력을 원점에서 재검토·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고용 창출은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규제 완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모든 규제는 일몰 규정을 붙여 폐지하거나 최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리려면 지속적인 고용 창출 노력 이외에도, 이미 자영업자 등 상당수 납세자에게 세금보다도 과중해진 건강보험료를 수년간 동결하는 조치도 고려해봄 직하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정부가 출범해도 세금 부담 경감과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전제로 한 건전 재정, 좋은 일자리 창출 등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정책 노선일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런 ‘경제적 규율’에 충실한 사람이 선출되기를 이코노미스트로서도 물론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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