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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6

중앙일보 2017.01.01 00:01
<세월호>
 
세월호 가지고 유난 떨지 말라고 한다. 세월호만이 '사고'였냐고 한다. 생각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 모든 불행과 사고에 함께 슬퍼하고 연대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으니, 세월호만이라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또 세월호만이라도 잊지 말자는 것은, (아픔의 정도를 측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중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늘 동시대를 향한 연민과 연대를 간직해야 함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는 실재이자 동시에 상징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완벽함을 상정한 후, 완벽하지 못할 바에 아예 모든 것에 눈 감아버리자는 말은 과연 온당한가.
 
2014년 4월 16일부터 내게는 사람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자세, 더 정확히 말하면 세월호 유가족을 대하는 자세다. 그들 앞에 반대, 폄하, 비아냥, 음해는 물론이고 중립조차 있을 수 없다. 전적으로 세월호 유가족에 공감하고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는 여전히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 지난 세월은 개인의 행복이 자주 죄스러웠던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홍대 앞 횡단보도 중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아직 못 찾은 세월호 아이에 관한 표지판을 들고 있었다. 나는 잠깐 멈칫했으나 나도 모르게 다시 태연히 걸었다. 나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그렇게 태연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내 마음과 달리 난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가 내 마음을 알아봤을 리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에게 나도 그저 무심한 행인 1일뿐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자식을 잃은 것만으로도 지옥인데, '정치꾼'에다 '탐욕'의 누명을 뒤집어쓴 부모들의 처지를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초현실'은 말 그대로 너무나 초현실적이라 어떨 때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론 부족하다. 하지만 난 그 다짐만 반복하고 있다. '내 삶의 여유가 허용하는 범위'라는 게 늘 알량한 알리바이다. 오늘 홍대 한복판에 세월호가 있었다.
 
<장례식>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입구 밖에서부터 눈에 밟히는 스타벅스는 내가 쓰러뜨려야 할 괴물 같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이 들어와 있어. 저승 가는 길에도 고품격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너의 근사한 브랜드를 소비하라 이거지. 나의 예민한 엄숙함은 곧 현금인출기와 맞닥뜨린다. 장례식장에 갈 때의 준비물은 오직 카드 한 장뿐이다. 지폐를 세며 이토록 편리한 배려에 축복을 내리다가 죽음이 지폐 개수만큼 가벼워짐을 느낀다. 망자를 애도한 다음 악수를 한다. 당신의 심정을 전부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크기만큼의 정확한 슬픔만 전하고 나온다. 친한 사람, 조금 덜 친한 사람, 오랜만에 보는 사람, 편한 사람, 조금 어색한 사람과 섞여 밥을 먹는다. 장례식장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죽음은 조금씩 희미해진다. 집 문을 여는 순간 죽음은 완전히 잊힌다. 내가 슬퍼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한다. 
 
<동주>
 
영화 <동주>를 좋아한다. 극장에서 2번 봤다. 롯데시네마 홍대에서 2번 봤다. 1번은 혼자, 1번은 아는 후배랑 봤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후배에게 미리 부탁했다. “내 생각엔 영화 보다가 내가 울 수도 있는데, 내가 우는 모습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으니까 그때 사진 좀 찍어줘.” 나와 가까이 지내려면 나의 이런 모습을 사랑하거나, 최소한 견뎌야 한다.
 
나는 영화 <동주>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취향을 저격하기도 했지만 만듦새로 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동주>를 좋아하는 것과 윤동주의 시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일 수 있다. 그리고 윤동주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것과 윤동주의 시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별개일 수 있다. 솔직히 난 세상이 윤동주의 시를 반기는 것만큼이나 그의 시가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다. 더 공부할게요.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어리다고 놀리지도 말고요.
 
동주 OST도 즐겨 듣곤 했다. 이 앨범이 바이닐(Vinyl)로 나왔으면 좋겠다. 이 앨범이 나의 바이닐 컬렉션에 추가되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직접 제작해볼까 생각도 했다. 난 바이닐을 어떻게 제작하는지 알고 있다. 수익은 필요 없으니까, 그저 1장만 내 것으로 가지고 있게 해주세요. 특히 강하늘이 직접 부른 ‘자화상’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지금도 듣고 있네. 노래를 통해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란 이런 것이다.
 
<동주>에서 송몽규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은 이 영화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상도 탔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신인연기상을 받았고, 청룡영화제에서도 신인상을 받았다. 내가 받은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다. 이렇게 된 김에 아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다닐 생각이다. 또, 나는 박정민의 한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다. 씨네21 인터뷰였다. 사실 이 인터뷰야말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오늘 영상원 동기 누나가 ‘요즘 연기 좋다는 얘기 많더라. 잘됐으면 좋겠다’고 보낸 문자에 ‘그냥 한철이에요. 또 제자리로 돌아가 생계와 싸우겠죠’라고 답장했다. 그게 진심이다. <동주> 때문에 내가 단박에 스타가 되진 않을 거다. 알고 있는데 답장을 보내놓고 조금 슬펐다. 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옛날 그 마음이 생각나서. 전쟁터에 들어와서 나는 꽃으로 싸우겠다고 말할 수 없잖나. 총을 들어야지. 초심이란 게 되게 중요한데 그때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영상원 동기 중 가장 먼저 데뷔했는데 먹고사느라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예 못하게 됐다. 내가 아직도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금 이 인터뷰도 너무 신나서 전날부터 기다렸다. 그런데 <동주>가 지나가고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러면 난 또 무엇과 싸워야만 되겠구나 생각하니 복잡미묘하다.
 
인터뷰 중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먹고살기 힘든 배우에 대한 연민 따위가 아니다. 대신에, 성공을 대하는 가장 좋은 자세인 것 같아 그렇다. 순간을 누리되 들뜨지 않는 것. 지금의 관심이 결국은 신기루에 가까운 것이며, 중요한 건 나 자신과의 대화이자 싸움이라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 한방으로 모든 게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에 하지 않는 것. 하지만 묵묵히 하고 싶은 일을 낙관으로 꾸준히 해나갈 것.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동주>가 내게 안긴 뜻밖의 선물이다. 나도 상 받았네.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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