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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다, 엄마 사랑해”…60대 아들, 80대 부모의 비극

중앙일보 2016.12.29 01:52 종합 12면 지면보기
경남 밀양의 한 단독주택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일가족 3명이 숨졌다. 경찰은 이 집에 살고 있는 아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불을 질러 부모와 함께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밀양 주택 불…일가족 3명 사망
아버지는 거동 불편, 어머니 치매
사업 실패 뒤 귀향한 아들 유서 남겨
경찰 “처지 비관 아들이 방화한 듯”

28일 밀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50분쯤 밀양시 초동면의 한 단독주택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이 불로 집에 있던 김모(89)씨와 부인 박모(88)씨, 아들(60)이 함께 숨졌다. 검안 결과 이들은 특별한 외상이 없으며 모두 질식사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거실에는 아들이 쓴 유서도 있었다. 아들은 유서에서 “너무 괴롭다. 우리 엄마 너무 사랑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등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날 화재 현장을 처음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치매를 앓던 박씨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다. 보호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7시50분부터 두 시간 정도 박씨를 돌봤다. 남편 김씨도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요양보호사는 경찰에서 “하루 전인 27일 오후 5시쯤 아들이 술에 취해 ‘나는 곧 죽는다. 빚이 많다. 다른 형제들에게 연락이 안 된다’는 취지로 연락이 왔다”며 “평소에도 수시로 죽는다는 말을 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아들은 서울에서 광고 관련 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이혼해 3~4년 전쯤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와 함께 생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에게 아들은 2남4녀 중 둘째였다. 아들은 고향에 내려온 뒤 부모와 다른 형제들에게 ‘사업을 하면서 빌린 수천만원대 빚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에게 “파산 직전이다. 죽기 직전이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말도 자주 했다. 이 과정에 아들은 감나무 밭을 임차해 감농사를 지으며 유통 등 다른 사업도 추진했으나 잘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말이다.

부모는 수억원대 재산이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아니었다. 대신 1인당 12만원(지난 9월 기준) 정도의 기초노령연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부터 부채가 일부 줄어 재산이 늘면서 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밀양시 관계자는 “부부 재산이 약 4억원 이상이면 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일부 부채가 줄어들면서 재산이 늘어 지원이 끊긴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나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현재로서는 처지를 비관한 아들이 불을 질러 부모와 함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모가 땅 등 어느 정도 재산이 있었고 자녀들도 많아 생활고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밀양=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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