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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세계일류상품 739개, 그중 53%가 중기 제품

중앙일보 2016.12.29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훌쩍 큰 글로벌 중소기업
경남 김해에 위치한 중소기업 ㈜대천은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다수의 관을 한 다발로 묶을 수 있는 관(다심관·multi core tube)을 제조하는 업체다. 국내 조선업이 위축되자 이 기업은 해양플랜트·육상플랜트용 다심관을 개발하고, 해외 오일·가스 시장에 진출했다. 덕분에 조선업종 구조조정 와중에도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340억원)은 2014년(270억원)보다 26% 늘었다. 세계 다심관 시장에서 ㈜대천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66.3%. 2위(미국 오브라이언·9.8%)를 압도적으로 제쳤다.
특정 시장에서 글로벌 최상위권 경쟁력을 자랑하는 중소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대천처럼 규모는 작지만 일류상품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점령한 국내 중소기업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세계일류상품이 감소 추세인 국내 대기업과 대조된다.

올해 제조사 106곳 새로 지정
74% 차지해 대기업 압도
전기·전자, 보건분야 많아
수출액 줄었지만 긍정 신호
대기업 중심 수출 구조에서
중기 중심으로 산업개편 분석


KOTRA는 지난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93개 품목을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하고 이 제품을 만들고 있는 106개 업체를 ‘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지정했다. 주목할 부분은 중소기업의 비중이다. 올해 신규로 지정된 106개 일류상품 제조사 중 중소기업은 78개사(73.6%)로, 대기업(13.2%)이나 중견기업(13.2%)보다 훨씬 많다.

덕분에 한국 기업이 제조하고 있는 모든 세계일류상품(739개) 중에서 중소기업이 만드는 제품(391개)도 52.9%로 늘었다. 지난해는 이 비중이 51.3%였다. 세계 일류 상품 개수를 따져보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많이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일류상품은 구체적으로 ‘현재일류상품’(502개)과 ‘차세대일류상품’(237개)으로 구분한다. 현재일류상품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5% 이상이면서 상위 5등 안에 들고, 연간 500만 달러(약 60억원) 이상 판매액을 올린 제품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제품은 삼성전자·현대중공업처럼 굴지의 대기업이 제조하는 제품(32.8%)도 있지만 중소기업 제품(42.4%)이 더 많다.

놀라운 것은 향후 세계 1등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일류상품’의 개수다. KOTRA는 7년 이내 세계시장 점유율이 톱5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차세대일류상품으로 선정한다. 이 상품만 놓고 보면 중소기업 비중이 75.1%로 대기업 비중(2.4%)을 압도적으로 웃돈다. 이창현 KOTRA 중견기업지원팀 박사는 이를 한국의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있는 신호로 본다. 그는 “한국 수출 제품은 지나치게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 하지만 차세대일류상품의 다수를 중소기업이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대기업이 주춤하더라도 중소기업이 대기업 자리를 메울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한다”며 “미래에는 수출 제품의 대기업 편중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일부 제품의 경우 어부지리로 세계일류상품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기업이 더 많이 팔아 시장 점유율을 늘린 게 아니라 세계 시장 규모가 줄어들면서 점유율이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수출 규모는 5268억 달러(약 637조원)로 2014년(5727억 달러) 대비 8% 감소했다. 하지만 어부지리로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됐더라도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꼭 나쁜 일은 아니라는 게 이창현 박사의 분석이다. 시장 축소로 경쟁사가 주춤한 사이 국내 기업이 앞서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반도체 부문(21개)에서 가장 많은 세계일류상품이 나왔다. 파트론은 스마트폰에 장착해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스마트폰 부품, 지니테크는 초점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휴대용 현미경이 일류상품이다.

보건산업(20개) 분야 일류상품으로는 근육통을 완화하는 진동기(영일엠), 류머티즘 등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하는 소염진통제(한국유나이티드제약), 전동식 관절 운동 기구(성도엠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 수송기계(9개), 섬유·생활용품(9개)도 한국 기업이 다수의 일류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식 치킨(㈜바보스·㈜제이케이글로벌), 닭강정(㈜대대에프씨), 육개장(㈜에브릿), 김밥(㈜얌샘), 디저트(㈜맥스원이링크·㈜후스타일) 등 프랜차이즈업체의 식품 수출도 다수 포함됐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에서 수출의 대부분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히 한 우물을 파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을 선별해 해외 마케팅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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