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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6. 잠입 (1)

중앙일보 2016.12.29 00:01
붕괴 후 세 시간 반 경과, 지하 1층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어둠 속을 걸으며 그 생각만을 했다.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호흡은 에베레스트라도 오르는 것처럼 거칠어졌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쳐다보는 바람에 헤드램프의 빛줄기들은 신경질적으로 벽면을 채찍질해댔다. 맨 처음 우리를 맞이한 것은 물방울이었다. 화재를 대비한 스프링클러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진 물방울들은 운이 좋으면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에 작은 파장을 남겨놓고는 조각나버렸다. 하얀 타일이 붙은 넓은 복도 위쪽에는 옛날 영화에서 봤음 직한 삿갓 모양의 전등들이 줄지어 달려있었다. 앞장선 차재경의 목소리가 어둠을 창날처럼 꿰뚫었다.
 
“여긴 아버지가 맨 처음 만드신 연구실이었습니다.”
 
“그럼 그 시약이라는 걸 연구하는 게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긴가요?”

 
어두침침함을 닮은 이대백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사실 저희 집안에는 특이한 병이 유전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대대로 의사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죠. 처음에는 그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에 대한 연구가 시작이었습니다.”
 

물에 젖은 발자국의 저벅거림이 차재경의 말을 간간이 끊어먹었다. 다시 침묵,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긴장을 풀기 위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영웅적인 용기 따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어제까지 직장이나 가족 곁에서 나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변화였다. 나는 관음증 환자처럼 탐욕스럽게 사람들을 훔쳐다 보았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불빛이 향하면 얼굴을 찡그리거나 돌려버렸지만 고개를 돌리지만 않는다면 어둠 속에 파묻혀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 공중목욕탕 내부에서 볼 수 있었던 하얀 타일이 붙은 넓은 복도는 벽에 붙은 몇 개의 기둥을 지나면서 끝이 났다. 오래된 수술 침대와 집도등이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것 같은 투박하고 두꺼운 탁자들도 그 옆에 있었다. 최민우가 탁자들을 가리키면서 일행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저건 정육점에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저기서 고기 잘라다가 환자들한테 먹였나 봐요.”
 
마지못한 힘겨운 키득거림이 잠시 어둠 속에서 들썩거렸다가 사그라들었다.
다시 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열쇠를 쩔그렁거리며 문을 열던 차재경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진짜입니다.”
 
“씨발놈이 입만 열었다 하면 겁을 주고 지랄이야.”

 
윤삼식의 말이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삼켜졌다. 어둠 탓인지 사람들은 민감해져 있었다. 나 역시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과 두려움 탓에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바로 옆에 있던 20층짜리 건물이 폭삭 내려앉았고, 우리들은 그 옆에 있는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이곳도 안전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서 위를 계속 올려다보았다. 먼지와 거미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흠뻑 뒤집어쓴 천정의 전등들은 조금씩 꺼덕거렸다.
 
“젠장할 어디서 부는 바람이야?”
 
김길수의 목소리가 틀림없는 투덜거림은 철문 안쪽의 약간 엷어진 어둠 앞에서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철문 안쪽의 좀 더 넓고 깊어진 대신 어둠을 약간이나마 희석시켜주었다. 철문 안쪽은 좀 더 넓고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투박한 시멘트에 타일을 붙인 벽 대신 강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들이 높은 천정 아래 펼쳐져 있었다. 물론 빛이라고는 중간중간 복도에 붙은 비상등과 비상구를 가리키는 화살표들이 박혀있는 방향지시등뿐이었지만...
 
“여기서부터 가 새로 증축된 임상실험센터입니다.”
 
약간은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 차재경의 말에 박금옥이 바로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어디 있는 거예요?”
 
“이 병동은 지하 7층까지 되어있습니다.”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헤드램프가 일제히 돌아갔다. 곁에 서 있던 이대백이 얼굴을 찡그린 채 옆으로 물러나자 연극 무대처럼 집중 조명을 받은 김원섭은 깍지를 끼고 있던 두 손을 움직이면서 사람들에게 구조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여긴 그냥 직사각형 일곱 개가 층층이 쌓여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각층은 크게 네 개 구획으로 나뉘어 있는데 동서남북으로 십자로처럼 나 있는 복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동쪽과 서쪽 복도 끝은 비상계단이고, 남쪽과 북쪽 끝은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물론 각층으로 다 갈 수 있고요.”
 
“그럼 엘리베이터 타고 바로 병실로 가면 되겠네. 뭘.”

 
최민우의 말에 김원섭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비상상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우리 아들이 입원해있는 병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안하지만 전 아들만 찾으면 바로 데리고 나가고 싶어요.”

 
가슴이 답답한 듯 연신 작게 말아 쥔 주먹으로 가슴을 치던 덩치 작은 여인이 호소했다. 귀신같은 진한 화장에 어깨에 닿을 정도로 치렁치렁한 금귀고리가 주황색 불빛 아래 드러났다.
 
“아따, 아줌씨. 다 가족들 찾자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혼자만 그렇게 쏙 빠져나가겠다고 해버리면 기운들 빠지제.”
 

네이비 실 모자 위에 안전모를 쓴 탓에 얼굴에 온통 그늘이 져버린 이무생이 침을 튀기며 떠들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기관지가 많이 안 좋아서 이런 데 오래 있으면 좀 곤란하거든요.”
 
더듬거리며 입을 연 여인은 손수건을 꺼내서 힘껏 코를 풀었다.
 
“당신 아들은 내가 꼭 찾아낼 테니까 염려 마시구려. 물어볼 게 많으니까 말이요.”
 
굵직한 이대백의 목소리에 작은 체구의 여인은 코 묻은 손수건을 털어대면서 소리쳤다.
 
“내 아들은 당신 아들 때문에 식물인간이 됐어요. 그것도 이 어미한테 이기는 모습 보여준다고 웃으면서 링에 올라갔다가 말이에요.”
 
“링 안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도 그 일 이후에 1년 후에 죽었어요. 최소한 당신 아들은 숨이라도 붙어있기나 하지...”
 
“그게 내 아들 탓이라도 된다는 말이에요?”

 
“이건 새벽에 안양천에서 조깅을 하다가 시체로 발견된 아들이 손에 쥐고 있던 겁니다.”
 
이대백이 품속에서 꺼낸 것은 작은 펜던트였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다가 멈춘 펜던트 끝에 달린 둥근 케이스를 열자 작고 낡고 흑백 사진이 불빛의 바다 사이에 떠올랐다.
 
“당신 아들이랑 당신 사진 맞죠? 당신 아들은 경기 중에 식물인간이 돼서 병원에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죽은 내 아들 손에 이게 쥐어진 겁니까?”
 
“난 몰라요. 어릴 때 헤어지고 그때 본 게 처음이었으니까, 당신 자식이 이십오 년 만에 본 내 아들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내 아들은 죽었어. 당신 아들 친구들 소행이 분명해. 경찰 말로는 당신 아들이 조폭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병풍 노릇을 좀 했던 모양이던데?”
 
“내 아들은 그런 애가 아니에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요.”

 
작은 체구의 여인은 거의 울먹거리다시피 하면서 악을 썼지만 이대백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어린 아들 버리고 미국으로 갔던 사람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습니까?”
 
“그래요. 나, 아들 버리고 양놈 따라서 미국으로 도망쳤어요. 남편이랑 시어머니한테 맞은 게 하도 무섭고 억울해서 핏덩이 자식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요. 집에서 도망치면서 내 손으로 아들 목을 졸랐어요. 어차피 집에 남아있어 봤자 구박만 당할 테니까 내 손으로 끝낼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 조그만 놈이 내 손을 밀쳐내면서, 내 손을 잡아당기면서 살려고 발버둥을 치더라고요. 눈물을 삼키면서 집을 나와서 미국으로 갔어요. 당신이, 그 심정을 알기나 해요? 그 양놈이랑도 금방 헤어졌어요. 어차피 영주권 따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억울하지는 않았죠. 이십 년 동안 안 해 본 일 없고, 안 당해본 서러움이 없었지만 그때마다 참았어요. 돌아가서 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고 결심했으니까요. 장성한 아들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미안하다고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아들 녀석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그러더라고요. 늦게라도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평생 엄마 얼굴 못 보고 사는 줄 알고 걱정했다면서요. 그런 자식새끼가 이 못난 애미한테 우승컵인지 뭔지 안겨준다면서 링에 올라갔다가 싸늘한 시신처럼 변해서 내려왔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드러눕는 한이 있어도 못 올라가게 말리는 거였는데, 당신 아들? 그때 똑똑히 봤어. 타월로 얼굴 가리고 도망치는 거 말이야. 당신 말대로 경기 중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고 최소한 한 번쯤은 와서 미안하다고 말은 했었어야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의심이 들 정도로 인생을 토해낸 작은 체구의 여인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어둠만큼이나 깊은 침묵이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침묵을 깬 것은 오희섭이었다.
 
“자자, 여기 온 사람들치고 사연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있다가는 날이 새도록 가족들을 못 찾을 겁니다. 일단 환자들부터 찾고 나서 얘기합니다. 그나저나 우리 갑선이는 어디쯤에 있습니까?”
 
“제일 아래인 7층에 병리 실험실이 있습니다. 증상이 심한 환자들은 거기에 있고, 상태가 좀 호전된 사람들은 4층부터 6층까지에 있는 병실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잠깐 말을 끊은 차재경이 통로 끝을 쳐다보았다.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진 헤드램프의 빛줄기가 대리석 빛깔의 바닥을 따라 늘어졌다.
 
“붕괴 때문에 주동력이 파손되면서 모든 전원이 차단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실험체들이 들어가 있던 우리가 열렸을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맙소사”라는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 갑선이는요? 그 동물인가 뭔가한테 해를 입지는 않을까요?”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좀 소요되더라도 층마다 돌아다니면서 실험체가 돌아다니고 있는지 수색해야만 합니다. 아까 무기를 나눠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움직입시다. 어서요.”
 

다급한 오희섭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창을 어깨에 걸친 이대백이 물었다.
 
“그 동물체라는 게 실험용 쥐나 강아지 같은 겁니까?”
 
“작은 쥐도 있지만 셰퍼드랑 원숭이도 몇 마리 있습니다.”
 
“그럼 창을 든 남자들이 앞이랑 뒤쪽을 맡고, 여자들이 가운데 있는 걸로 합시다. 잘못했다가 가족들 만나기 전에 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대백의 말에 수긍한 사람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앞쪽은 이대백을 가운데 두고 김길수와 오희섭이 양쪽을 맡았다. 뒤쪽은 두 덩치와 이형주가 남았다. 김원섭은 지하로 들어오자 한층 더 겁을 집어먹은 것 같은 부인을 부축했고, 최민우는 김승리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그 옆에 섰다. 창을 들고 있던 나 역시 앞쪽 이대백의 뒤에 바짝 붙었다. 시큼한 입 냄새를 한껏 풍긴 이무생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이래서 자식농사 다 헛것이랑께. 다 지가 혼자서 큰 줄 알어.”
 
“일단 중앙 통로를 따라 병실과 실험실들을 뒤져보면서 한 층씩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진영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앞에 빠져나와 있던 차재경이 말을 하고는 곧장 앞장섰다. 차재경 옆으로 사제의 웅크린 등이 보였다. 문득 시간에 목이 말랐다. 마음속 시계는 쉴 새 없이 째깍거리고 있었지만 어디까지 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은근한 최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지금 몇 시쯤 됐어요?”
 
“여덟 시 오 분 전.”

 
김승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붕괴 후 네 시간 경과, 지하 1층
 
“통로들이 모이는 가운데에는 지하 1층부터 7층까지 뻥 뚫려있습니다.”

 
김원섭은 연신 뭐라고 중얼거리는 부인을 품에 안고 다독거리며 내부 구조를 일행들에게 설명했다.
 
“그럼 병실은 어디에 있는 거요?”
 
연신 머리 위의 헬멧을 만지작거리던 윤삼식의 물음에 김원섭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제가 설계한 건 각층의 구획과 기본적인 배선도 정도니까요. 각 층에 있는 네 개의 구획마다 가운데 큰 방을 중심으로 그 방의 사 분의 일 크기의 방들이 둘러 싸여있어요. 그게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는 우리 중에는 저 사람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는 사이 발걸음을 멈춘 차재경이 벽 한복판에 자리 잡은 문을 안쪽으로 밀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이끌린 빛줄기들이 문 쪽에 파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여기가 첫 번째 구획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어떻게 일부는 들어가고, 나머지는 남아서 기다릴까요? 아니면 다 함께 들어가겠습니까?”
 

문 앞에 선 차재경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일단 다 함께 들어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사람들을 쓱 둘러본 이대백의 말에 다들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대백의 시선을 받은 차재경이 얘기했다.
 
“좋습니다. 안쪽은 중앙실을 가운데 두고 작은방들이 둘러져있습니다. 각 방들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차례차례 둘러보겠습니다. 제가 앞장설 테니 조심들 해서 따라오십시오.”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녹색의 비상등이 켜진 문 안으로 차례로 들어갔다. 사람들 틈에 끼어있던 나는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어둠이 소리들을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벽 속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신경질적인 물소리에 덧씌워진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방향지시등에서 뿜어져 나온 지독한 녹색의 불빛은 벽을 타고 굴절되거나 살짝 열린 문틈 너머에 숨어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호흡하는 소리 뒤로 나지막하게 하느님을 찾는 이유리의 흐느낌이 들렸다. 첫 번째 방은 한 40평쯤 되어 보였다. 맞은편과 오른쪽의 검은 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정을 가로지르는 사다리 같은 철제 구조물 위에는 수십 개의 케이블 가닥이 지나가고 있었고, 스프링클러가 튀어나온 둥근 파이프도 어지럽게 교차되었다. 오른쪽 벽의 문을 닫은 차재경이 맞은편 벽에 자리 잡은 문을 열었다.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 너머에서 낯선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생선이나 거름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한 악취에 사람들은 코를 감싸 쥔 채 고개를 돌렸다.
 
“아흑, 냄새 한번 지독하네. 하수도관이라도 터진 건가?”
 
박금봉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사람들은 조금씩 주저하면서 문 너머로 한 명씩 넘어갔다. 중간에 끼어서 문을 넘던 나는 무심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붉은색 대신 형광색이라는 것만 빼고는 누군가 흘린 피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군대 시절, 철책선에서 처음 대남 선전방송을 들었을 때처럼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곤두섰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굳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저건...”
 
아들이 아프기 시작할 무렵 잠깐 키웠던 고양이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눈에서 저런 빛을 내곤 했다. 괴상하고 강렬한 빛 다음으로 느껴진 것은 아까보다 더 지독한 악취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빛은 잠시 구석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아니 더 심한 악취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헤드램프에 드러난 빛의 정체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이 키익소리를 내면서 갈고리 같은 손을 휘둘러대면서 벽을 타고 다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뒤늦게, 그리고 허둥지둥 그것을 쫓아갔다. 다른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빛은 벽을 타고 천정으로 튕겨 올라갔다. 천정으로 올라간 빛은 철제 사다리 같은 구조물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우리와 똑같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빛으로 바다를 이룬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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