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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화계 블랙리스트,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규명하라

중앙일보 2016.12.28 20:46 종합 34면 지면보기
어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놓고 여야 의원들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간에 날 선 공방이 벌어졌다. 의원들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집요한 추궁에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적도, 작성하라는 지시를 한 적도, 지금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조 장관은 “지금까지 9400여 명의 명단이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제기된 리스트다. 하지만 그 리스트에 없는 분들이 (지원금 수령 등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고 리스트에 있는 분들도 600여 건의 지원금을 받은 예외가 있다”고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야당 의원들은 조 장관을 향해 “즉시 사퇴하고 피의자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이런 천박하고 야만적 발상을 했는가
특검은 관련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단죄해야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작성했다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진실공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수사 기관 등이 작성하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다.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문화예술인들을 박해하고 예산 지원에서 배제하는 리스트는 무시무시한 살생부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른 고은 시인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 정부인가 알 수 있다. 아주 천박한 야만이다”고 했을까.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전면적으로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특검 수사에 힘을 실어 준 건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다. 그는 이번 주 초 “퇴임 한 달 전인 2014년 6월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 수시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라며 모철민 당시 교육문화수석이나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또 작성 출처로 정무수석실을, 구체적인 작성자로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을 지목했다. 당시 정무수석은 조 장관, 국민소통비서관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이었다. 블랙리스트 실물도 공개됐다.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시국선언 참여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지지자 등이 포함돼 있다.

박영수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특검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 등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를 확보해 분석 작업에 들어간 것도 그런 차원일 것이다. 특히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2014년 10월 초 김 전 실장의 지시라는 표기와 함께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고 적힌 내용도 나온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가 사전 검열이나 예산지원 배제를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 범죄다. 시국 선언 등 표현의 자유를 침탈한 초법적, 탈법적 국가폭력이나 다름없다. 누가 이렇게 불순한 의도를 갖고 문화예술계를 억압하고 통제하겠다는 발상을 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야만적인 살생부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단죄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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