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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 "내년에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은퇴 수순 밟을 것"

중앙일보 2016.12.28 16:45
이세돌 프로 바둑기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세돌 프로 바둑기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바둑계 최고의 스타는 단연 이세돌(33) 9단이다. 이 9단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혈투를 벌이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결과는 1승 4패에 그쳤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의 집념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이 9단은 또 지난 5월 돌연 프로기사회 탈퇴서를 제출하며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는 한 해 마무리도 남달랐다. 이 9단은 올해 마지막 국내 대회인 제35기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26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35기 KBS 바둑왕전 결승 3번기 2국에서 이 9단은 나현 7단을 상대로 274수 끝 백 1집 반 승을 거두며 종합 전적 2대 0으로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날 시상식이 끝나고 이 9단을 만나 한해를 마무리하는 소감과 내년 목표를 들어봤다.
 
한 해를 돌아보면.
“올해는 알파고와의 대결로 좋은 경험을 했지만 응씨배·삼성화재배에서 4강에 그치면서 아쉬움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힘든 한해였는데 KBS 바둑왕전 우승으로 2016년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분 좋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알파고와의 대결로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그보다는 올해 하반기부터 스스로 승부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 점수로 매기자면 50점도 안 되는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기고 싶은 욕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승부의 경험을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켜왔는데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에는 그러지 못했다. 짧은 기간에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히 결과도 좋지 않았다.”
내년 목표는 무엇인가.
“내년에도 바둑에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다. 승부사로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한 해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그래서 내년이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만족도에 대한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대회 우승 같은 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느끼는 바둑에 대한 만족도다. 승부를 즐기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바둑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은퇴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치는 이유는.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아야 의욕이 생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어중간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만족도 못하면서 그대로 안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프로기사로서 내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정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은퇴한다면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2018년부터 바둑 인생을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것 같다. 승부사 인생은 정리하지만 이세돌 바둑도장 운영 등 보급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 또 다른 것을 해볼 수도 있는데, 30대 중반이라 사회적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에 적당한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 바둑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 프로기사의 층이 워낙 두터워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은 커제 9단 같은 최상위 선수의 컨디션이 떨어져도 대체할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 명에게 모든 걸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박정환 9단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대체할 선수가 없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세계 대회 성적도 좋지 않았다.”
커제 9단을 상대할 한국 선수가 마땅치 않은 것 같다.
“박정환 9단은 국내 랭킹 1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편하게 하면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진서 6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나이가 어리고 속기를 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내년 초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대결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다시 나타나는 알파고를 사람이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국적을 떠나 후배기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커제가 두 판 정도는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내가 다시 알파고와 둬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웃음).”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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