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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점이라더니…셔터 닫고 100만원짜리 건강식품 팔아”

중앙일보 2016.12.28 02:24 종합 4면 지면보기
관광 한국 업그레이드 <상> 유커가 싫증낸다
“자, 콜라에 이 제품을 넣어볼게요. 보세요. 색깔이 좀 변했죠? 조금 있으면 검은 색소가 가라앉을 거예요. 이렇게 더러운 이물질이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들어 있어요. 그럼 우리 간이 견딜 수 있을까요?”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건강식품 판매점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간 기능에 좋은 제품”이라며 ‘콜라 해독 시연’을 해 보였다. 매장에 도착하자 가게 문을 닫아 걸었다. 셔터도 내렸다. 벽 곳곳에는 ‘촬영 금지’라고 붙여 놓았다. 가이드는 "한국 정부가 인증한 상점이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다 공무원”이라며 "관광객이라 특별히 구입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이 한 상자에 6000위안(100만원)씩 하는 제품을 서너 개 구매한 뒤에야 매장 셔터가 올라갔다. 지난달 26~30일 4박5일 일정으로 한국 여행을 온 중국인 왕(王)모(32·여·회사원)씨는 이날만 6곳을 쇼핑한 뒤 밤 11시가 넘어서야 인천 월미도의 숙소로 돌아왔다.
왕씨는 “화장품 가게, 인삼 가게 모두 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고 값도 비싸던데 진짜 한국 정부가 인증한 곳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인증하는 관광객 대상 상점은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가 담당하는 ‘우수 쇼핑점 인증제’가 유일하다. 확인 결과 왕씨가 간 6곳 중 면세점 3곳 이외엔 모두 우수 쇼핑점(전국 1004개)이 아니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공무원이 매장 판매사원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왕씨 일행인 주부 A(35)씨는 “한 곳만 가는 것으로 안내받은 면세점도 세 군데나 가다 보니 정작 물건 살 시간이 없어서 빨리빨리 줄 서고 계산하느라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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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이용한 관광상품은 중국 유명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3000위안(50만원)짜리였다. 대개 800~4000위안 하는 한국 여행 상품 중에서 비교적 고가인데도 ‘하루 6번 쇼핑’에 시달린 것이다.

한 유커의 ‘하루 6번 쇼핑’ 여행기
“화장품·인삼가게 처음 듣는 브랜드
판매원들도 다 공무원이라고 속여
안내와 달리 면세점 세 군데나 들러”
면세점 늘면서 경쟁 치열해지자
중국 여행사들 ‘모객 수수료’ 올려
‘쳇바퀴 쇼핑 패키지’ 폐해 심해져


한국과 중국 정부가 합동 규제에 나선 것은 이런 식의 폐해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중국에서 한국에 유커(遊客)를 보내는 대형 여행사의 횡포와 한국 면세점들의 영업 경쟁이 맞물려 있다.
국내의 중국 전담 여행사들은 “유커를 모아서 보내는 중국 대형 여행사의 ‘갑질’이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91만 명으로 역대 최대다. 외국인 관광객 중 차지하는 비중도 53.9%로 역시 최대였다. 이렇게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대규모 여행객을 보내는 만큼 상품 가격을 낮추고 웃돈을 달라”는 중국 여행사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중국인 대상 여행사 관계자는 “중국 현지 여행사에서 관광객 한 명당 300위안(약 5만원)씩 달라고 했다”고 했다.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이 늘어나면서 ‘판매 장려금’이란 이름의 모객(募客) 수수료가 오른 것도 ‘쳇바퀴 쇼핑 패키지’를 심화시켰다. 여행상품 가격을 낮추고 인두세까지 주면서 생기는 적자를 면세점 모객 수수료로 메우기 위해 면세점 쇼핑 횟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여행사에서 관광객을 면세점으로 데려가면, 이들의 구매 금액에 따라 일정 비율로 면세점이 여행사에 수수료를 준다. A면세점 관계자는 “제일 처음 방문한 면세점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첫 방문 면세점’이 되기 위해 로비가 치열하다”고 말했다. B면세점 관계자는 “통상 매출의 10~20%를 여행사에 수수료로 주는데 최근 신규 면세점이 가세하면서 일부는 약 30%까지 주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C면세점 관계자는 “최근에는 여행사뿐 아니라 가이드에게도 10% 이상 따로 수수료를 주는 면세점들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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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해는 여행사를 비롯한 한국 관광업계 전반으로 돌아온다. 유커 전문 여행사인 화방관광의 이형근 이사는 “예전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400~500달러씩 쓰고 갔는데 저가 상품 경쟁 이후에는 씀씀이가 확 줄었다”며 “올 6월에 제주도 크루즈 관광객 1인당 단가가 66달러가 나와서 적자를 본 뒤에는 아예 일반 단체관광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면세점 관계자는 “가이드 수수료에 공짜 공연표 제공 등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 때문에 매출은 올라도 이익이 계속 줄어들어 고민”이라고 했다.
 
◆우수쇼핑점 인증제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 쇼핑점을 대상으로 상품 다양성 등을 평가해 지정한다. 현재 1004곳이 인증을 받았다. 한 번 인증을 받은 쇼핑점은 2년간 자격이 유지된다.

◆특별취재팀 : 구희령·장주영·이현택·곽재민·허정연·유부혁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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