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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잠수함 충돌설’ 불신의 시대가 키운 공방

중앙일보 2016.12.28 01:53 종합 14면 지면보기
“감히 그날의 진실을 말하려 합니다. 저는 진실을 봤습니다.”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올린 영상
과학자 대부분은 의미 부여 안 해
해군 “허위사실 영상에 법적 대응”
네티즌, 최순실 증거 발굴하자
경쟁적으로 의혹 제기에 나서
“검증 안 된 음모론 양산될 위험”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한 명인 ‘자로’(닉네임)는 지난 26일 다큐멘터리 ‘세월X’를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사건을 재조명한 8시간49분 분량의 영상은 공개 전부터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잠수함 등의 외부 충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복원성 부족과 화물 과적, 급변침 등이 침몰의 주된 원인이라는 공식 조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해군은 27일 자로의 주장에 대해 “군 잠수함을 가해자로 만드는 것으로, 수많은 잠수함 승조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허위 사실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고지점인 맹골수도는 조류가 빨라 잠수함의 진입이 불가능하고, 잠수함으로 지목한 관제 영상 속 황색점이 너무 커서 잠수함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월X’는 하루 만에 33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일부 네티즌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다시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한 네티즌의 가설 또는 추론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지만 이에 대한 맹신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등장한 ‘미네르바’(박대성씨) 사태의 모습과 닮았다. 당시 일부 시민은 정부의 외환보유액 문제를 논리적으로 비판한 미네르바의 글을 옹호하며 “정부가 문제를 은폐하려 급급하는 동안 아무 정보 없는 시민들만 피해를 봤다”고 동조했다. 미네르바는 사법 처리됐지만 이 사건은 네티즌 수사대의 원형을 보여 줬다. 2012년엔 국정원 직원 댓글사건으로 네티즌 수사대의 파괴력이 다시 부각됐다. 여권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조직적으로 단 국정원의 행태는 한 네티즌이 국정원의 아이디(ID) ‘누들누들’를 추적해 밝혀냈다. 그가 바로 세월호X를 만든 ‘자로’다.

최순실 사건에서 네티즌 수사대는 더 각광받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회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오방낭’ 의혹, ‘김기춘-최순실 커넥션’의 핵심 물증을 찾아내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화제가 됐다.

네티즌 수사대는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도 인터넷 여론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사기관의 한계를 반복 경험하거나 공권력이 네티즌의 능력을 못 따라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불신이 가중되고, 이럴 바엔 직접 나서겠다는 심리가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올해 정부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28%로 33개 회원국 중 29위였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으다 보니 경쟁적으로 의혹 제기가 이뤄지기도 한다. 청문회 당시 주식갤러리의 활약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더 이상 주갤러에 질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 수사대는 최순실이 덴마크에 있다는 잘못된 추론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분석·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네티즌 주장이 무분별한 의혹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가지 사실을 열정적으로 증명하려다 보면 이른바 ‘확증 오류’에 빠져 자신의 추론에 어긋나는 근거가 나오더라도 이를 무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도 “불신이 싹 틔운 네티즌 수사대의 역할을 인정해야 하지만 무분별한 수용도 위험하다”며 “시민들 스스로 사실과 일방적 주장을 가려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철재·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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