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뭣이 중헌디’에 뜨끔…‘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뭉클

중앙일보 2016.12.28 01:07 종합 25면 지면보기
명대사·명가사로 본 2016 대중문화
어쩔 수 없다. 올해 어떤 연예인의 입에서 나온 멋들어진 말, 재치 넘치는 말도 널리 유행하며 패러디를 양산한 정도에서는 ‘이러려고 OOO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를 능가하기 힘든 시대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등도 마찬가지. 숱한 패러디와 함께 각종 오락프로의 자막을 도배하다시피 했지만 처음부터 엔터테인먼트 장르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자격요건이 애매한 건 올해 다시 회자된 “민중은 개·돼지”도 그렇다. 이 대사가 나온 영화 ‘내부자들’은 본래 지난해 개봉작이다. 그래서 이들은 논외로 했다. 올해 TV드라마와 예능, 영화와 가요를 통해 새로이 가슴에 꽂히고 머리에 새겨진 명대사·명가사·유행어라는 프리즘으로 2016 대중문화를 돌아본다.
 
①“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앞서 1994년, 1997년에 이어 이번에는 1988년 쌍문동 골목길로 시청자를 데려갔다. 80년대를 포근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재구성하며 연초 뜨거운 복고 바람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중장년까지 빠져드는 국민드라마급 인기를 누렸다. 드라마에 나온 그 때 그 시절 노래들도 새로 인기를 더했다. 특히 ‘걱정 말아요, 그대’는 이적이 새로 부른 OST와 전인권의 원곡 모두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나간 것은/지나간 대로/그런 의미가 있죠’는 인생의 회한을 겪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됐다. 전인권은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 여러 히트곡과 함께 이 노래를 불러 의미를 더했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이러려고…’
숱한 패러디를 낳은 유행어 씁쓸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설레고
‘불허한다, 내 사람이다’ 심장이 쿵
‘치어 업, 베이비, 좀더 힘을 내’
새해 새 출발, 힘찬 응원메시지도

 
②“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저예산 흑백영화 ‘동주’는 수백억 제작비,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스물 일곱 젊은 나이로 일제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 같은 또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송몽규, 두 청년의 삶을 조명하며 시인이 남긴 ‘서시’‘자화상’ 같은 싯구에 새겨진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하나하나 반추하게 했다. 때마침 복간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본이 날개돋힌 듯 팔리는 등 ‘윤동주 열풍’도 일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거지”도 기억해 둘만한 명대사.
 
③“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10㎝의 노래 ‘봄이 좋냐??’)
매년 봄이면 ‘벚꽃엔딩’이 다시 차트에 오르며 연애 분위기를 북돋우는 게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남성 두오 10㎝는 이런 가요시장에 뜻밖에도 예리한 훅을 날렸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멍청이들아/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결국 꽃잎은 떨어지지/니네도 떨어져라/몽땅 망해라.” 경쾌한 가락에 연인들을 향한 질투 어린 악담을 실어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으론 경제난으로 연애조차 어려운 젊은 세태와 맞물리기도 했다. ‘벚꽃엔딩’에 이어 내년 봄에도 다시 차트에 등장하는 시즌송이 될 지는 지켜봐야 할 터.
 
④“그 어려운 걸 제가 자꾸 해내지 말입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여성이 느끼는 호감도에서 ‘민간인’에 이어 만년 2위였던 ‘군인’, 콕 찍어 ‘유시진 대위’는 올해 최고의 로맨스남으로 떠올랐다. 군대에서도 한때 폐지를 검토했던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나 ‘~하지 말입니다’까지 새삼 유행이 됐으니 말 다했다. 유시진 대위는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미인과 노인과 아이는 보호하는 게 내 원칙”, “앞으로 내 걱정만 합니다” 등등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만 아니라 시청자들을 심쿵하게 하는 명대사를 수시로 날렸고, 이를 소화한 송중기는 한국·중국을 아우른 톱스타로 떠올랐다.
 
⑤“불허한다, 내 사람이다”(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응답하라 1988’의 청춘스타들이 대개 직후 출연작에서 쓴 잔을 마신 것과 달랐다. 박보검은 천재 바둑기사 최택에 이어 퓨전 사극 ‘구르미…’의 왕세자 이영 역으로도 폭넓은 세대를 넘나드는 인기를 더했다. 이 도도한 왕세자는 남장여자인 내시 홍삼놈(김유정 분)의 매력에 자꾸만 빠져드는 솔직한 심경을 지엄하고 예스럽게 드러내곤 했다. “내가 해보련다, 그 못된 사랑” 같은 사극체 말투는 로맨스 명대사의 새 맛을 안겼다.
 
⑥“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드라마 ‘시그널’)
고장난 무전기로 서로 연결된 과거의 경찰 이재한(조진웅 분)과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 분), 두 사람과 함께 각각 현장을 누벼온 형사 차수현(김혜수 분). 이 세 사람의 드라마 ‘시그널’은 ‘응답하라’시리즈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기억, 아픈 상처를 소환했다.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한 죽음을 막고, 범인을 잡는 걸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장르 드라마의 새로운 명작을 빚어냈다.
 
⑦“꽃길만 걷게 해드릴께요”(예능 ‘프로듀스 101’)
연초 시작한 신생 오디션 프로 ‘프로듀스 101’은 4월의 제 20대 총선에 앞서 때이른 투표열기를 불렀다. 여자 아이돌 후보생 101명을 대상으로 매단계 시청자 인기투표로 순위를 가리는 형식은 치열한 경쟁사회의 잔인한 축소판 같았다. 그럼에도 후보생들의 각기 다른 매력과 분투, 그에 빠져 응원에 나선 시청자들 덕에 큰 성공을 거뒀다. 1위 전소미에 이어 최종 2위를 차지한 김세정이 부모님을 향해 말한 소감은 ‘꽃길’이란 유행어를 널리 퍼뜨렸다. 제발 나를 뽑아 달라는 ‘픽미 픽미…’가 세뇌수준으로 반복되는 노래 ‘픽미’도 크게 히트했다.
 
⑧“넌 두드릴 필요 없단다”(예능 ‘불타는 청춘’)
연예인의 열애과 결별은 다양한 입방아를 낳게 마련이지만 개그맨 김국진과 가수 강수지가 올 여름 전한 연애 소식은 아낌없는 축복을 받기에 충분했다. ‘불타는 청춘’에 함께 출연하며 두 사람이 엮어온 핑크빛 무드가 역추적되면서 과거 강수지의 생일에 김국진이 직접 써서 선물로 건넨 자작시 한 편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똑똑똑/누구니/수지에요/너구나/넌 두드릴 필요 없단다.” 시 제목은 ‘문’이다.
 
⑨“치어 업, 베이비, 좀 더 힘을 내’(트와이스의 노래 ‘치어 업’)
숱한 아이돌 그룹이 뜨거운 각축을 벌인 가운데 ‘치어 업’은 앙증맞은 안무, 애교섞인 노래와 함께 단연 중독성을 발휘했다. ‘친구를 만나느라 샤 샤 샤(Shy Shy Shy)’도 바로 그런 대목이다. 일본인 멤버 사나가 ‘샤이’를 ‘샤’로 발음한 것이 오히려 주효했다. 대만 출신 10대 소녀 쯔위는 연초 국내 TV프로에 대만 깃발을 들고 나왔다가 중국과 대만의 미묘한 갈등에 끼어 적잖은 시련을 겪기도 했다. 노랫말 속의 남자친구만 아니라 트와이스 멤버들에게도 ‘치어 업’이 필요했던 제 때에 ‘치어 업’이 터진 셈.
 
⑩“히트다, 히트”(예능 ‘무한도전’)
지난해 10주년을 성공적으로 넘긴 ‘무한도전’의 저력은 무중력 우주 체험, 북극의 백곰 방문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에피소드, 이런 게 예능프로가 될까 싶은 대목에도 발휘되곤 한다. ‘히트다, 히트’라는 다소 구태의연한 유행어의 저작권을 둘러싼 멤버들의 갈등을 흡사 법정 드라마처럼 다룬 에피소드도 그랬다. 덩달아 ‘히트다, 히트’의 유행어 효력도 새로 갱신됐다.
 
⑪“뭣이 중헌디”(영화 ‘곡성’)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성경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은 전개, 성서적인 악마와 무속신앙을 비롯한 초자연적 존재의 등장 등등 풍부한 상징적 장치가 보는 사람 백이면 백, 저마다 다양한 추론과 해석을 낳게 했다. 극 중 일광(황정민 분)의 경고에 아랑곳없이 관객들은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채 이 영화에 ‘현혹’되어 한껏 머리를 쓰고 말았다. 특히 널리 퍼진 명대사는 아역배우 김환희가 차례로 쏟아낸 일갈, ‘뭣이 중헌디’‘뭣이 중허냐고’‘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의 3종 세트다.
 
⑫“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한국영화 ‘아가씨’ 역시 대중적 흥행과 함께 풍부한 감상을 낳았다.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인 원작 소설 ‘핑거 스미스’를 일제강점기 시대로 옮겨놓은 미학적 시각효과, 3부에 걸쳐 같은 장면을 반복하며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구조, 여성 동성애이자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선 낭만적 사랑의 성취담이 고루 화제가 됐다. 농익은 연기를 보여준 ‘아가씨’ 김민희는 물론 하녀 ‘숙희’를 연기한 신예 김태리 역시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문제의 대사는 이른바 덕심을 드러내는 ‘덕밍아웃’에 곧잘 패러디로 쓰였다.
 
⑬“남자는 조신하게 살림 잘하는 남자가 최고”
(예능 ‘최고의 사랑’)
김숙, 박나래, 이국주, 장도연 등 여성 방송인이자 개그우먼들의 활약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그 중에도 김숙은 ‘가부장’에 대응하는 ‘가모장’의 면모로 “남자가 그런 데 돈 쓰는 거 아냐”“돈이야 내가 벌면 되지”“어디 남자가” 등 다양한 어록을 남기며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웃음을 안겼다. 특히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에서 개그맨 윤정수와의 가상 결혼생활을 통해 통 큰 가모장의 면모를 한층 극적으로 보여줬다.

이후남·민경원 기자 hoonam@joong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