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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자판기로 주문하는 차원 다른 쌀국수…혼밥 미식가들은 신나겠군요

중앙일보 2016.12.28 00:01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 패션디자이너 김석원의 ‘미분당’


일본 라멘집처럼 바에서 음식 즐기는 곳
보기엔 맑은데 묵직함이 느껴지는 육수
양지를 자체 핫소스에 비벼 먹어도 별미


 
주택가 골목길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식당은 간판도 외관도 기존 쌀국수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입구에는 일본 라멘집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 자판기가 있다.

주택가 골목길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식당은 간판도 외관도 기존 쌀국수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입구에는 일본 라멘집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 자판기가 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커피 한 잔 즐길 여유도 없이 아침부터 바쁜 일정이 시작된다. 몰아치는 회의와 그 사이 쏟아지는 각종 디자인 시안 보고들. 겨우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자리에 돌아와 한숨 돌리면 어느덧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각이다. 업무 중엔 그렇게 간절히 나를 찾던 직원들은 이미 삼삼오오 짝을 이뤄 점심 먹으러 나간 뒤다.

‘그럼 나는 누구랑 먹지?’ 발등에 떨어진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며 남아 있는 직원이 있나 둘러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그들이 나가면서 안 끄고 남겨둔 컴퓨터 모니터들뿐이다. 예전엔 자포자기 하듯 배달음식으로 대충 때우곤 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나 자신을 위한 보상심리랄까, 혼자일수록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바로 회사를 나선다. 얼마 전 포(pho·베트남 쌀국수) 식당을 검색하다 리스트에 올려둔 건국대 앞 ‘미분당’이라는 쌀국수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다. 가는 길목에 재래시장도 있어 가는 동안 눈과 코가 즐겁다. 각종 반찬가게, 떡집과 만두, 떡볶이와 어묵 등. 목적지에 도착도 하기 전에 꼬르륵 소리가 나며 자꾸 발걸음이 멈춰진다. ‘참아야 하느니라…’.

그렇게 시장을 지나 코너를 돌면 평범한 주택가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식당을 만난다. 문 앞에 대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없으면 한 번에 찾기 힘들 정도다.

식당 앞에 서면 한문으로 쓰인 ‘미분당(米粉堂)’이란 간판과 함께 작은 자판기 한 대가 나를 맞는다. 일본 라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자판기다. 나는 오전 내내 열심히 일한 나에게 줄 상(?)으로 소 힘줄(스지) 쌀국수를 주문했다. 의외로 일행이 있는 팀보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많다. 역시 요즘 유행은 ‘혼밥’인가?

식당 구성도 일본 라멘집처럼 바 형태로 구성돼 있어서 혼밥족에게 최적화된 곳 같다. 번호를 부르면 지정된 자리에 가서 앉으면 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 안을 찬찬히 살펴본다. 이미 먹고 있는 혼밥족들은 다들 국수에만 집중하고 있어 사뭇 분위기가 진지하다. 도서관 같은 느낌마저 든다.
 

드디어 내 국수가 나왔다. 일단 코로 냄새를 한번 맡는다. 우리가 자주 접하던 자극적인 프랜차이즈 쌀국수집의 육수 향이 아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수는 보기엔 맑은 편인데 한입 떠먹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함이 평범치 않다. 수북이 얹힌 붉고 푸른 고추와 파는 먹기 전부터 시각적으로 입맛을 확 돋게 해준다. 일일이 손으로 찢어 토핑한 양지를 보면 육수 수준이 가늠되는데, 양지고기 자체도 마치 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찢어주시던 장조림처럼 부드럽고 정감 있다.

일반적으로 쌀국수를 먹을 때는 핫소스와 굴소스를 적절한 비율로 첨가하지만 여기 쌀국수는 소스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쌀국수 한 젓가락과 뭉근하게 삶은 소 힘줄 한 덩이를 따로 그릇에 담아 식당 자체 핫소스에 비벼 먹으면 쫄깃함과 탱탱한 식감에 살짝 미소가 감돈다. 그리고 매워진 입안을 다시 뜨거운 육수로 달래주면 어느덧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렇게 계속 반복해 먹다 보면 어느새 국수그릇이 바닥을 보인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미분당에선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좋은 음식만 있다면 오롯이 맛을 음미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특히 혼밥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식사 전 지나가며 눈여겨봤던 꿀떡을 샀다. 오후 회의 때 직원들과 함께 나눠 먹으려고 말이다. 가끔은 혼자여도 좋지만, 함께 먹을 때가 더 좋다.



 
미분당
● 주소: 광진구 화양동 12-42(광진구 군자로3길 27)
● 전화번호: 070-5103-9794
● 영업시간: 오전 11시~밤 9시, 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5시
● 주차: 불가(근처 공영주차장 이용)
● 메뉴: 차돌 쌀국수 7000원, 해산물 쌀국수 8500원, 힘줄 쌀국수 9000원
● 드링크: 하노이맥주(6500원), 사이공맥주(6000원)


 
이주의 식객
김석원
패션 디자이너. 아내 윤원정과 함께 브랜드 ‘앤디 앤 뎁(ANDY & DEBB)’을 17년째 이끌고 있다. 언제나 포마드를 이용한 2:8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젠틀맨. 업계에선 오래된 자타 공인 미식가. TV 맛프로 ‘수요미식회’에도 가끔 얼굴을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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