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객의 맛집] 프랑스 옷 입은 영광굴비,중동요리로 변신한 번데기…혀로 즐기는 세계

중앙일보 2016.12.28 00:01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 푸드스타일리스트 김민지의 ‘주반’


아시아 곳곳 여행한 오너셰프 경험 살려
이국적 색감·식감 더해진 친근한 재료들
주당 요리사가 추천하는 술은 센스 넘쳐

 
한옥을 개조한 ‘주반’은 눈 오는 날엔 정취가 더욱 무르익는다.

한옥을 개조한 ‘주반’은 눈 오는 날엔 정취가 더욱 무르익는다.

 
서촌에 기가 막힌 집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갔다가 에이~ 하고 나온 적이 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인상적인 데가 없었고, 무엇보다 플레이팅에서 어떤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 기억에서 ‘주반’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학자 같은 외모의 김태윤 오너셰프.

학자 같은 외모의 김태윤 오너셰프.

지난 5월 서촌의 지중해식 레스토랑 ‘7pm’에서 전통주와 지중해 요리 페어링 행사가 열렸다. 거기서 만난 김태윤 오너셰프는 자기 요리를 똑 부러지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에이~’ 하고 나왔던 주반 또한 그가 운영하는 형제 브랜드란다.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가본 주반은 몇 개월 사이에 모든 서비스가 안정됐고 메뉴도 다양해졌다. 처음에 혼란스러웠던 캐릭터도 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으로 단련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주류와 음식 페어링을 기가 막히게 잘 추천해줬다. 그 자신이 잘 놀고 많이 먹어 본 요리사라서 가능한 듯했다. 김 셰프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PD가 꿈이던 음악애호가였고, 대학 때 외식업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방학 때마다 아시아 곳곳을 쏘다닌 여행가였다고 한다.
아늑한 실내에는 동서양의 술을 고루 갖춘 바도 있다.

아늑한 실내에는 동서양의 술을 고루 갖춘 바도 있다.


무회타이, 영광-니스, 통영-나폴리, 윙박, 쓰촨용호…. 기발함이 번득이는 메뉴 작명센스는 이런 여행 경험에서 비롯된다. 대학 졸업 후 인도에서 6개월간 정착 생활한 것을 포함해 지중해 인근의 호기심 닿는 곳을 모두 체험했다니 지중해풍 요리 배경이 이해된다.
 
영광굴비 무스를 포도송이 모양으로 올린 ‘영광-니스’.

영광굴비 무스를 포도송이 모양으로 올린 ‘영광-니스’.


그렇게 탄생한 주반의 대표메뉴가 ‘영광-니스’다. 포도송이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영광-니스는 남프랑스 브랑다드라는 생선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광굴비를 이용해 재해석했다. 페르시아지역의 납작한 빵 라바쉬를 오징어 먹물을 넣은 칩 형태로 만들고 부드러운 생선무스를 곁들였다. 살살 뿌려진 레드 파프리카 분말은 색감 대비를 통해 식감을 자극한다. 접시로 사용되는 나무도마 역시 목수에게 의뢰해 각별히 제작한 것으로 식물성 오일을 발라 오랫동안 길들였다. 그야말로 지중해 어느 휴양지에서 만날 것 같은 요리다.
 
태국식 소스를 얹은 석화 요리 ‘피피아일랜드’

태국식 소스를 얹은 석화 요리 ‘피피아일랜드’


겨울에 더욱 맛있는 석화요리 이름은 ‘피피아일랜드’다. 태국의 대표 휴양지 이름을 딴 이 요리는 남찜소스에 청양, 프락키누, 홍고추 등 세 가지 고추를 섞어 대파채와 고수를 올려준다. 계절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속터미널 꽃시장까지 가서 인조나뭇가지를 구해왔단다.
 
낙지젓갈, 크림치즈, 메밀면 튀김 등 낮선 식재료들의 조합이 특징인 요리 ‘신세계’.

낙지젓갈, 크림치즈, 메밀면 튀김 등 낮선 식재료들의 조합이 특징인 요리 ‘신세계’.


샛노란 아크릴 위에 직접 재단한 유리를 겹치고 그 안에 인조 야자수 잎을 끼운 뒤 가자미 구이를 올린 요리 ‘미스터 샤룩칸’, 직접 만든 자개접시 위에 낙지젓갈과 크림치즈·달래 등을 넣은 딥소스를 올리고 메밀면 튀김 등과 곁들여 먹게 한 ‘신세계’ 등 이국적인 색감과 식감이 눈과 혀를 즐겁게 한다.
중동요리 샥슈카에 번데기를 넣고 식용꽃·루꼴라로 장식한 요리 ‘호접몽’,

중동요리 샥슈카에 번데기를 넣고 식용꽃·루꼴라로 장식한 요리 ‘호접몽’,


그리고 주목할 요리 ‘호접몽(호랑나비의 꿈)’이 있다. 중동요리인 샥슈카에 번데기를 넣었다. 미래 식재료로 불리는 식용곤충 중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번데기를 외국인 손님에게도 익숙한 맛과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유리 볼 가장 아래 매운 토마토소스에 번데기가 숨어있고 위에 메추리알을 갈아 올린 뒤 쌉쌀한 루꼴라를 덮어 식용 꽃과 샬롯 튀김을 흩뿌렸다. 마치 꽃밭 같은 플레이팅 위에 놓인 요리는 나비가 되고픈 애벌레의 꿈처럼 아득하게 다가온다.
각기 맛이 다른 4종의 우리 술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전통주 샘플러.

각기 맛이 다른 4종의 우리 술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전통주 샘플러.


‘주반’은 술과 밥이란 뜻이기에 양쪽에 같은 비중을 두고 메뉴를 구성한다고 한다. 음식에 어울리는 술들로 구색을 갖췄으니 어떤 요리를 먹어도 술 생각이 난다. 아담한 한옥의 정취는 그저 거들뿐, 현대적이면서도 푸근하고 다정한 무국적 술집. 이곳에선 신기하고 오묘한 음식에만 혼을 빼지 말고 ‘어떤 술을 마실까요’ 물어보시길. 아시아 곳곳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술까지 섭렵해온 ‘주당 출신 요리사’의 추천은 기대해도 좋다.


 
주반
● 주소: 종로구 필운동 118(종로구 사직로9가길 12)
● 전화번호: 02-3210-3737
●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1시, 일요일 휴무
● 주차: 불가(근처 공영주차장 이용)
● 메뉴 영광-니스(1만5000원), 신세계(1만2000원), 호접몽(1만5000원)
● 드링크: 전통주 샘플러(2만1000원)
 


 
이주의 식객

김민지
푸드스타일리스트. 스타일링 공방 ‘꾸밈’을 운영하며 메뉴 개발 및 촬영, 제품 스타일링, 소품 디자인 제작 등을 하고 있다. 영화 ‘부당거래’ ‘암살’ ‘아가씨’ 등과 LG 디오스 등 다수의 CF에서 공간연출 및 테이블세팅·푸드스타일링을 맡았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