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인의 작가전] 이야기 해줄까 #6. 밤의 하얀 집 - 안나와 나 (2)

중앙일보 2016.12.28 00:01
안나 이모는 일주일에 한 번 커다란 가방과 함께 외출을 했다.
공연이 없는 날이면 뾰족한 굽의 구두를 벗어들고 맨발로 마당에 작은 점을 찍으며 멀어졌다. 오후 늦게 나가 한밤중에야 돌아왔고 몇 달 동안 그런 일은 계속되었다. 왜 그러는지, 어디를 가는지 묻지 않았으며 안나 이모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잠결이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한참 동안 내려다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안나 이모 옷에 묻어있는 끈적끈적하고 복잡한 냄새의 세계를 모른척하며 잠 속으로 스며들었다. 말하지 않으면 묻지 않는 것,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담쟁이덩굴 집은 불을 켜지 않으면 아침이나 낮이나 어두컴컴했다.
마당에서 놀다 노란 불빛이 종일 떠도는 실내로 들어서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벽의 빛 그림자를 따라가며 선과 면을 익혔다. 벽의 끝자락에 놓인 장식장에는 남자아이 사진이 있다. 아이는 여러 장의 사진 속에서 얼굴이 조금씩 변하거나 키와 몸이 자랐다. 낯선 남자들이 안나 이모 어깨에 손을 올리고 활짝 웃는 사진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그녀 남편이나 아들, 혹은 사랑에 빠졌던 남자들을 직접 만나본 적 없다. 그들은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차차!”
 
마당에서 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안나 이모가 나를 불렀다.
이층 창밖으로 몸을 내민 채였다. 원래 이름은 ‘차차’가 아니지만 담쟁이덩굴 집으로 오면서부터 나는 ‘차차’가 되었다. 안나 이모는 이곳으로 온 첫날 다시 이름을 물었다. 가르쳐주어도 자꾸 그랬다. 까만 밤과 하얀 낯이 몇 번씩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봤으니 그렇지. 차차 알아가기로 하자, 차차.”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진짜 차차가 되었다.
그녀가 정말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는지, 일부러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진짜 차차와 가짜 차차의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으므로 차차라 불려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안나 이모는 여전히 이층 창가에 서 있었다.
지붕 한쪽에 걸린 하얀 옷이 바람을 타며 흔들렸다. 내가 바이바이 바로 처음 오던 날 안나 이모는 그것이 자기 엄마가 매달아 놓은 거라 알려주었다. 도시를 떠돌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를 맞이한 건 하얀 지붕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옷이었다. 이층 복도 끝 방에는 안나 이모의 엄마가 입었다던 옷이나 물건을 놓아둔 방이 있었다.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지나치게 예술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잎 같은 옷들이 지나쳐왔을 역사를 말해주었으니까.
언제 내려왔는지 안나 이모가 출입문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담배 냄새가 밴 기다란 손가락들은 새아빠의 귤색 스웨터처럼 차갑지만 부드러웠다.
 
“오늘 밤엔 내가 잠깐 집을 비울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안나 이모가 내 원피스에 달린 프릴을 바로잡아주며 말했다. 그녀의 비밀스러운 하루에 대해 묻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듯 고개만 끄덕였다. 안나 이모 손끝에서 원피스에 달린 프릴이 반듯하게 펴졌다. 계절이 바뀌면 그녀는 천을 떠다 내 몸에 맞게 원피스를 만들어주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천조각이 쌓여갔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새로 만든 자잘한 꽃무늬나 하얀 레이스 옷은 매번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안나 이모 이야기를 자장가 대신 들려주곤는 했다.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려면 별이 보여야 해. 자, 눈을 비벼야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손가락으로 비비면 눈꺼풀 속에서 수많은 섬광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서 정말 그것들이 쏟아진다면 바로 그런 느낌일 것 같았다.
이야기 속에서 안나 이모는 수많은 사건을 품은 소녀였다.
 
“바지를 입으면 항상 엉덩이만 닳는 거야.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으니까.”
 
엄마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자꾸 쿡쿡 웃었다.
 
“차차,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그놈의 책이 문제야. 못 말리는 몽상가라니까.”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안나 이모가 고개를 저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 말대로 나는 지나치게 책을 읽어댔고 그만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몸이 아픈 엄마가 놀아주지 않는 시간의 틈을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메웠다. 바이바이 바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읽은 어려운 단어를 말할 때마다 손님들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령 숭고함이라든지 고귀하다거나 마뜩잖은, 혹은 지리멸렬이나 각인 같은 말들. 그들이 감탄할 때마다 굉장히 소중하고 친밀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 한 부분이 사람들의 놀란 눈과 함께 미끄러져 사라진다.
석 달이 지났는데도 새아빠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어른들에게는 피치 못하게 거짓말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부터 내다보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마당은 푸르스름한 안개와 지지 않는 달빛으로 고요했다. 마음속에서 한발 한발 검은 그림자가 솟아났고 내가, 그리고 내 안에 담긴 모든 감정 따위들이 그만큼 자라나는 걸 알 수 있었다.
 

 
*
 
 
아침인데도 울룩불룩한 등뼈가 침대에 묻히며 잠이 몰려왔다.
나는 차갑고 물컹한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드문드문 눈이 떠졌다. 바다에 가라앉았던 몸도 함께 오르내렸다. 베개에 귀를 대고 먼 곳에서 휘몰아 오거나 혹은 먼 곳으로 휘몰려 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안개의 풍경을 떠올렸다. 계절과 상관없이 안개가 수시로 찾아오는 곳이라 했다. 흐릿한 풍경 속에서도 밤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담쟁이덩굴 집은 하얀색 지붕만 도드라졌다. 바라보고 있으면 뭉근한 슬픔 덩어리가 밀려왔다. 무엇이든 슬픈 것들은 홀로 반짝이는 거니까.
지난밤 벗어두었던 원피스를 집어 탁탁 털었다. 꽃무늬 천에 배어있던 밤의 온갖 냄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이바이 바로 내려와 주방 쪽을 향해 큼큼거렸다. 고소한 음식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구석에서 재봉틀이 돌아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안나 이모 등에는 하얗고 둥글둥글한 빛무리가 어렸다. 등뼈가 오르내릴 때마다 마룻바닥까지 길게 이어진 검은 천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검은 천을 만지작거렸다. 엄마의 하얀 시트나 새아빠의 귤색 스웨터처럼 까슬까슬한 감촉이었다.
 
“밥을 잘 먹어야 넘어지지 않아. 안나 이모가 주는 밥을 늘 맛있게 먹고, 밤에도 그림자 때문에 무섭다고 울지 말고 아주 잘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엄마는 병원 침대에서 나를 끌어안고 조그맣게 속삭였더랬다. 밤에 무섭다고 눈물을 흘린 건 엄마라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건 좋지 않다고 했잖아.”
 
엄마가 다시 속삭였지만 또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에 검은 그림자가 비친다며 죽은 사람처럼 시트를 머리까지 끌어올렸던 건 분명 엄마였다. 엄마는 병원 침대에 눕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새아빠 앞에서 성숙한 숙녀답게 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자꾸 울기만 했다.
재봉틀 앞에서 일어난 안나 이모가 옷의 실밥을 툭툭 털어냈다.
그녀는 자주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뜨거운 이마를 짚고 일어나 밤새 재봉틀을 돌렸다. 검은 천으로 자루 같은 걸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 무얼 만드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안나답게 아름다운 옷들을 만들길 바랐지만 한 번도 그런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나와 안나 이모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우리는 온갖 소리를 내며 밥을 먹었다. 누가 더 크게 쩝쩝 소리를 내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커다란 소리로 수십 번 목을 가다듬었고 안나 이모는 카악, 하고 몇 번씩 재떨이에 침을 뱉었다. 이기는 쪽은 매번 안나 이모였다. 누가 봐도 그녀 편에 설 거라 생각하니, 이기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눈물이 솟았다.
 
“넌 정말 나를 많이 닮았지만, 아, 괜찮아, 겁먹을 거 없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 이름이 마리든 마리가 아니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잔뜩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바람에 크게 입을 벌려 웃었다. 밥풀이 사방으로 튀며 음식에 내려앉았다. 내가 인상을 썼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늘은 공연이 있는 날이다.
바이바이 바에서 이야기 공연은 일주일에 한 번 열렸다.
손님들은 오래전 유행했지만 이미 잊힌 음악들을 들으며 맥주나 붉은 포도주를 마셨다. 스스로 마실 것을 챙기고 서로를 소개했다. 늦게까지 남아있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여섯 명, 어느 때는 네 명이 앉아있었다. 돌아갈 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빈 접시를 주방으로 나르거나 테이블에 의자를 올렸고 쓰레기를 치웠다.
사람들은 어둠이 스며들면 바이바이 바에 모여 오래 머물러 있거나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머무는 시간과 상관없이 그들이 떠나고 나면 동그랗게 홈이 파였다. 안나 이모는 사람들의 홈을 아무렇지 않게 맞아들였다. 아침까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가 펼치는 그런 밤은 계속되었다.

작가 소개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단편 『아칸소스테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창작소설집 『마리 오 정원』
테마소설집 『2012신예작가』
12월 테마소설집 출간예정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