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기업에 배당 확대 등 요구…주가 끌어올려 수익 올리죠
삼성전자에 분할·특별배당 등 촉구
두달 새 1700억 번 엘리엇 대표적
지배구조 취약한 가족 기업 겨냥
일본 세븐일레븐 CEO 물러나기도
경영 간섭 심해 ‘기업 사냥꾼’ 오명
“외국인 지분율 높은 한국기업 타깃”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어 엘리엇의 제안에 응답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고 올해 배당을 4조원으로 늘리는 등 앞으로 배당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엘리엇은 글로벌 2위 ‘행동주의 헤지펀드(activist hedge fund)’입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굴리는 돈이 270억 달러(약 32조5350억원)에 달합니다.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activism)’는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행동주의 전략을 통해 투자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립니다. 일정 의결권(지분)을 확보한 후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요구합니다. 회사의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측면 때문에 ‘기업 사냥꾼’이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업계 1위가 2006년 국내 담배업체 KT&G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1500억원의 차익을 챙겨갔던 칼 아이칸의 아이칸어소시에이츠입니다.

이런 와중에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실적은 도드라집니다. 11월 말 현재 수익률이 8.5%입니다. 지난해에도 4.4% 수익을 올렸습니다. 시장에 관계없이 절대 수익을 내고 있네요. 시장도 커졌습니다. 개수는 2010년 76개에서 2015년 397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투자 대상 기업은 136개에서 551개로, 사이즈는 385억 달러에서 1297억 달러로 커졌습니다.

지난 4월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 일본 세븐앤아이홀딩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났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는 일본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거느린 곳입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는 “스즈키 회장이 아들에게 세븐일레븐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을 반대한다”고 나섰습니다. 이사회는 서드포인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편의점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즈키의 시대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종말을 고했습니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가 나온 것도 사실은 행동주의 헤지펀드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콘솔 게임 시장의 강자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 출시에 미적댔습니다. 변화를 못 읽고 과거의 성공에 집착한 거죠. 이런 행태를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바꿨습니다. 2013년 닌텐도에 약 4000만 달러를 투자해 1% 미만의 지분을 확보한 뒤 주주 자격으로 2013~2015년 모바일 게임 출시를 촉구하는 3차례의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11.4%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가 스테이트스트리트뱅크 등과도 손을 잡고 닌텐도를 압박했습니다. 닌텐도는 마침내 증강현실(VR) 전문 게임회사 니안틱과 합작, 포켓몬고를 지난 7월 출시했습니다. 올해 매출액이 1조원에 달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다음 타깃으로 한국 기업을 꼽습니다. 한국 역시 저성장에 진입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 같은 수익성 지표가 낮아지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회사 안에 쌓아두는 현금은 날로 늘고 있고요.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 기업 투자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PwC에 따르면, 2014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아시아 기업에 투자했을 때 성공할 확률은 30% 수준에 그쳤습니다. 지난해엔 47%로 뛰었습니다. 이진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돼 있고, 사내 현금이 많이 쌓여 있으며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대상 기업이 될 것”이라며 네이버·포스코·엔씨소프트·현대산업개발 등을 대표적 기업으로 꼽았습니다.
토종 행동주의 헤지펀드로는 라임자산운용이 지난달 말 첫 선을 보였습니다. 이 회사 원종준 대표는 “2008년 라자드자산운용에서 일명 ‘장하성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며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거세지면서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성공을 자신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사태’ 때문입니다. 원 대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혹 제기로 그간 기업 로비력에 막혔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이 탄력 받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관투자자들은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