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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쇼미더머니’ 외교, 전략적 이해보다 경제 좇는다

중앙선데이 2016.12.18 01:00 510호 14면 지면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크리스마트 트리 앞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답례하고 있다. [AP=뉴시스]



부동산 갑부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세계 최강인 미국의 대통령이 여태껏 접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유형으로 향후 어떤 정책을 전개할지 예상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주창해 온 대외정책 기조를 면밀히 살피면 최근 조각(組閣)이 자신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계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의 대외정책 기조와 한반도

트럼프가 제시한 대외정책은 강력한 군사·경제 토대를 구축해 미국이 최대한 유리한 상황에서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절대적으로 강력한 군과 경제력을 통해 미국에 협력하는 국가에 보상하고, 협력하지 않는 국가에는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고 천명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방장관, 내무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국토안보장관에 군 출신을 임명한 것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다. 트럼프는 군비 투자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므로 경제에도 이득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강군 건설이 힘을 바탕으로 미국이 국제 문제에 무조건 개입하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군사 개입은 미 본토가 공격받는 경우와 같이 명백하고 분명한 위협이 있을 경우로 한정한다. 트럼프는 저서에서 “군을 동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파병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목표 달성 후에는 즉각적인 철수를 주창한다. 신고립주의로도 불리는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 노릇의 중단을 의미한다. 대신 트럼프는 빈자리를 미국의 동맹국이 스스로 알아서 메우거나 미국이 지켜주는 대가를 지불하길 원한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미국 외교의 수장인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도 가장 어려운 사업 상대인 산유국을 대상으로 거친 협상을 해 온 경험을 높이 산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틸러슨을 내세워 우선적으로 동맹국과 철저한 협상을 통해 비용을 받아 내려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가운데)이 테크 기업 CEO 등 IT업계 고위인사들과 면담하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이들과 각을 세우며 대립했다. 왼쪽부터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부통령 당선인 마이크 펜스, 트럼프, 페이팔 설립자 피터 틸, 애플 CEO 팀 쿡. [AP=뉴시스]

[경제 이해 따라 ‘하나의 중국’ 바꿀 수도]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관통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은 안보를 위한 전략적 계산보다는 경제적 이해의 우선이다. 트럼프가 중국을 지속적으로 때리는 이유도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6월 ‘우리의 잃어버린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7가지 경제공약 중 중국을 무려 3개 영역에 포함했다. 최근 트럼프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의 통화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자 트위터로 “미국은 대만에 수십억 달러어치의 군사장비는 팔면서 나는 축하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며 37년간 지속돼 온 미·중 전략적 이해의 핵심인 ‘하나의 중국’ 정책도 경제적 이해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트럼프 본인도 수차례 밝혔고 대표적 친러파인 틸러슨의 기용으로 더욱 가시화된 대러시아 관계 회복도 전략적 계산을 중시하지 않는 트럼프의 성향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은 오래된 러시아 공포를 떠올리면서 적극적인 대러 제재에 나서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선거 때 “나토는 용도 폐기됐다”며 안보 전략적 이해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와 같이 경제 이해를 우선시하므로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철저한 주고받기 식으로 운용될 것이다. 비용·편익 분석이 대외정책의 핵심 고려사항이 될 것이고 고비용이 드는 전략적 이해는 뒤로 미뤄질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대외정책 원칙과 인사 기용이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 개입주의와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삼는 공화당 주류와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주창하는 트럼프의 간극이 너무 크다. 따라서 트럼프의 외교안보 참모, 특히 국가안보보좌관은 공화당과 트럼프의 분열증적 간격을 줄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운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해 온 마이클 플린을 선택했다. 플린은 육군 중장 출신으로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역임했지만 복합적이면서도 유연한 사고로 미국을 위한 대전략을 마련함과 동시에 당과 행정부를 연계해야 하는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해병대 대장 출신의 제임스 매티스는 야전사령관이다. 전투를 지휘하는 데는 능할지 모르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각종 분쟁과 동맹을 다뤄야 하는 복잡다단한 사태를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시된다. 결국 이 둘을 보완해 줄 인물이 국무장관에 임명됐어야 하지만 미국 외교에 대한 구체적 전략과 외교 경험이 전무한 틸러슨에게 큰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안보국장 큰 전략 만들기에는 역부족]

또한 트럼프는 예측 불가한 본인의 성향을 대외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공언한다. 트럼프는 본인에 대한 평가 중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임을 내세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기존의 규칙을 따르고, 예측할 수 있는 단계를 밟으며, 통념에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온순하게 경기를 한다”고 저서에서 비판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예측 가능한 패턴을 결코 드러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67개국과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미국이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세계에 공포를 안긴다.



아직 정밀한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대외정책 원칙과 구성된 내각을 보면 대한반도 정책의 핵심인 한·미 동맹과 대북정책에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한국을 부자 나라라면서 방위비 분담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국가로 인식한다. 따라서 미국의 방위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 극도로 확대된 동맹비용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트럼프가 요구하는 ‘비인적 주둔비용(Non-Personal Stationing Cost·NPSC)’은 단순한 회계 논리로 산출이 불가능하고, 트럼프가 대선기간 때 보여 준 것처럼 거칠게 증액을 요구할 경우 한국 내에서 심각한 정치 의제화가 돼 동맹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트럼프는 단기 효과를 창출하기 힘든 비동맹국·적대국과의 협상보다는 신속하게 실리를 도출할 수 있는 동맹국과의 협상을 우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북한과 관련한 언급도 명확한 일관성이 없지만 두 가지 방안은 드러난다. 미·북의 파격적인 직접 협상과 중국의 역할 확대다. 그러나 “햄버거 회담”으로 널리 알려진 트럼프의 김정은과 직접 대화 언급은 진정성이 약하다. 트럼프 발언의 전후 맥락을 추적하면 민주당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자신과 같은 협상의 달인이 나서면 김정은 정도는 쉽게 요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언급된 것이다. 중국에 강력한 압박을 가해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트럼프의 발상도 실제 세컨더리 보이콧과 같이 미국의 경제 이해를 해치면서까지 중국에 강력한 압박을 가할지 의문시된다. 가장 큰 우려는 트럼프의 인식에 북핵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위협이고 중국이 나서 해결해야 할 동북아 역내 문제로서 미국의 직접적이고 사활적 안보 이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북핵을 동북아 역내 문제로만 인식]

파격적이고 불확실한 트럼프의 시대가 도래했으므로 한국의 능동적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은 우선적으로 트럼프의 급진적 대외정책 시행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현상 타파의 변화이므로 동맹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의 성격 전환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현재와 같이 한국의 정정 불안으로 불예측성이 극도로 증대된 상황에서는 최악의 상황도 상정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철저한 주고받기식 접근을 해야 한다.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 강조와 같은 기존 접근법은 트럼프를 상대로 장사가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의 본토 주둔비용보다 한국 주둔비용이 저렴하고, 8조원을 투자해 지은 다목적 평택기지가 있으며, 한·미 동맹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서 무기를 구매한다는 등의 미국에 돌아가는 구체적 이익을 제시하는 협상이 필요하다. 동시에 협상 과정에서 한국도 미국에 원하는 것을 챙겨야 한다. 방위비 분담 증액에 한국이 합의하는 반대급부로 핵재처리 능력, 원자력 잠수함 개발 등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미 의회를 대상으로 한 적극적 로비도 필요하다. 공화·민주 양당의 대한반도 정책의 차이보다는 공화당 의회와 트럼프의 격차가 월등히 크므로 의회를 적극 설득해 대한정책에 대한 차이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의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 재검토다. 대북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의 다양한 선택지를 포함한 전향적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대북제재 일변도로만 나갈 경우 트럼프의 불예측성과 김정은의 통 큰 결단이 우연찮게 만난다면 한국의 입장이 매우 어려워진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등의 가능성도 상정해 한국의 자체 국방력 강화를 포함한 신안보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상대가 변칙적으로 나오더라도 한국이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있다면 거기에 준해 대응하면 된다. 또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다면 단기간 내에 한국이 미뤘던 적지 않은 숙제를 끝낼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의 등장을 위기로만 인식하지 말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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