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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토론, 이젠 제대로 하자

중앙선데이 2016.11.27 00:12 507호 30면 지면보기
지금 우리는 실패한 ‘역대급 대통령’을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 취임한 11명의 대통령 중에서 지지도뿐 아니라 능력 면에서 최악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이런 평가는 새삼 우리에게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행 제도가 뭔가 허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함석헌 선생은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역사다”라고 했다. 역사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그러려면 실패를 회복할 수 있는 인물을 다음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한국의 언론과 개별 인터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자회견도 손에 꼽을 정도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대답을 하는 것 대신, 원고 보면서 줄줄 읽어내려가는 담화 발표를 선호한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꺼리는 대통령, 장관·수석들의 대면보고를 듣고 핵심을 짚고 토론을 할 줄 모르는 대통령, 상황에 즉각적이고 적합한 지시를 내릴 줄 모르는 대통령이 다시 등장해서는 안된다.


Outlook

돌이켜 보면, 말이 필요없던 시대가 있었다. 대통령은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았다. 지도자가 말을 많이 하면 국민이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자신의 의중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으로 통했다. 그래놓고 자기편에게 돈벌 기회를 주거나 고위 공직에 오를 기회를 주곤 했다. 아니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다가 잡아가두곤 됐다. 올바른 판단능력과 소통능력으로 통치하는 게 아니라 인사권, 정책 특혜, 기소권 등으로 다스렸다. 그런 시절이 꽤 길었다. 70~90년대를 관통했다. 21세기 들어 그런 시절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통령의 일상은 회의를 주재하고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국민과 소통한다. 이것이 대통령 직무의 전부다.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매일 아침 대통령 주재 참모회의가 있다. 참모들이 물어본다. “이것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 사안에 관해 청와대 입장을 어떻게 발표하지요?”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면 아침마다 서너 가지는 답해줘야 한다. 또한 대통령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기도 한다. 누가 묻든 스스로 묻든 간에, 그에 대한 답이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국정이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역 사나 사회의 진전 방향에 부합하면 나라가 융성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국가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말에서 나온다. 말로써 정책을 발표하고 정부조직을 지휘한다. 말은 곧 생각이다. 생각이 있어야 말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생각 안 해봐서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 순간 대통령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생각이 없으면 그 빈자리는 누군가 채우게 돼 있다. 최순실이 아니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채웠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에게 ‘생각이 없었다’는 데 있다. 생각이 없으니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빌려 왔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했다. 대통령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이 대목에서 꼽씹어봐야할 것은 최소한 대통령의 참모들은 알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점이다.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지 않아 몰랐다고 발뺌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새누리, 특히 친박들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을 터다. 필부필부(匹夫匹婦)라도 대통령과 잠깐 대화를 나눠봤다면 알 수 있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공무원들이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것을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아 큰 사고가 났듯이, 이번에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생각 창고가 비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말하지 않아 국난에 버금가는 화를 입고, 주요 정책들이 줄줄이 꼬이고 있다. 대통령의 생각 없음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자리를 보전했을 그들에게 써주는 대로 읽는 대통령을 모시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했겠는가.



다음 대통령의 자격으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소통능력임이 명확해졌다. 소통능력의 핵심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통찰력과 논리적 사고력,그리고 언어화 능력이다. 철학과 가치관이 분명하고 그것을 대중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검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제대로 된 토론을 붙여보면 된다. 언론인과의 ‘대본없는’ 대담을 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까지의 후보자 간 토론이나 언론인 초청토론, 기자회견과 연설에 대한 검증은 사실 통과의례적 성격이 강했다. ‘공정성’이란 허상에 갇혀 모양과 형식을 갖추는 데 급급했을 뿐 ‘대통령의 자격’을 갖췄는지를 드러내보여줄 격렬한 토론과 검증을 벌이지 못했다. 이젠 차기 대통령의 검증 과정이 확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지지율에 기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내려가는 지도자가 용인돼선 안된다. 송곳질문에 잘 대처해 지지도를 올리고 권력에 오르는 지도자를 배출해야 한다. 이런 검증 시스템을 정교하게 다시 짜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최순실 사태를 불러온 건 대통령에 앞서 우리가 허술했던 책임도 크다.



 



강원국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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