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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서양음악 ‘자아’ 전통음악 그 사이 영역서 대화의 예술 지향

중앙선데이 2016.10.16 00:32 501호 26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작곡가의 역할은 어렵다. 작곡가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시대와 세계의 기준에서 새로운 음악을 작곡해야 하는 창조적인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작곡하는 음악의 전통이 생동하는 문화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웬청)


'아리랑’으로 본 현대 한국 작곡가들의 도전

한 동아시아 현대 작곡가의 고민처럼, 음악을 창작하는 작업은 작곡가의 개인적 예술성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와 문화가 복합적으로 관계되는 도전적 영역이다. 오늘을 사는 한국의 작곡가들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 19세기말 서양음악이 처음 수용된 이후, 한 세기를 넘어서는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다양한 서구의 음악이 폭넓게 수용되어 한국적 상황과 접목됐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소위 한국의 작곡가 1세대로 불리는 음악가들이 조성적 서양음악을 수용하면서 창작세계를 펼친 반면,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다음 세대 작곡가들은 모더니즘적 현대음악에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다. 그런데 이 모든 한국의 작곡가들에게는 이중적 부담감이 늘 함께 했을 것 같다. 이들은 서양음악을 공부하고, 많은 경우 서구권에서 유학을 하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였지만, 동시에 한국 작곡가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음악에 연계시키고자 하는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는 “한국에도 바흐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나와야 한다”는 홍난파(1898~1941)의 주장처럼 서양음악이 창작의 모델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서양음악 수용에 대한 비판 역시 강했다. 따라서 한국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민족주의적 경향이 나타났으며 ‘선(先) 토착화 후(後) 현대화’라는 모토를 주장한 나운영(1922~1994)처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글로벌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것이 변화했다. 과연 21세기 한국의 음악은 어떠한가. 21세기에도 어쩌면 우리의 작곡가들은 여전히 ‘타자’와 ‘자아’의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화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20세기 이후 한국 현대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의 작곡가들이 ‘타자’인 서양음악을 한국적 토대인 ‘자기’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 서양음악·한국적 토대의 연결 고리]‘아리랑’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보편적인 민요다. 한국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을 대변하며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현대에 이르러선 월드컵 응원가, 광고와 시그널 뮤직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문화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 주 열리는 2016 서울아리랑 페스티벌(14~16일)은 아리랑이 단순한 민요를 넘어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을 북돋우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아리랑 페스티발에서는 전통적 아리랑과 현대의 아리랑이 대중음악·현대무용·비보잉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축제의 장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 아리랑은 ‘한국적인 것’의 심벌로 우리 문화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강은수의 '젊은 그들 Forever Young'



서양의 어법과 서양의 악기로 창작을 하는 많은 한국의 작곡가들도 이 선율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먼저 작곡가 강은수의 실내악곡 ‘젊은 그들 Forever Young’을 보자. 피아노· 아코디언·현악 5중주를 위한 이 작품은 한국의 시인 윤동주와 사회운동가였던 강원룡 목사를 주제로 삼아 ‘젊은 그들이 품은 뜨거운 열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곡은 아코디언이 독특하고 이국적인 음색을 들려주는 무조적(無調的) 현대음악이다. 음악은 아코디언이 연주하는 짧은 모티브로 시작한다. 이 모티브는 작품의 음악적 소재로 보이지만, 강한 악센트를 동반한 피아노와 아코디언의 진행 후 비올라가 아리랑 선율을 연주할 때 비로소 이 모티브가 민요 아리랑의 첫 소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랑 선율의 앞부분이 비올라에 의해 인용되고, 이후 변형되어 나타난다. 아리랑의 직접 인용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지만, 아리랑의 첫 소절에서 따온 이 짧은 모티브는 이후 계속 등장하며 민요 선율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 실내악곡이 ‘한국의 두 젊은이의 열정을 표현하려 했다’는 작곡가의 의도를 고려할 때, 한국적 정서를 대변한다는 민요의 단편 인용은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인식의 바이올린 에튀드 ‘밀양아리랑’



아리랑에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보이는 작곡가는 이인식이다. 그는 아리랑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나운규의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아리랑)을 비롯한 다양한 아리랑 선율을 작품에 활용하였다. 2011년에는 ‘아리랑 타령 2011’이라는 제목으로 작품발표회를 열어 바이올린 에튀드 ‘밀양아리랑’, 피아노 트리오 ‘정선 아라리’, 합창곡 ‘통일아리’와 ‘서울아리랑 랩소디’를 발표했고, 2014년의 작곡 발표회 ‘아리랑 삶의 기록’에서는 ‘밀양아리랑’’문경새재 아리랑’‘헐버트 아리랑’ ‘서울아리랑(아카펠라)’ ‘서울아리랑(클라리넷 5중주)’ ‘진도아리랑’‘나비잠아리랑’ 등을 발표했다. 독주곡부터 실내악 편성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합창까지 다양한 음색의 결합이 드러나는 그의 아리랑 작품은 더 이상 낯선 현대음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친숙한 아리랑 선율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따라부를 수도 있다. 작곡가 스스로도 “작곡가와 청중은 소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어법을 다 내려놓고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시도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의 아리랑 시리즈는 청중과의 소통의 시도이며, 동시에 서양음악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전통음악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정태봉의 실내악곡 ‘도라지, 아리랑 두 주제에 의한 이중변주곡’(2006)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4대의 가야금과 서양악기인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호른·바순을 위한 작품으로 ‘아리랑’뿐 아니라 또 다른 민요인 ‘도라지’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작곡가 정태봉은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고 자란 곳 그리고 지금 발붙이고 사는 땅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이 빚은 갚는 것이 마땅하다. 작곡가로서 빚을 갚는 최선의 길이란 나고 자란 곳 그리고 발붙이고 사는 땅에 얽힌 이야기나 노래를 소재로 곡을 쓰는 것이리라.”



독일에서 공부하고 서양어법과 친숙한 작곡가가 자신의 고국에 빚을 갚는 심정으로 전통적 민요를 이중변주곡 기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 안에서 작곡가가 한국의 전통악기 음색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작품 외에도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며 작곡된 임준희의 ‘댄싱 아리랑’(2009), 사회적 분위기를 담은 최영섭의 ‘독도 아리랑’(2010), 문경새재 · 정선 · 경상도 아리랑을 엮어서 만든 이영조의 ‘소프라노를 위한 엮음 아리랑’(2013) 등 많은 작품들이 아리랑을 모티브로 창작되었다.



또한 연주자들도 아리랑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선혜는 자신의 독창회에서 이영조의 ‘소프라노를 위한 엮음 아리랑’을 불러 큰 관심을 모았고, 피아니스트 박종화는 작곡가와 공동 작업한 아리랑 변주곡을 연주해 청중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문화 경계선상의 작품은 새로움을 창조"]이런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아리랑의 역할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서양의 어법과 서양의 악기를 바탕으로 한 음악적 흐름에서 아리랑은 한국적 요소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자아’와 ‘타자’를 연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탈식민지주의 문화이론가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문화 경계선상의 작품은 새로움을 창조한다”고 주장하며 이질적인 두 문화의 만남에 발생하는 ‘틈새’ 또는 ‘사이’ 영역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한국 작곡가들은 이러한 창조적 사이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 물음에 필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문화의 경계가 희미해질 정도로 서로 간의 교류가 활발한 오늘날, 한국 작곡가들은 더 이상 민족주의적으로 또는 서양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창작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작곡가들은 단순히 자신이 공부한 서양 어법으로만 창작세계를 풀어나가지 않으며, 또한 전통에 완전히 돌아가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랑의 다양한 변형이 보여주듯 작곡가들의 지향점은 자기 고유의 문화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 간의 대화로 나아가는 것이며, 이를 통해 그 사이 공간의 예술성을 창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음악을 만들면서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문화를 생동감있게 드러내는 ‘어려운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작곡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시각에서 두 문화 간의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고, 더욱 확고하고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길 기대해 본다.



 



오희숙서울대 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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