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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

중앙선데이 2016.10.16 00:34 501호 2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김옥



한 대학에서 70분간 사랑과 연애에 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조심스레 손을 들고 내게 물었다. “나쁜 남자와의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빠른 속도로 대답했다. “나쁘죠. 나쁜데 심지어 인생의 교훈까지 독점하니까 더 나쁘고!”


백영옥의 심야극장 -33- '계단 위의 여자'

‘나쁘니까 나쁘다’라는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대답이 나오자마자 발작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 번은 ‘나쁜 사람’과 사랑에 빠져 본 사건의 공모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나는 그녀의 질문을 바꾸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왜 나쁜 사람과 사랑에 빠질까. 그것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어째서 우리 인생에 나타나 삶의 교훈까지 몽땅 독점하고 우리를 끝내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걸까. 어째서.



[아직 뽑히지 않은 가시 같은 사랑]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계단 위의 여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 소설은 그림에 얽힌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명석한 머리 덕에 이른 나이에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애송이 변호사 시절, 그는 젊은 화가와 그에게 그림을 의뢰한 갑부, 그의 아내 사이에 벌어진 그림 소송에 휘말렸다. 희망없이 사랑에 빠진 화가와 갑부처럼 그 역시 그 여자 이레네와 사랑에 빠진 탓에, 삶은 엉망진창이 돼 버린다. 남편 몰래 그림을 빼돌리려는 여자를 도와 범죄 행위에 가담한 것이다. 문제의 그림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의 여자, 즉 이레네의 초상화였다.



“젊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느낌이에요. 틀어지고 어긋나버린 모든 것이, 우리가 놓쳐버린 모든 것이, 우리가 저지른 모든 잘못이. 더 이상 그런 감정이 없다면, 한 번 일어나버린 일과 한 번 경험한 일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면, 그러면 우리는 늙은 거예요…당신은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군요.”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이레네는 하지만 한때 사랑을 맹세한 세 남자를 뒤로 한 채 그림을 빼돌려 사라진다. 세월이 흘러 성공적인 아버지이자 남편이 된, 로펌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며 기업 합병건으로 시드니에 출장 온 주인공 앞에 ‘계단 위의 여자’가 나타난다. 주인공은 즉시 사설탐정을 고용해 그녀가 있는 섬을 알아내고 마침내 조우한다. 40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며칠 후 그 섬으로 이레네의 다른 두 남자도 한꺼번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세월은 그 사이 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았다. “슈빈트는 현재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비싼 화가이고, 학생들의 존경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입장인데, 수십 년 전 겪었던 패배 때문에 아직도 괴로워하다니. 군트라흐는 또 어떤가. 엄청나게 성공한 사업가이고 돈이 셀 수도 없이 많으며 훌륭하게 성장한 두 아이의 아버지인데, 반항심 강한 이레네가 오래전 그를 떠난 일이 아직도 극복이 안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것들이 전부 작은 패배이기 때문에 우리가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새로 산 자동차에 최초로 생긴 흠집이 나중에 생긴 큰 흠집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처럼 말이다.”



그는 화가와 갑부를 바라보며 이른 시기에 겪은 커다란 패배가 살아가는 내내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이레네의 존재가 작은 가시처럼 자신들의 존재에 박혀 내내 뽑히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40년 전 이레네에게 도난당한 그림 ‘계단 위의 여자’는 현재 천문학적인 액수로 책정돼 세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뒤바뀐 후였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와 그림의 진짜 소유자인 두 남자가 섬에 들어온 건 단지 문제의 그림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레네’라는 과거의 오점을 지워내고 싶어했다.



[과연 무엇이 내게 축복이었나]



주인공은 돌아오지 않는 이레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지만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그는 이레네와의 ‘그 일’이 아니었다면 죽은 아내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란 자기 암시가 결국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레네가 자신에게 던졌던 ‘젊음’의 정의에 대해 반박할 만큼 경험을 쌓았지만, 그것은 사후적인 ‘독백’일 뿐이다.



“나는 내 늙음을 한탄하지 않는다. 살아갈 날이 많아 남아 있다는 이유로 청년들을 시



기하지 않는다. 나는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이 부러운 이유라면, 지나온 과거가 짧기 때문이다. 젊은 날, 우리는 과거를 한눈에 살펴볼 수가 있다. 비록 매번 달라질지언정, 과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내 자리에서 과거를 뒤돌아보면, 무엇이 짐이었고 무엇이 축복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과연 성공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는지, 여자들을 만나서 무엇이 충족되었는지, 무엇이 충족되지 않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레네가 세 명의 남자를 불러들인 건 그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남자들의 항변에 이렇게 말한다. 남편에게 자신은 부를 과시할 ‘트로피 아내이자 암컷’이었고, 화가에게 자신은 그의 예술혼에 필요한 ‘뮤즈’였으며, 햇병아리 변호사인 그에게 자신은 ‘구출하고 싶은 억압받은 공주’의 역할을 해준 것뿐이었다고. 역할이 스스로를 계산할 수 있는 대상으로, 교환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한다. 결국 이레네는 자신의 사생활을 캐묻는 남자들의 질문에 다른 질문을 되묻듯 던지는 것으로 침묵한다.



[결국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다]



그날 강연이 끝나고 어둑해진 학교 복도를 지나가다가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나는 문득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우리가 나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하나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삶의 ‘의미’ 같은 게 아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 곁에 머무는 건 그토록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가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정말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다가갔던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물러나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지 아는 것 아닐까.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나에게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아는 것 말이다.



나쁜 사람과의 연애는 그 어떤 체험과도 다르게 바닥까지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런 연애의 교훈에는 반드시 ‘아이러니 항목’이 들어있는데, 가령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역설에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를 증오할수록 그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그럴 땐 증오하는 힘으로라도 살아야 한다. 증오 역시 에너지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남자는 그것을 깨달았기에 자신의 삶을 파괴시키지 않고 진화했을 것이다. 내면의 공허함까지야 어찌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고 번식에도 성공했으니까. 나쁜 사람들이 우리 곁에 머무는 건, 환상이 사라진 후 사랑의 환멸 속에서도 나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만큼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해주는 사람은 없다.



몰라보게 쇠약해진 이레네의 비밀을 알게 된 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주인공이었다. 이레네는 췌장암 말기였다. 그녀는 “만약 그때 내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이란 말과 함께 자신의 딸에 대해서도 말한다. 한 번도 ‘행동’이 약속을 의미했던 적이 없었던 그녀가 그에게 부탁한다. 죽음에 의연해 보였던 그녀도 두려웠던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소설이 이레네에게 징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클리셰를 사랑해요. 왜냐하면 그게 맞으니까!”라고 말하던 젊고 매력적인 여자의 늘어진 살갗과 병든 주름들 속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그녀의 병명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스몄을 잔인한 평화와 절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성복의 시 ‘편지’의 마지막 문장처럼.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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