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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사실 파악, 평화 향한 이성적 문제 해결의 열쇠

중앙선데이 2016.10.09 00:40 500호 23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매체에 전해오는 소식들을 보면, 지진이 나고, 건물이 무너지고 테러 행위로 사람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법조계·정치계·경제계의 부패로 사회질서가 지진을 당한 듯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자살·살인·사기 등 참혹한 일들이 그치질 않는다. 더러 듣는 말로, “종말 세계”가 가까워 오는듯한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빠른 삶 느린 생각] 사실·이성·평화

이러한 느낌은 정보과잉시대의 효과일 수도 있다. 위태로운 것이 예로부터 인간의 생존 환경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일정한 테두리를 짓고 사는 법을 알았다. 삶에 일정한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자신의 삶의 범위로부터 배제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심은 넓은 세계를 자신의 앎의 대상으로 포용할 수도 있다. 이성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삶의 긍정적 의미에 대한 믿음 즉, 프랑스 철학자 장 폴앙의 용어로 “세계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신뢰는 이성적 질서에 윤리적 고려가 동반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악의와 거짓과 음모만이 세상에서 보고 듣는 것이라면, 이성적 태도나 윤리적 신뢰가 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악마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에 대적하는 전술을 고안해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공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공적 담론에서 대체로 전술적 방안들을 많이 듣게 되는 것은 이러한 사정에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교황 “폭력 조장, 종교의 소망에 어긋나는 것”]뉴스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쁜 일들을 자주 접하면 이러한 사고방식이 강화된다. 그러나 이번 가을, 최근 몇 주 동안의 어떤 소식들은 세상에는 보다 열린 관심과 사고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하지 않나 한다.



그중 하나는 이탈리의 아시시에서 열렸던 ‘평화의 기도를 위한 세계의 날’ 행사의 소식이다. 이 행사는 198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작한 것으로, 행사는 교황이 주도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이슬람교·힌두교·불교 그리고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의 무속신앙 등 수많은 종교 집단의 대표들이 여기에 참가한다. 지난 9월 20일 개최된 이번의 기도의 날 행사에는 32개의 기독교 그리고 11개의 비기독교 종교 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보도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설교는, 빈곤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그것을 완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 외에, 모임의 주제인 평화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깊이 느끼는 것이 “평화에 대한 갈증”이라는 것, “종교로서 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종교가 가진 가장 깊고 진실된 소망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 “전쟁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 언급되었다.



행사의 식사(式辭)란 대체로 관례적 공식의 연출에 불과할 수 있지만, 교황이 전달하고자한 평화의 메시지는 아무리 재확인하여도 충분하지 않은 메시지임에 틀림이 없다. 교황의 설교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테러리즘이나 폭력을 사회 변혁의 수단으로 내거는 여러 이데올로기를 마음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도 그것은 시의(時宜)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그 설교에는 사회문제를 분노로만 접근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 말도 있었다. 분노의 분출에서 자기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일이 적지 않은 데, 이것도 적절한 언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설교가 호소력을 갖는 것은 교황이 그간 보여준 세계 현실에 대한 실천적 관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 자체가 거기에 관계돼 있다. 이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성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것으로서, 이 아시시의 성자는 가난을 지킬 것을 맹서하고, 모든 동물, 해와 달 그리고 죽음까지도 그의 형제자매라고 하면서, 생명체 일체 그리고 자연 현상 전부와의 공생과 화해 그리고 평화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계, 트럼프 파리협약 탈퇴 공언에 경고]?매체의 눈을 끈 또 하나의 사건은 지난 9월 20일 미국의 과학원 회원 375인이 미국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공개서한을 발표한 것이다. 영국의 스티븐 호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 후보는 지구 기후변화가 과학적 확증이 없는 것이라고 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2015년 195개 국가가 기후변화대책에 합의한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것이 공개서한을 촉발한 것이다. 서명 과학자들은,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가 지구 환경에 막대한 부정적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 변화나 환경 파괴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잘못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변화의 장기적 순환-몇 만년, 몇 십 만년의 순환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간단히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개서한의 서명자들도 기후변화가 100% 인간적 요인에서만 오는 것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증거로 보아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라고 말한다. 관점의 차이를 떠나서 환경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는 것은 가속화되는 산업문명의 번영의 추구를 바르게 보는 데에도 필요한 일이다. 평화가 인간의 삶의 기본 조건이듯이, 자연은 사람의 삶의 모태이다. 그것은 인간문제를 생각하는 데에 언제나 사고의 테두리가 되어 마땅하다.



 



[콜롬비아 내란 종식 움직임 희망적]그런데, 평화의 문제와 관련한 놀라운 뉴스의 하나는 지난 9월 26일 남미 콜롬비아에서 정부와 반란군이 내란 종식에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지난 10월 2일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콜롬비아가 큰 나라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인 의미를 갖는 일은 아니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의 내전 종식은,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의 표현대로, 지구로부터 전쟁이 하나 더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이것이 협약 당시의 전망이었다.



산토스 대통령과 티모첸코 혁명군 대표 간의 종전협약대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면, 그것은 콜롬비아로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공산당 소속의 무장부대 (FARC)가 무력항쟁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3년이다. 한때 무장혁명군은 국토의 3분의 1을 점령할 만큼 강력했다. 내전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이 26만에 이른다고 한다. 혁명군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람을 납치해 보상금을 요구했고, 마약거래도 주저하지 않았다. 산토스 대통령은 그 앞의 우리베 대통령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는데, 그의 반군 진압 정책은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에콰도르 접경지역에서 게릴라 진지를 폭격해 반군사령관을 포사하게 한 것이 업적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정책의 방향을 바꿔 반군과의 평화 협상을 시작했다. 정책적으로 강온(强溫)을 병진하면서 평화를 추구한 것이다.



이제 보류 상태에 들어갔다고 할 수밖에 없는 쌍방 협상은 처음의 비밀 교섭을 거쳐 2012년부터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진행되기 시작했다. 공표된 협약 내용에는 혁명군을 정당으로 개편하고 의회에 일정한 수의 의석을 배당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혁명군은 그간 전쟁으로 가져오게 된 고통에 대하여 국민의 용서를 빌었다. 정부는 이들의 범죄적인 행위에 대하여 최소의 처벌을 약속했다. 협약의 서명식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 여러 나라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반 총장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콜롬비아 국민의 행운”을 축하하였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원조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투표의 결과는 부(否)가 되었는데, 반란군의 범죄적 행위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한 것 그리고 의회에 일정 의석을 약속 한 것 등에 일부 국민이 크게 반발한 것이라고 한다. 협상이 다시 열리면, 이러한 문제들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마음은 용서와 화해보다 원한의 동기로 더 쉽게 움직인다. 화해가 미래의 삶의 기초가 되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결심이 확실하다면, 내란 종식과 평화의 전망은 아직도 트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뉴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단둥에 본거지를 둔 홍샹실업발전공사(鴻祥實業發展公司)는 물론 회장 마샤오홍(馬曉紅)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것은 경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밝힐 것은 밝히고 가야 한다는, 모든 일에서 투명한 사실 정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다. 사실적 투명성이 없이는 인간사는 중요한 결실에 그리고 참다운 인간 이상의 구현에 이를 수 없다. 홍샹그룹은 북한과 핵개발에 필요한 금속을 거래하고 그것을 위한 자금 유통을 돕는 일들을 통하여 급속하게 성장한 기업이라고 한다. 그들이 한 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제 결의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지만, 중국도 이 일과 그 외의 불법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할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이번의 조치가 어떤 판단에서 나오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핵개발과 관련되는 사실 하나를 분명히 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인 단계가 될 것이다.



 



[훙샹 사건으로 북핵 사실 하나는 분명해져]여기에서 홍샹 공사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조처를 언급하는 것은, 방금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이 자신들의 입장을 사실에 근거해 분명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로마 교황의 설교에는, 평화는 “협상, 정치적 타협 또는 경제적 거래”의 결과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평화가 절대적 요청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협상·타협·거래가 없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그것은 바로 삶의 절대적인 조건으로서의 평화를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타협은 대결하는 입장의 사실적 근거를 분명히 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비교대결하면서 들고나는 협상이 벌어진다. 이것이 쉬운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 제시는 이성적 문제해결의 정도(正道)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화해와 평화의 의미에 대한 믿음이다.



이익과 세력 경쟁이 인간의 세계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고, 이 힘의 놀이 속에서 전술과 법술(法術)을 강구(講究)하는 것이 생존 방식이라는 생각이 오늘의 사고를 지배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 해결은 정확한 사실 파악, 밝혀지는 모순과의 대결 그리고 해소-그것을 위한 이성적 방안의 탐색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은 평화에 대한 신념-삶의 귀중함을 보존하는 기본조건으로서의 평화애 대한 신념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어지러운 오늘의 세계에서도 이성과 평화공존의 이상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증거가 되지 않나 한다.



 



<편집자주>?이 칼럼은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 전에 작성됐습니다. 산토스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주목받게 됐습니다.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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