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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대지진의 참화 속에서 피어난 복구와 재건의 희망

중앙선데이 2016.10.02 00:48 499호 21면 지면보기

1 ‘도구를 들고 있는 벤케이’, 1855년경. 화가 불명,



그림 1은 ‘도구를 들고 있는 벤케이(弁慶)’라는 작품이다. 벤케이는 12세기 헤이안 시대에 활약했던 거구의 승려 무장이다. 그는 교량과 관계가 깊은 인물로 전해진다. 교토의 한 다리를 차지하고서 지나가는 무사 999명을 차례로 꺾었는데, 1000번째 무사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에게 패한 후 그를 주군으로 섬겼다고 한다. 벤케이는 훗날 요시쓰네가 적에게 쫓기자 피난처 입구의 다리를 봉쇄하고서 300여 명의 적병을 죽이며 방어했다. 마침내 벤케이는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처럼 될 정도로 수많은 상처를 입고서 다리 앞에 꼿꼿이 선 채로 죽음을 맞았다. 이런 용맹함과 충성심이 그를 전설적 무사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각인시켰다. 그림 1에서도 그는 다리 앞에서 굳건히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비주얼 경제사] 천재지변의 정치경제학

 



대재앙의 불안 표현하고 위안받을 목적그렇다면 메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일본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앙과 풍속 중에는 지진과 해일에 대한 두려움을 배경으로 한 게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땅속 깊이 산다는 나마즈(?)라는 초대형 메기 이야기다. 나마즈가 요동을 치면 지상세계에서는 지진이 발생한다. 평소에 지진이 나지 않는 이유는 카시마(鹿島) 대명신(大明神)이 나마주를 잘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 신은 카나메이시(要石)라는 돌로 메기의 머리를 눌러 제압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카시마 대명신이 나마즈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지진의 참화를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2 ‘메기와 카나메이시’, 1855년경.



그림 2가 이 이야기를 보여준다. 카나메이시에 기댄 채 졸고 있는 인물은 에비스(惠比壽)라는 신이다. 그는 어업을 관장하는 신인데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카시마 대명신은 외출을 하면서 에비스에게 메기를 잘 통제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에비스는 약속과 달리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 사이에 자유로워진 메기는 대지진을 일으켜 가옥을 무너뜨리고 화재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한다. 벌거숭이 차림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이는 천둥의 신이다. 그는 방귀를 뀌어 엄청난 소음의 천둥장구를 뿜어내지만 에비스를 깨우지는 못한다. 뒤늦게 지진 소식을 전해들은 카시마 대명신은 말을 타고 서둘러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재앙이 터진 후인 걸 어쩌랴. 흥미로운 점은 지진의 현장으로부터 금화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진은 파괴와 피해를 낳게 마련인데, 왜 금화를 그려 넣었을까?



그림 1과 그림 2는 공통적으로 1855년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에 제작됐다. 규모 6.9로 추정되는 이 ‘안세이(安政) 에도지진’으로 6000명이 넘는 도쿄 주민이 사망했다. 수많은 가옥이 무너졌고 대규모 화재가 뒤따랐다. 일본은 불과 1년 전에 규모 8.4의 대지진을 두 차례나 경험한 바 있었다. 여진은 여러 달 계속됐다. 거듭된 재앙 속에서 대중들은 메기 설화에 주목했다. 그리고 메기가 등장하는 목판화들이 대량 제작돼 퍼졌다. 이 그림들을 나마즈에(??)라고 부르는데, 지진 발생 후 두 달 동안 300여 종이나 만들어졌다.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누가 사고 팔았는지를 알 길은 없다. 정부의 허가 없이 제작·유포된 일종의 불법 출판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그림들을 통해 대재앙을 겪으며 느낀 불안을 표현하고 위안을 갈구했다.



그림의 내용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가장 단순한 그림은 고통 받은 시민들이 지진의 원흉으로 여겨진 나마즈를 징벌하는 내용이었다. 분노한 사람들이 막대기와 칼을 들고 메기를 공격하는 그림, 또는 사람들이 메기로부터 사과를 받는 그림이다. 한편 천재지변이 부정과 악행을 일삼은 인간들을 꾸짖기 위해 신이 의도한 사태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경우 특히 물욕의 상징으로서 부자가 벌을 받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메기가 벌을 가하는 주체로 그려지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무너진 가옥과 마을을 복구하는 작업을 소재로 삼았다. 지진 이전의 평온했던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그림이다.



 



건축·가구 장인들은 나마즈에 감사 표하기도그런데 이런 그림들과 달리 지진의 영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었다. 지진이 멈추고 나면 무너진 주택과 마을을 다시 세우기 위해 새로운 투자가 이뤄진다. 지진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일본인들은 당연히 이런 규칙성을 인지했다. 그림 2에서 금화가 지진 현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습은 이런 인식을 반영했을 것이다. 나아가 지진으로 인한 변화를 소득과 부의 재분배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사례도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면 상류층, 즉 상인과 사무라이와 대금업자와 같은 이들은 큰 손해를 보지만, 일부 직업군은 새로운 기회를 맞기도 했다. 특히 가옥을 수리하고 공공시설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건축이나 가구 제작에 종사하는 장인과 직인에 대한 수요가 늘게 마련이다. 어떤 그림은 장인과 직인들이 메기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묘사했고, 명시적으로 지진의 피해자와 수혜자 집단을 구별해 놓은 그림도 있었다. 천재지변에 뒤따르는 재분배 현상을 묘사한 그림에서 대중은 삶의 희로애락,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아이러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제 그림 1로 돌아가 보자. 이제 그림의 맥락이 명확하다. 메기 얼굴은 지진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가 들고 있는 도구들은 대지진에 뒤따를 재건 활동에 필요한 장비들이다. 믿음직스러운 장수 벤케이의 늠름하고 단호한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은 희망을 표현한 게 아닐까. 지진의 영향은 일시적일 뿐, 곧 삶의 터전을 새로 건설하는 작업이 굳건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재건사업을 통해 많은 장인과 직인들이 더 나은 생활수준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3 ‘에도의 흔들림’, 1855년경



흑선의 충격과 사회 변혁의 혼란도 상징그림 3은 더욱 흥미롭다. 거대한 나마즈가 해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나마즈는 일본의 근대사를 뒤흔들었던 흑선(black ship)을 연상시킨다. 에도에 대지진이 강타하기 불과 2년 전 미국의 페리 함대가 도쿄만으로 상륙해 통상을 요구했고, 이듬해 일본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자유무역을 허용하는 통상조약을 맺었다. 이후 일본 사회는 격변을 맞는다. 수교를 주도한 막부와 이를 비판한 반대파 간에 치열한 대립이 발생했고, 갈등은 결국 메이지유신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변혁으로 이어졌다.



서구 문화의 빠른 유입,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거대한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사회적 혼란은 대지진이 초래한 혼란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동시대인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림 3에서 해변에 나온 사람들은 나마즈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화를 보면서 반기고 있다. 어서 가까이 들어와 더 많은 혜택을 달라고 부르는 듯하다. 대지진이라는 재난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은 것처럼 개항이라는 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대중의 간절함이 읽혀진다.



나마즈를 등장시킨 목판화들은 대지진 이전의 평화로운 시절을 복고적으로 그리곤 했다. 그러나 때로는 이에 머물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변혁의 희망을 표출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천재지변과 휘몰아치는 개방화·도시화의 격랑이 오히려 부와 소득이 재분배되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느꼈는지 막부는 서둘러 판목을 압수하고 그림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에 대중에 폭발적으로 퍼졌던 메기 그림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bks21@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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