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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헤르베르트

중앙선데이 2016.10.02 00:28 499호 27면 지면보기

헤르베르트 케겔이 지휘한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음반.



“자본주의의 개들 앞에서는 연주하지 않겠다.”


[an die Musik] 헤르베르트 케겔

교통사고처럼 충돌하듯 그를 대면하게 된 것은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 말을 남기고 일흔 살 사내는 권총자살을 했다고 한다. 동독 출신 지휘자 헤르베르트 케겔(1920~1990) 이야기다. 친구는 케겔의 베토벤교향곡 음반을 바라보며 무심한 듯 이야기했고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잠시 전기에 감전된 듯 충격을 받았다. 헤르베르트 케겔, 그때까지 나는 그를 몰랐다.



클래식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헤르베르트’하면 ‘카라얀’을 자동으로 떠올린다. 카라얀만큼 많이 지휘하고 녹음하고 돈도 많이 번 지휘자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를 들지만 진짜 이유는 음반이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연주들이 대부분 빼어나다. 그러니 헤르베르트하면 카라얀이고, 케겔은 웬만큼 음악을 들었다는 이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같은 동독 출신이라도 쿠르트 마주어는 훨씬 유명했다. 뉴욕 필 음악감독을 지냈고 통독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 통일 독일의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됐다. 케겔과는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잡기도 했다. 같은 나라, 같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실력도 결코 뒤지지 않는 케겔은 왜 한국뿐 아니라 서방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까.



케겔의 ‘카르미나 부라나’ LP를 최근 손에 넣었다. 벌거벗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는 재킷 그림이 인상적이다. 케겔은 칼 오르프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지 3부작 무대 칸타타인 카르미나 부라나, 아프로디테의 승리, 카토리 카르미나를 모두 녹음했다.



명연주로 알려진 카르미나 부라나는 CD로도 구하기 어려웠는데 우연한 기회에 귀한 비닐 레코드를 구했다. 케겔 음반 중 사냥 목표 1호였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오이겐 요훔의 녹음이 유명하다. 그는 이 작품을 두 번 녹음했는데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합창단·오케스트라와 연주한 스테레오반이 특히 뛰어나다. 볼륨을 적당히 높여서 듣고 있자면 광기에 휩싸인 굿판 한가운데 빠져 있다는 착각이 든다. 젊은 피셔 디스카우의 낭랑하고도 끈끈한 노래가 절창이다.



역시 오르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케겔의 연주는 어떨까. 뜨겁긴 하나 광기는 없다. 대신 멀찍한 곳에서 인간의 운명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간간이 냉소를 내비치기도 한다. 같은 악보를 가지고 요훔은 뜨겁게, 케겔은 서늘하게 연주했다. 케겔의 성격, 스타일이 짐작된다.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이 궁금해졌다. 한 번 듣고 밀쳐 둔 교향곡 5, 6번 CD를 꺼냈다. 1989년 가을 도쿄 산토리홀 실황이다. 사람들은 전설적이다, 처절하다 하며 침을 튀겼지만 처음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5번을 들은 느낌은 ‘훌륭하지만 교과서적인’ 칼 뵘의 연주를 떠올리게 했다. 뵘은 케겔의 지휘 선생이었다.



‘자본주의 개’ ‘권총’이라는 어휘가 입력된 지금, 케겔은 다르게 들릴까. 6번을 먼저 들었다. ‘전원’은 베토벤이 빈 교외를 거닐며 자연에서 느낀 감흥을 오선지에 옮긴 곡이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데 케겔의 전원은 쓸쓸하다. 평온한 2악장 ‘시냇가에서’가 황혼의 텅 빈 들판을 연상시킨다.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의 스산한 풍경이 떠오른다.



5번 ‘운명’의 1, 2악장은 평범하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약동도 없고 1947년 폐허가 된 베를린에서 푸르트벵글러가 내지른 절규도 없다. 그러나 후반부의 폭발은 대단하다. 3악장에서 바닥을 알 수 없게 침잠하더니 4악장 첫 머리에서 뜨겁고 장엄하게 터뜨린다. 크게 일렁이는 음향은 끝까지 이어지는데 케겔 심중의 격랑 같다. 피날레와 동시에 얌전한 일본 청중이 이례적으로 브라보를 외친다. 박수가 잦아들자 케겔은 담담한 목소리로 앙코르곡을 알려준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에어.” 관현악모음곡 3번 2악장 아리아, 일명 ‘G선상의 아리아’다.



청중의 성원에 시원스레 쿵쾅거리는 음악으로 답례함직도 하지만 케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늦가을 사위어가는 한 줄기 햇살 같은 선율로 열기를 식히고는 무대를 걸어나갔다. 그리고 1년 뒤 권총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친구에게 케겔 이야기를 다시 물었더니 ‘자본주의의 개’ 발언은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권총 자살 이후 만들어진 전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독과정에서 공산주의자 케겔이 겪었던 고통을 짐작할 수는 있다. 서독에 의한 흡수, 돈의 힘, 자신의 처지, 그리고 우울증….



나에게 남은 것은 몇 장의 음반이다. 깊은 시선의 카르미나 부르나와 백조의 노래로 연주한 베토벤들. 쓸쓸한 ‘전원’과 고통스런 ‘운명’.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것 같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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