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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부실한 제로기, 갈수록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전락

중앙선데이 2016.09.25 00:44 498호 21면 지면보기

2 미 해군 F6F 헬켓 전투기가 일본 해군기를 요격한 뒤 항공모함 렉싱턴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사진 US Navy]



“우리가 잠자는 거인을 깨워 무시무시한 결의를 다지도록 한 게 아닌가.”


[2차대전사로 보는 기업 경영] 마리아나 해전과 샤오미

1970년에 만들어진 영화 ‘도라 도라 도라’는 진주만 공격을 계획하고 실행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이 작전 성공 보고를 듣고 우울한 표정으로 내뱉는 말로 끝난다. 30년 뒤 만들어진 ‘진주만’에서도 같은 대사가 반복되지만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는 증거는 없다. 유학 경험을 통해 미국의 저력을 잘 알고 있던 야마모토의 성향을 바탕으로 극작가가 창조한 대사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기우가 아니었다. 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모 세 척을 잡으며 상승세를 꺾었고, 이어 과달카날 전투(1942년 8월~1943년 2월)에서 호주를 향한 일본의 진격을 막아냈다. 이후 부족한 병력과 무기를 보충한 뒤 차근차근 일본의 숨통을 조여나갔다. 1943년 말부터 다음해 2월에 걸쳐 남태평양의 길버트 제도(타라와), 마샬 제도, 트럭섬을 차례로 탈환했다. 다음 차례는 마리아나 제도였다. 이곳을 뺐기면 일본의 이른바 ‘절대 방어선’이 무너질 터였다. 사이판에서 미군의 전략 무기인 B-29 폭격기가 뜨면 대만·필리핀은 물론 일본 본토 전체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함재기 잃은 일본 항모 차례로 격침당해일본군은 혹시라도 미 태평양 함대의 주력을 궤멸할 수 있다면 휴전 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결전을 준비했다. 객관적 전력 열세를 감안해 아웃복싱 전술을 채택했다. 항속거리가 긴 제로기를 미군 함재기의 항속거리 밖에서 출격시켜 귀중한 항모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1 1944년 6월 19일 마리아나 해전에서 경순양함 버밍엄 승무원들이 상공에서 벌어지는 함재기 간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다.



1944년 6월 12일 미군 함재기가 마리아나 제도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15일엔 미 해병대가 사이판에 상륙했다. 일본 해군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긁어모았다. 16일까지 항모 5척, 경항모 4척, 전함 5척을 비롯한 90척의 대함대가 필리핀 동쪽에 집결했다. 함재기 450기 외에 지상 기지에서 300기가 대기했다. 그럼에도 미군에 정면으로 맞서기엔 부족했다. 미군 함대는 항모 5척, 경항모 8척, 전함 7척을 포함해 129척에 달했다. 950기에 달하는 함재기도 양과 질 모두 우세했다.



19일 사이판 서쪽에서 미군 함대를 발견한 일본군은 오전 7시부터 200대 가까운 공격 부대를 출격시켰다. 하지만 미군 함대에 다다르기도 전에 F6F 헬캣 전투기들의 요격에 걸렸다. 갈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레이더로 일본군 항공기를 240㎞ 밖에서 포착한 미군이 미리 함재기를 발진시켜 둔 것이다.



공중전은 학살에 가까울 만큼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제로기는 기관포탄이 스치기만 해도 금세 불이 붙었다. 반면 미군기는 웬만한 총격을 받아도 끄떡하지 않았다. 조종사들의 기량 차이도 컸다. 숙련된 조종사를 잇딴 전투에서 소모한 일본군은 실전 경험이 없는 신참 조종사들로 이뤄져 있었다. 상대적으로 미군은 전방에서 경험을 쌓은 조종사들을 후방으로 돌려 신참을 교육하는 순환 배치를 통해 전체적으로 실력을 쌓은 상태였다. 총격을 받아도 회피기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격추되는 일본기를 보고 한 미군 조종사가 “예전에 칠면조 사냥하던 때 같다”고 할 정도였다.



일본군은 이날 6차례에 걸쳐 모두 326기에 달하는 함재기를 출격시켰지만 75% 이상이 돌아오지 못했다. 지상 발진 항공기를 포함하면 350기 이상을 잃었다. 보호하려던 항모도 미군 잠수함에 2척이나 격침됐다. 아침에 어뢰를 맞은 다이호는 피해가 경미하다고 보고 작전을 계속하다 저녁 무렵 선내에 퍼진 가스가 폭발하면서 갑작스레 침몰했다. 정오 무렵엔 또 다른 항모 쇼가쿠가 어뢰에 연타 당해 두쪽으로 쪼개졌다.



일본군은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텅텅 빈 항공모함을 호위하며 북서쪽 오키나와 방면으로 후퇴했다. 다음날 오후 늦게 미군 항모 기동부대가 이를 포착해 공격대를 내보냈다. 경항모 히요가 침몰하고 다른 항모 3척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남은 일본군 함재기들마저 사실상 전멸했다. 미군의 피해는 20기 가량에 그쳤다. 오히려 공격이 끝난 뒤의 손실이 컸다. 어둠 속에서 소속 항모를 못찾고 바다에 불시착하거나 착함에 실패해 손실된 기체가 80기에 달했다.



이틀간의 짧은 전투에서 일본 해군은 치명상을 입었다. 항모 3척, 유조선 2척이 침몰했고 6척이 대파됐다. 3000명이 전사했는데 특히 450명의 조종사를 잃은 게 뼈아팠다. 비행기는 공장에서 만들 수 있지만 조종사는 단기간에 양성할 수 없는 법이다. 이에 비해 미군은 전함 1척이 피해를 입고 109명이 사망하는 데 그쳤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한 일본 해군은 이후 근해에서도 미군을 피해다니는 신세가 됐다. B-29의 전략폭격으로 산업시설과 도시가 파괴되면서 전쟁수행능력도 급속히 약화됐다. 마리아나 해전은 야마모토가 예감했던 패배를 확실한 현실로 만든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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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조종사들, 일격이탈 전법 들고나와일본 해군의 영욕을 상징하는 것이 제로(A6M)다. 1940년 미쓰비시에서 개발한 제로는 1000마력 엔진을 장착한 최대속도 시속 530㎞의 단발 전투기다. 서기 1940년이 황기 2600년이라 0식 함상전투기(零戰, 제로센)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로의 장점은 2200㎞에 달하는 긴 항속거리와 가벼운 기체에서 나오는 상승력과 선회능력이었다. 중일전쟁에서 기량을 닦은 조종사가 모는 제로는 태평양전쟁 초반 미 해군의 F4F 와일드캣을 상대로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서로의 꼬리를 잡는 선회전에 들어가면 와일드캣은 제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제로센(零戰)으로 잘 알려진 미쓰비시 0식 함상전투기(A6M). 사진은 87기를 격추한 일본군 에이스 니시자와 히로요시가 몰던 기체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 이후 제로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영국제 글로스터 기종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기체의 뼈대에 구멍을 뚫고 조종석 방탄판을 제거할 만큼 경량화하고 날개에도 연료통을 넣어 긴 항속거리를 확보했다. 이 때문에 방어력은 기관총탄 몇 발만 맞아도 불이 붙을 만큼 허약했고, 기체 강도가 낮아 급강하시 시속 660㎞로 제한해야 했다. 이런 약점을 파악한 미 해군 조종사들은 고속으로 급강하하며 총탄을 퍼부은 다음 선회전을 벌이지 않고 내빼는 일격이탈(붐앤줌) 전법으로 제로를 괴롭혔다.



42년 이후 2000마력 엔진을 얹어 제로보다 시속 100㎞ 이상 빠른 속도에 튼튼한 장갑까지 갖춘 F6F 헬캣, F4U 커세어 등이 등장하면서 제로는 사냥 당하는 칠면조 신세가 됐다. 일본은 뒤늦게 2000마력 엔진을 개발했지만 기체 강도가 약한 제로에는 탑재조차 불가능했다. 제로와 헬캣의 교환비는 19대 1이다.



2010년 스마트폰 시장에 묘한 안드로이드 런처 앱이 등장했다. 좁쌀이라는 뜻의 샤오미(小米)라는 업체에서 내놓은 미유아이(MIUI)는 아이폰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듬해 샤오미는 MI1을 내놓으며 정식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샤오미의 기세는 무서웠다. 저렴한 가격에 애플 제품을 쏙 빼닮은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14년 3분기에는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3위에 오를 정도였다.



 



레이쥔 “샤오미는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1969년 중국 후베이성에서 태어나 우한대학을 졸업한 레이쥔(雷軍)은 대학교 4학년이던 90년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 중국어 입력카드를 개발해 인기를 끌었지만 복제품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며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샤오미를 창립한 그는 소셜미디어(SNS)로 제품을 홍보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급성장했다. 검은 티셔츠를 입고 신제품 발표회에 나선 그는 ‘중국의 잡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TV·배터리·체중계에서 전기차·드론까지 손대고 있다. 샤오미의 기업가치가 450억달러(5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샤오미가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질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약점은 기술력이다. 애플이나 삼성전자와는 달리 샤오미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자체 특허가 거의 없다. 퀄컴 등의 부품을 사다가 조립해 판매한다. 그 결과 수익성이 낮다. 2013년 4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영업이익이 615억원에 불과했다. 2014년 이후에도 샤오미의 영업이익률은 0.5% 안팎에 머물고 있다. 이 정도 이익으로는 연구개발(R&D)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어렵다.



특허 문제에 발목을 잡혀 중국 안밖에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도 샤오미 카피 제품의 범람과 화웨이 등 통신 기술을 갖춘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지난해 4분기부터 점유율 3위로 밀려났다. 화웨이와 ZTE 등의 특허 공세도 거세다. 일부 전문가는 제대로 특허료를 낼 경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레이쥔 회장은 “샤오미는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아니라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라고 말한다. 저가의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를 늘린 뒤 미MIUI로 통합된 다양한 스마트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는 것이다. 사물인터넷(IoT)이 활성화 될수록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를 장악한 샤오미의 힘이 커지고, 그만큼 수익성도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레이쥔 회장의 전략이 통한다면 샤오미는 애플에 버금가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꿈이 이뤄질지 제2의 제로로 전락할지 지켜볼 따름이다.



 



나현철 논설위원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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