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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포도밭은 햇빛이 하는 말들을 받아 적는 원고지”

중앙선데이 2016.09.25 01:18 498호 8면 지면보기

1 류기봉 시인이 포도의 당도가 가장 높은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2 류 시인이 식초를 만들기 위해 항아리에 담아 놓은 포도. 김경빈 기자



사는 게 바쁘고 또 힘들다 보니 별은 고사하고 하늘을 바라본 기억조차 없다. 아니 머리 위에 파란 갈매의 하늘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김동률의 심쿵 인터뷰] 포도밭 예술제 접는 농부시인 류기봉

그래서 ‘멍 때리기 대회’라는 아주 고약한 시합까지 등장한다. 멍 때린다. 무슨 말인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꼼짝도 하지 말고 시간을 죽이자는 의미 아닌가. 그의 취미는 ‘멍 때리기’다.



조금 멋지게 표현하자면 가을볕이 따가운 포도밭에서 애써 키운 포도 덩굴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없이 한나절을 보내는 것이다. 류기봉(52) 시인이다.



그는 지난 오랜 세월 포도농사를 통해 시를 얘기해 왔다. 그런 그가 이제 지난 42년간 공을 들여 애써 키운 2000여 평 포도밭을 정리하고 있다. 개발 광풍이 적요한 포도밭에까지 불어왔다.



 



-한평생 살던 곳에서 이제 떠나야 한다. 기분이 어떠신가. “1964년 가평에서 태어나 여섯 살 되던 해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이곳으로 이사 왔다. 비록 남의 땅이지만 2000여 평 포도밭은 지난 40여 년간 아버지에 이어 내가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군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무마다 이름이 있다. 평생 사사했던 김춘수(1922~2004) 선생 등 저명 시인의 이름을 붙인 나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나무가 아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선생의 시 ‘꽃’이다. 꽃은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된다. 주목할 것은 사물과 언어의 관계다. 나는 포도나무에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어느 틈에 인간적인 생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조금 어렵다. 나무는 나무가 아닌가. “내가 매주 들락거리던 김춘수 선생 아파트 거실에 벤자민 화분이 있었다. 어느 겨울을 못 넘기고 말라 죽었다. 화분을 버리려다 보니 작은 달개비가 잡초처럼 자라고 있더라. 이듬해 봄날이다. 차마 내다 버리지 못하고 구석에 버려 둔 화분의 죽은 벤자민 줄기 밑에 달개비가 보랏빛 꽃을 피웠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그 달개비를 캐다가 김춘수 포도나무 밑에 심었다. 바로 저기 보이는 나무다. 나는 저 포도나무 아래 꽃피운 연약한 보랏빛 달개비꽃에서 선생을 느낀다. 나무와도 꽃과도 어느 정도 교감은 가능하다. 그래서 바흐나 모차르트를 들려주며 자식처럼 키워 왔다. 포도나무는 나에게 피붙이다. 포도는 내 시(詩)고 내 시는 포도다.”



-해마다 9월이 오면 포도밭 예술제로 대중으로부터 상당히 주목받았다. 포도밭에서 시 낭송을 한다는 얘기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이제 예술제는 끝인가. “길이 끝난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다만 98년 시작한 장현리 587-1번지 포도밭에서의 예술제는 더 이상 없다. 포도밭 사이에 김춘수·정현종·이문재·노향림·고두현 등 저명 시인들의 시가 적힌 하얀 광목을 걸어 놓고 시 낭송을 하고 노래를 부르던 낭만스러운 포도밭 행사는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19년 만에 막을 내린다고 소문이 나자 관심 있는 지자체나 단체에서 되살리자는 제의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불투명하다. 내가 오십 평생을 보낸 밭이지만 이제 택지 개발 바람에 밀려난다. 돈의 위력 앞에 예술은 보잘것없다. 맥을 못 춘다. 포도밭에 가만히 앉아 멍 때리며 포도가지 사이로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요즈음의 일과다.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



-류 시인의 말에는 빠지지 않고 시인 김춘수선생이 등장한다. “용산도서관에서 열린 시소리 낭송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날 이후 작고하기까지 13년간 때로는 선생의 친구로, 때로는 운전사로, 때로는 인생의 도반으로 모셨다. 미식가이신 선생 내외분을 모시고 서울 근교 맛집 순례도 많이 다녔다. 통영 출신인 선생은 특히 진동횟집을 좋아하셨다. 선생에 대한 호불호는 엇갈린다. 선생을 여러 갈래로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군사정권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것이 평생 멍에가 됐다. 후배 시인들에 대한 편애가 심하다는 말들도 있어 왔다. 그러나 13년 동안 지켜본 선생은 천상 시인이다. 밭의 겉흙을 들추면 보드라운 흙의 속살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선생의 겉만 보았지 향기로운 속살을 보지 못했다. 방황하는 내가 시인으로 맘을 고쳐 먹은 것도 선생 덕이다. 현대 시학에 추천해서 나에게 시인이라는 향기로운 관을 얹어준 분이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나는 선생으로부터 시와 인간을 배웠다.”



-도연명도 소동파도 있고 예이츠나 워즈워스, 로버트 프로스트 등 목가풍의 전원시인들이 꽤 있다. 류 시인은 한국판 전원시인인가. “전원생활을 하면서 시를 쓴 시인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있다. 도연명처럼 은퇴하고 귀거래사를 썼거나 그냥 전원생활을 즐기는 부류들이다. 그러나 나처럼 전원에서 직접 생업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시를 쓴 시인은 그리 흔치 않다. 전업 시인으로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시인이 맞지만 전원시인은 아니다. 농사꾼이다. 나의 생업은 유기농 포도 농사다. 남의 땅을 빌려 잡목을 베고 거친 돌을 옮겨 힘겹게 개간한 게 지금의 포도밭이다. 프로스트의 시에 그가 가꾼 온갖 작물들의 향기가 묻어 있는 것처럼 나의 시에는 나의 땀과 청춘이 고스란히 포도 향기로 배어져 있다.



포도농사는 시 쓰기와 닮은 데가 있다. 언어란 우리 영혼에 뿌려지는 씨앗인데, 제대로 된 씨앗이 심어져서 잘 자라야 그 영혼의 수확이 풍성해진다. 그러니까 우선 마음의 씨앗인 시가 잘 가꾸어지고 잘 익어야 다른 마음들의 강장제가 될 수 있다. 정현종 선생의 말씀이다. 농사를 짓는 마음과 시를 쓰는 마음이 불이(不二)다.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 사물이 서로 대립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근본은 하나인 것처럼 농부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실제로 워즈워스는 ‘시골 가난한 사람들의 스스로의 감정의 발로만이 진실된 것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언어야말로 시에 알맞은 언어’라고 주장했다. 난해하고 기교적 시어(詩語)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꾼 시인인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나에게 포도밭은 그냥 원고지다. 어제 왔던 햇빛, 오늘 온 햇빛, 내일 지나가는 햇빛이 다르다. 그것들이 와서 하는 말들을 받아 적는다.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그것들은 오자, 탈자 없는 완벽한 시를 쓴다.”   류 시인은 동트기 전 이른 새벽 포도밭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해 뜨기 전 새벽 과수원은 어두웠고 포도는 잔뜩 웅크린 채 태양을 기다렸다. 포도밭을 감싸고 도는 새벽 공기가 랄로의 바이올린보다 명징하다. 보들레르는 일찍이 “포도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고 했건만 나는 시인과 사제 와인을 마시면서 오랜만에 낭만을 생각해 낸다. 시인과 나눈 얘기들은 포도송이로 스며들었을까. 나는 잠깐 동안 포도향에 취해 밭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면서 문득 저 넓은 포도밭에서 날아오르는 연둣빛 종달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이다. 지친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로 가을 바람이 쏴아 몰려 왔다 간다. 시를 낭송하고 바이올린을 듣던 포도밭이 캐터필러의 굉음 속에 사라져 가는 지금의 세상이 갑자기 미워진다.



 



시인 류기봉은 1993년 김춘수·이수익의 추천을 받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서 오랫동안 포도농사를 지으며 시작 활동을 해 왔다. 98년부터 김춘수 시인의 제안으로 농업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포도밭 예술제를 해마다 포도를 수확하는 첫 번째 주말에 열어오고 있다. 시집으로는 『장현리 포도밭』 『자주 내리는 비는 소녀 이빨처럼 희다』 『포도눈물』, 산문집으로는 『포도밭 편지』가 있다. 포도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일평생 ‘멍 때리는’ 삶을 살아 왔다고 했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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