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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난 금융노조 파업이 주는 교훈

중앙선데이 2016.09.25 01:42 498호 2면 지면보기
성과연봉제 반대를 내세워 그제 총파업을 시도한 금융노조의 ‘은행 영업점 마비’ 위협은 말잔치로 끝났다. 시중은행 창구는 별 혼란 없이 정상 업무를 했고 우려했던 금융대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금융노조는 23일 오전 9시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면서 10만 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1만8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더구나 국민·신한·KEB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파업 참가율이 3%에 그쳤다.



금융노조 지도부는 이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저조한 참가율은 대다수 은행원이 지금은 한가하게 총파업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의사 표현을 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은행업은 거액의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본적으로 은행업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창구에 앉아 고객을 응대하는 방식은 조만간 거의 사라지고, 핀테크(금융+기술)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인터넷뱅킹이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도 올 연말 인터넷은행이 출범하고 비트코인 같은 전자화폐 사용이 확대되면 은행업의 창구 의존도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사설

이런 변화에 맞서면 자멸밖에 없다. 국내 은행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도 혁신을 미루다 5대 거대 은행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은행업은 지금도 세계 금융업의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금융산업의 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140개 비교 대상국 중 87위에 그쳐 아프리카의 가나·나이지리아·우간다에 뒤졌다. 국내 은행이 오랜 세월 가계대출로 예대(預貸)마진을 챙기는 방식으로 쉽게 돈을 벌어온 결과다.



문제는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육박하면서 이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미국은 실업률이 4%대로 떨어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연말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선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내보냈다. 이 여파로 국제금융시장에 넘쳐나던 미 달러화가 급속도로 미국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커져 한국도 그 충격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가계대출로 앉아서 돈을 벌던 국내 시중은행은 연체율 상승을 비롯해 미 금리 인상의 충격파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국내 은행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1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권 임금 비율이 한국은 2.03으로 미국 1.01, 일본 1.46, 영국 1.83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은행이 생존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은행은 조직을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체제로 바꿀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제도화된 정년 60세 연장과도 맞물려 있다. 인원을 줄여야 할 판에 오히려 정년까지 늘어나면서 은행은 생존을 위해 임금 체제 합리화에 나서 동일 직급에 최대 40% 연봉 격차를 두려고 한다. 성과에 따라 차등화함으로써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피하고 오히려 고용안정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이를 ‘해고연봉제’라고 호도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선동에 불과하다.



다행히 금융노조 소속 은행원 상당수는 은행업이 개혁과 혁신 없이는 자멸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총파업을 외면했다. 이런 판단에는 국내 고용 현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국내 노동시장에서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실업자는 8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기업이 지난해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기로 했다. 국내 경제가 장기침체의 여파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한국 경제는 2%대 저성장 터널에 빠져들면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축복이 된 지 오래다. 이 마당에 연봉 상위 1~10%에 속해 ‘귀족 노조’로 불리는 금융·공공분야 노조가 파업을 한다면 한국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 기업과 근로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22일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을 시작으로 27일 공공운수노조, 28일 보건의료노조, 29일 공공연맹의 줄파업이 계획돼 있다. 국내 양대 노총은 엄중한 현실을 부디 외면하지 말고 소속 산별 노조의 연쇄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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